[박홍재 시인의 렌즈로 보는 풍경 그리고 길] (20) 솔거, 신라 천년 후 경주의 미술 현주소를 찾아가다.

박홍재 기자 승인 2022.01.05 11:42 | 최종 수정 2022.08.14 14:07 의견 0
경주엑스포 대공원 경주타워의 위용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라 하지만, 너무 추우니 움직임 자체가 번거롭다. 9시에 출발하여 경주에 도착하니, 바깥 날씨는 바람과 함께 부딪히는 추위는 저절로 입에서 “아이 추워!”하는 소리가 나온다. 아직은 햇살도 농익지 않아 더욱더 움츠리게 한다. 아마도 올해 들어서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하니 추울 만도 하다. 우리만 추운데 구경 온 줄 알았더니 많은 사람이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있었다. 구경거리에는 추위도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경주 엑스포공원 솔거미술관이란 간판이 우리 길을 안내 한다.

경주타워의 위용이 우선 사람의 마음을 압도한다. 재일 건축가 유동통이 설계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화 해서 만든 건축물이다. 신라의 문화가 번창하였는지 가늠해본다. 건너편에는 황룡사 9층 목탑이 마주 보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고개를 돌리면 양각, 음각이 쏙 들어가고 빠져나올 듯이 마주 서 있다.

렌즈20-2경주타워에서 본 황룡사 9층 목탑,
경주타워에서 본 황룡사 9층 목탑

경주타워는 80m 높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른다. 건너편으로 보문단지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황룡사 9층 목탑도 손에 잡힐 듯 곁에 와 있다. 한 바퀴 둘러본다. ‘신라 천년, 미래 천년’이라고 경주타워 그림이 먼저 우리를 맞이한다. 그리고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 외함과 내함(보물 제1359호), 천마총 금관(국보 제188호), 금관총 금관모(국보 제87호), 금동신발.’ 복제품이 그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 눈길을 잡아끈다. 신라 금세공 기술의 핵심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실내라 온기를 담아 솔거미술관으로 간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볼기와 손이 시리다. 벌판의 바람이 우리를 환대하는지 아니면 몰아치는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역시 경주타워의 위용은 우리를 다시 압도하고도 남는다.

경주 솔거미술관은 2008년 소산 박대성 화백이 작품 기증 의사를 밝히면서 건립 추진이 시작된 이래, 2012년 경주 세계문화 엑스포공원 내에 착공의 첫 삽을 뜨게 되었다. 2015년 3월 완공된 후 여러 논의를 거쳐 ‘노송도, 분황사 관음보살도, 단속사 유마상, 단군초상, 진흥왕대렵도팔폭 등 통일 신라 시대 대표 화가인 솔거(率居)의 이름을 딴‘경주 솔거미술관’으로 명명된 후 2015년 8월 21일 드디어 개관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노송도 는 노송을 가장 실감 나게 잘 그려 새들이 착각하고 날아들다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처럼 통일 신라 시대에는 미술은 사실화가 주류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솔거미술관 입구에서 본 황룡사 9층 목탑

‘천년고도 경주에 자리한 경주 솔거미술관은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지원한 경주지역 최초의 공립미술관으로서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하고 경주 세계문화 엑스포 조직위가 건립을 주도하여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 향후 경주 솔거미술관은 소산 박대성 화백과 경주 미술협회, 그리고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조직위가 함께 손잡고 나아가 명실공히 신라 문화예술의 맥을 잇는 경주 문화예술의 명소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솔거미술관 소개 글>

솔거미술관으로 간다. 먹과 여백이 빚어낸 그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힘 있는 붓의 획은 저절로 사람의 마음에 힘을 강하게 받게 한다. 그윽이 바라보는 순간에는 몸이 그대로 그림 속에 노니는 듯하다. 한참 동안 그림 속에서 빠져나올 때쯤 다음 그림에서 또 빨려 들어간다. 우리의 선조들의 예술인 그림이나 음악이 세계를 휩쓸고 있듯이, 앞으로 우리의 정형 시가인 시조도 세계를 감동하게 하는 날이 올 것이라 굳게 믿는다.

박대성의 몽유신라도원도 작품 앞의 필자
천마총 금관(모조품)

솔거미술관을 거닐며 그림 한 점 한 점에 솔거의 후예라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붓의 조화라고 해야 할 만하다. 끈질긴 혼을 불어넣어서 만들어 낸 그림들이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기억하게 한다.

그 여운을 가슴에 간직한 채 자리를 옮긴다. 쌈밥집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차 한 잔을 마신다. ‘행복 춘심’ 이름도 독특하다. 여기도 이철진 화가가 자신만의 등장인물 춘심을 통해서 세상을 주무르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춘심에 푹 빠져 노닐다가 신라의 최고의 작품이 있는 불국사로 향한다.

커피점 '행복 춘심'이 춘심이 그림

불국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자주 들어가는 일이 없는 것 같다.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중학교 2학년 때 반 아이들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나고 난 뒤 남은 몇 사람이 우리는 경주에라도 가보자면서 선생님과 1박 2일로 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다음에도 여러 번 와 보았지만, 그때의 기억이 다시 대체 되지는 않았다.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된 불국사를 들어서면서, 서서 삼배를 올린다. 부처님과 불법에, 그리고 스님에게 바치는 예의이다. 즉 불법승에 대한 예배를 올리는 것이다. 우리는 남의 집에 들를 때는 인사를 하듯, 이런 예의를 올리는 것이다.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위의 자하문

우선 청운교, 백운교(국보 23호) 위에 자하문이 날아갈 듯 날렵하다. 그리고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22호) 위의 범영루와 경루, 회랑이 연이어 있다. 대웅전(보물 1744호) 앞에 석가탑(국보 21호)과 다보탑(국보 22호)은 그 빼어난 솜씨는 말할 수 없이 예술적 가치를 가진 석탑이다. 비로전과 무설전, 극락전, 안양문 등 각종 건축물이 제 나름의 빼어난 하나의 예술품이다.

불국사는 신라인들의 불국토를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신라의 진수 예술품이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그 아름다움은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석가탑을 바라보면서 다시 다보탑을 바라보고, 서로 번갈아 가면서 넋이 나간 듯 홀린 듯이 한참을 바라본다. 보고 또 보아도 신비롭다. 한 바퀴를 돌고 다시 반대로 돌고, 몇 번을 돌다 보니 대웅전 부처님이 빙그레 웃으신다. 다시 합장하고 삼배를 올린다. 앞마당과 회랑으로 오고 가는 모든 사람은 어떤 종교를 가졌던 간에 이 순간만은 불국사의 품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가슴에 듬뿍 받고 있을 것이다.

신라미술의 정수 석가탑과 다보탑

자하문에서 다시 청운교, 백운교를 바라보다 경내를 한번 둘러본다.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이 따사롭게 나를 비추고 있다. 그렇지! 여기가 불국토이지. 따사로움에 그냥 몸을 맡기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불국사에 오기를 잘했다 싶다. 이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있을까? 가슴에 기쁨을 가득 담는다.

다시 손을 모으고 오늘의 인연이 가슴에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시 삼배를 올리며 뒷걸음으로 내려온다.

 

불국사

부처님 품에 안겨
손 모은 나를 본다

천년을 지킨 자리
미래로 누천년을

인연의
고리의 순간
가슴 가득 품는다

박홍재 시인
박홍재 시인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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