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군은 육지 같으면서도 섬 같은 곳이다. 육지와 맞대어 있으면서도 삼면이 바다와 접해 있다. 크고 작은 섬, 유인도 23개, 무인도가 20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연홍도는 5년 전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후부터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섬이 되었다.
연홍도를 찾아 고흥 녹동항에서 소록대교를 건너고, 2km 길이의 거금대교를 건너는데, 높이 20m의 인간 흉상 은빛 조형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꿈을 품다」 라는 작품이다.
거금 휴게소에 잠시 쉼을 한다. 휴게소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은 바닷물 빛깔이 선명하고 깨끗하다. 거금대교의 위용을 느끼면서 건너편 소록도를 바라본다. 소록도에 한센병을 환자들이 집단으로 살아가던 곳이다.
거금 휴게소에는 1943년에 두원리 야산에 떨어진 두원운석이며, 고흥 9미(味)로 참장어, 낙지, 삼치, 전어, 서대, 굴, 매생이, 유자향주, 붕장어라는 구미 당기는 먹거리를 자랑하는 설치물이 관광객의 눈길을 이끌게 해주고 있다. 야외 미술관을 만들어서 나그네의 발길을 잠시 묶어두고 쉬어가며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어 놓았다.
거금 휴게소에서 신양 선착장으로 간다. 여느 섬처럼 바다에는 배들이 무엇인가 작업을 하고, 작은 산들에 기댄 집들이 엎드려 있다. 신양 선착장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는 곳이 연홍도이다.
배 시간이 11:00이다. 마침 물살을 가르며 배 한 척이 선착장에 닿는다. 몇 사람이 내리고 우리 일행 다섯 명도 배에 오른다. 왕복 1인당 5,000원이다. ‘지붕 없는 미술관 고흥’, ‘섬나라 미술 여행 연홍’이라는 캘리그라피 글씨로 배에 써 놓았다. 배 여러 곳에 그래픽 그림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어 미술 섬에 간다는 느낌을 확 느낀다.
5분여 만에 연홍도에 도착한다. 새롭게 내딛는 발걸음과 마음은 항상 설렘으로 가득하다. 미술 그림보다 지붕 색깔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여기저기 조각은 물론이고 섬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해 놓았다.
‘원래 돌산현에 속하였으나,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흥군 금산면(서북쪽에 위치)에 속하게 되었다. 400여 년 전 밀양박씨가 처음 입도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넓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연(鳶)과 같다 하여 연홍도(鳶洪島)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에 거금도와 맥이 이어져 있다 하여 연 연(鳶) 자를 이을 연(連)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섬의 지형이 말의 형상과 같다 하여 마도(馬島)라고 불렀다는 설도 함께 전해온다. 원적(元籍)은 신전리로 되었고, 1928년에 마도를 연홍(連洪)으로 개칭하였다.’<섬의 역사 안내도> 참조.
입구에 마주 보면서 환영 아치로 ‘Welcome! 가고 싶은 섬 연홍도 어서 오세요’라고 맞이한다. 관광 안내소와 스마트 연홍 센터도 자리하고 외벽에 그려진 그림이 예술적인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마을에 들어서면 연홍도 커뮤니티 센터에서 특산품인 미역, 다시마, 멸치, 톳을 파는 곳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왼편으로 방파제에 소라 껍데기 모양 큰 조각을 기점으로, 여러 가지 조각품이 설치미술로 배열되어 있다. 지붕은 원색으로 주황색과 파란색으로 단장이 되어 있어 선명하다. 산뜻한 맛이 미술과 어우러지고 얕은 산색과도 어울리는 색이다. 담장에는 연홍 사진박물관에서부터 거금도 출신 프로레슬러 김일과 연홍도 출신 백종호의 벽화도 그려져 있다, 또한 갖가지 연홍도를 상징하는 그림이 골목을 이어지면서 연홍 미술관으로 가는 길이 이어지고 있다.
미술품 소재는 주로 정크 아트(쓰레기나 고물을 재활용하여 만드는 예술 작품)들이다. 옛날 우리 정서를 자극하는 팽이치기, 딱지치기, 굴렁쇠 굴리는 아이, 사진작가, 뻥튀기 등등으로 연홍 미술관 가는 길이 미술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오래되어 낡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더욱 애착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움이 앞선다.
야외 조각공원에는 우리 삶이 방식이 표현된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로 조각품들이 바다와 어우러져 있는 것이 많다. 특히 바닷물 속에 프랑스 설치미술가 실벵 페리에의 작품 '은빛 물고기’도 보인다. 아마도 밀물과 썰물에 따라 작품이 변해가는 표현이 다르게 보일 것 같다.
폐교된 분교를 활용해 2006년 11월에 개관된 미술관이 있었다. 마침 관장이신 선호남 화가와 아내 장경실 님이 밖에 나와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아내와 같이 15년 전에 연홍도에 와서 미술관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밖에는 여느 학교처럼 이순신 장군 동상, 종탑도 보인다. 아련한 학교의 모습이 그려진다. 섬 아이들이 꿈을 그리며 살아갔을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미술관 안에는 연홍 미술관 기획 전시 ‘심영숙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내가 펼친 캔버스 위의 세상에서 방향을 가진 선들은 점에서 만나고, 그 점들은 비대칭의 경험을 나누면 관계를 형성한다’면서 때로는 충돌하지만, 낯선 치유로 다가온다고 한다. 나의 원들이 서로 감싸고 색을 만들어 내듯이. . . <심영숙 개인전> 소책자에서.
골목을 돌아가면서 연홍 미술관을 둘러보고 되돌아 나온다. 바다에는 윤슬이 미술품을 더욱 빛나게 도와주고 있다.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300년 된 팽나무가 덩그렇게 마을을 수호하듯이 언덕 위에서 마을을 지켜보고 있다. 비와 바람과 태풍을 견디면서 생긴 껍질과 주름들이 고난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아르끝 둘레길 언덕을 내려오면서 마지막 한 폭이라도 더 보고 싶어 걷지 않았던 골목을 다시 걸어서 나온다. 스마트 연홍 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배 시간을 기다린다. 섬 한 바퀴를 걸어서 돌아보지 못한 것이 약간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그래야 다음에 또 올 수 있지 않을까?
배가 선착장에 파도 물살을 조금씩 잔주르며 닿는다. 여기저기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배에 탄다. 햇살이 마지막 연홍도 모습을 빛나게 비춰준다.
주황색과 파랑으로 걸린 집 색깔이 빛나고 있는 연홍도를 떠난다. 점점 멀어져가지만, 빛나는 미술품들은 또 다른 관광객을 불러들일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연홍도를 되살리고, 자신의 미술 작업도 이어나가는 도전이 아름다운 섬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지붕 없는 미술관을 만들어 놓았다.
<글, 사진 = 박홍재 객원기자, taeyaa-park@injurytime.kr>
연홍도
박홍재
물감을 푹 찍어서
연홍도에 흩뿌린다
골목이 찾아내는
추억을 되살려내
미술관
지붕이 없다
섬이 그냥 그림이다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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