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 거의 정점을 찍는 시기에 깊숙이 들어온 시간이다. 옛날의 강추위는 없는 데도 우리들은 조금만 추워도 춥다고 움츠리고 야단법석을 떤다. 아직도 오미크론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활동을 꽁꽁 묶어놓으며 기성을 부리고 있다. 바이러스와 겨울 추위에 움츠러든 사람들의 마음은 언제 봄이 오려는지 기약도 없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기도 갑갑하여 바다로 향해 간다.
교대역에서 8시에 출발하여 남해고속도로를 지나 사천 대포항을 찾아간다. 10시경에 도착하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서니 바닷바람이 온몸을 휘감듯 추위가 바다 내음과 함께 얼굴에 확 엄습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은 누구나 확 열리는 기분을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아침 햇살에 포구에 묶인 배들이 파도에 출렁이고 있다. 오른편으로 사천대교가 길게 바다를 가로질러 연결되어 있다. 바다 수평선 위에 떠 있는 배가 여러 척 보인다. 수평선에 얹혀 있는 것 같다.
대포항 방파제를 따라 200여m 걸어 나가니 끝쪽에 얼굴 조형물이 바다를 그리는 모습으로 설치되어 있다. 창작의 아이디어가 참 멋지다. 작품 이름은 ‘그리움이 물들면’. 여성 옆얼굴 윤곽선 모양의 조형물은 설치 작가 최병수 님이 만든 작품이다.
또 이곳은 시청률 1위를 차지한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중 리정혁(현빈)이 윤세리(손예진)를 남쪽으로 밀항시키는 장면을 찍은 촬영지이기도 하다.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도 자전거 동호인과 연인들과 어르신들 등등 몇 팀이 다녀갔다.
돌아서 나오니 오른편으로 무지개 해안이 열려 있다. 얼굴 조형물과 연결하여 사람들이 오도록 만들어 놓았다.
무지개 해안 길을 따라가니 선상 카페 씨맨스(Sea Mans)가 바다 위에 떠 있다. 11시 경이라 아직 열지 않았다. 특이한 장소에서의 차 한 잔을 나누는 것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진을 찍는 곳인데 차를 마셔야만 하는 것이라 한다. 사진과 차를 맞바꾸는 영업 전략도 괜찮은 것일까? 서로 다른 마음이 교차할 것으로 생각이 든다.
비토섬의 간조 시간에 맞추어야 하니 우선 차로 사천 대교를 건너간다. 바다와 접한 마을은 어디에나 배 잔재물이 널려 있다. 부표에서부터 낡은 배의 모습도 보인다. 서포면을 지나가다 보면 해안 문화를 느낀다. 섬 한 바퀴를 돌아보기로 한다.
비토교를 지나면 송도 섬을 지나가니 펜션과 카페가 있지만, 영업하는 기척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코로나 때문인 것 같다. 거북교를 건너 비토섬으로 들어선다. 캠핑 장소가 넓게 펼쳐져 있고,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다. 다만 바람에 텐트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외길처럼 돌아가는 길 이름이 용궁로이다. 즉 용궁으로 가는 길이란 뜻이다. 길옆으로 무슨 무슨 수산, 횟집 등이 보이긴 하나 적막강산 같다.
건너다보이는 월영도가 보인다. 여기가 간조가 되면 물길이 열려 건너갈 수 있는 곳이란다. 물이 들어와 그런 기색을 느끼지도 못한다. 오후 3시가 간조 시간이라니 그때까지 우선 점심을 먹기로 한다. 뒤돌아 나오면서 거북길을 돌아가도 점심 먹을 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좀 더 좀 더 하면서 섬을 돌아가니 서포 지구대 옆에 ‘별주부 굴구이집’이 깨끗하게 단장된 곳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손님은 없고 일하는 사람이 네댓 명이 반갑게 맞아 준다.
자리에 앉아 겨울 한정 메뉴! 별주부 굴구이의 야심작! ‘별주부굴구이굴찜’을 시킨다. 기다렸다는 듯이 금방 나온다. 굴과 가리비를 찜해 먹도록 해 주었다. 그 위에 계란과 대파를 얹어 맛을 더해 주었다. 소주 한 잔에 먹는 맛이란 비토섬에서 최고의 먹거리였다. 깔끔한 기본 반찬도 맛이 있다. 덧붙여 해물파전이 더해지니 진수성찬에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두어 팀이 우리 뒤를 따라 들어와서 먹고 나간다. 맛있게 굴구이 찜으로 점심을 먹고 나니 바깥에는 바닷물에 달궈진 햇살이 눈이 부신다.
아직도 간조 시간이 남아 있어 한 곳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백천사로 간다. 한때 많은 불자가 백천사 와불을 보러 왔던 곳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역시 많은 사람이 경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절이 많이 비대해 있는 것 같다. 와불은 물론 대불도 조성되어 있고, 절의 규모도 더 커져 있었다. 여기저기를 돌아보다가 만덕전의 모습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만덕전 무량수불은 크기도 크지만, 굽어보는 모습이 근엄하다. 만덕전 안에는 작은 불상으로 조성되어 불자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이름을 새겨 위안을 얻게 했다. 갖가지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하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이제 다시 길을 돌려 비토섬을 돌아왔다.
'별주부전의 배경이 남해안(사천시) 지방이라는 근거’에 의하면 <토생전> 경판본에는 북해 용궁의 광택왕이 등장하며, <별주부전>에는 동해 용궁의 광현왕으로 되어 있기도 하지만, <토벌가><수궁가> 에서는 남해 용궁의 광리왕이 병을 얻는 것으로 되어 있다. 판소리인 <수궁가> 별주부전 소설보다 먼저 나온 것으로 보아 남해용궁이 배경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발간연대가 정확지 않으나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서에 등장하는 별주부 축문 내용과 발행된 곳이 경상우도이다. <남해 용궁의 별주부>로 명시되어 있어 별주부전의 배경이 남해가 확실하다. 이 고서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의 이름으로 무오년 5월에 촉석성(진주성)에서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데 남해 용궁의 별주부가 산신령에게 토끼의 간을 구해달라는 축문을 기록한 내용이 있다. <토벌가> 내용에 전어(錢魚)가 용왕의 선전관으로 등장하며 ‘깔따구’가 한림학사로 등장하는데, 사천시 서포면에 많이 잡히며 깔따구는 농어 새끼를 지칭하는 방언이다. [비토섬의 유래 안내도에서 발췌]
오전에 왔을 때는 물이 밀물이라 월영도가 바닷물로 저기 먼 곳에 있었는데, 썰물에는 차량도 다니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월영도를 건너간다. 물이 빠진 곳에 작은 굴이 돌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것이 크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먹는 굴이 되는가 보다. 하나를 떼어보니 딱딱하여 입을 벌리기가 힘이 든다. 몇 번을 시도하다 그만 포기한다. 괜히 한 생명을 빼앗는 것 같아 돌아 나온다.
월영도 한 바퀴 돌도록 테크로 섬 주위를 길을 만들어 놓았다. 테크를 따라 걸어가니 아주머니가 굴을 캐고 있다. 중간쯤 되어 보이는 굴이 바게스에 가득 따 담아 두었다. 바다에는 굴을 키우는 나무들이 꽂혀 있다. 거기에 굴이 달라붙어 굵어지는 모양이다. 어민들의 농사를 짓는 것이다.
건너편으로 사천 와룡산이 묵묵히 바다를 지켜보면서 앉아 있다. 조금 전 다녀왔던 백천사가 품고 있던 산이다. 사천의 중심을 잡아주는 산이다.
지자체마다 무엇인가 스토리텔링으로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비토섬 역시 걷기와 함께 별주부전을 테마로 하여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만한 기본적인 볼거리가 곁들여져야 한다. 캠핑장을 여러 곳에 개설하고 펜션과 함께 더 나은 길을 모색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주저앉은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누구나 겪는 일이니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별주부전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어려움을 용왕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대신 얼토당토않은 일을 시키는 것도, 거기에 호응하여 충성심을 발휘하는 자라의 욕심과 부귀영화를 꿈꾸는 토끼의 호기심과 위기탈출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다시 새겨 살아가는데 지침으로 삼아야 할 이야기이다.
비토섬을 한 바퀴 돌고나니 별주부전 한 권을 읽고 난 기분이다.
<글, 사진 = 박홍재 객원기자, taeyaa-park@injurytime.kr>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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