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던 비가 말끔히 갰다. 새벽 여섯 시 어둠을 뚫고 동해시 두타산 무릉계곡을 향해 달렸다. 아침 하늘에 흰 구름이 둥실 떠올랐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구름에 아침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들고 있다.
어제 예약한 식당에서 식사하고, 점심도 비빔밥으로 배낭에 담았다. 거리에는 산을 향하는 등산객들이 수없이 올라가는 사이에, 주위는 차츰 깨어나고 있었다. 어제 비로 인해 무릉계곡은 안개가 자욱하다. 관리사무소를 통과하여 앞 사람들의 뒤를 따라 오른다.
베틀 바위 등산로는 너무 가파르고 위험하여, 2020년 8월 1일부터 개방된 코스이다. 초입에서 바라보면 왼편에는 두타산(1,357m)과 오른편에는 청옥산(1,404m)이 자리한 강원도 삼척과 동해시에서 접근이 된다.
초입부터 오르는 산길이 가팔라지고 있다. 베틀 바위 1.5km, 두타산 협곡 마천루 3.1km라는 이정표가 우리를 안내한다. 베틀 바위 무릉 산성길이라는 안내 지도가 우리의 길을 이끌어주고 있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항상 그렇듯이 산길은 언제 걸어도 숨이 차오르고, 누적된 오름으로 다리가 점점 무거워진다. 오르는 사람들도 저마다 갖가지 모습으로 오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는 길. 솔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너무나 영롱하다. 금강송 군락에 마음을 빼앗길 즈음, 건너편 산에 어제 비로 수량이 많아진 중대 폭포가 삼단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 아래에 관음암이 바위에 둘러싸여 오롯이 앉아 있다.
오르다 보니 숯가마 터가 나타난다. 옛날 사람들의 살아간 모습이다. 터를 보면서 잠시 숨을 고른다. 이마에는 연신 땀이 흘러내린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가 숨을 몰아쉰다. 가는 길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마음에서 모두를 감수하고 오른다. 다리가 아프면 쉼도 하고, 건너편을 바라보면서 숨을 다시 고르고 하기를 여러 번 한다.
베틀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면서 '정말 사진 찍을 만하다'는 감탄사가 속으로 저절로 나온다. 셔터를 누른다. 역광이라 맑게는 나오진 않지만, 그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찍고 또 찍는다. 자리를 바꿔가면서 또 셔터를 누른다. 아마 오늘 최고의 경치를 보여줄 만하다. 촉촉히 젖은 바위 군들이 햇살에 조금씩 마르고 있다. 그러다가 바위 군들이 옹호하고 있는 듯하다. 바라보면 볼수록 산 전체가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또 의미를 갖지 않은 바위가 없다. 미륵바위, 염소 바위, 코끼리바위, 병풍바위 등을 거쳐 마천루에 다다른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셔터를 누르고 다시 보고 또 셔터를 누르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다 주위에서도 바라보는 눈들이 그냥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차 경이로움에 놀라고 있었다.
계곡에서는 물소리가 골짜기를 우렁차게 흔들어 놓고 있다. 바위는 바위대로 폭포는 폭포대로 제 할 목소리와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거기에 금강송은 하늘을 향해 붉은 기상을 뽐낸다. 길을 따라 걸으면 전망대에는 누구나 줄을 서야만 비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마천루에서 보는 풍경 속에 원숭이 혹은 고릴라를 닮은 바위는 누구나 카메라를 들이댄다. 참 신기하기도 하다. 처음 저 모습을 찾은 사람은 어떻게 찾았을까 하는 의문점이 있다. 우리는 앞 사람들이 길을 따라서 즐기지만, 처음 발견한 사람은 어떻게 상상을 하였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무릉계곡을 내려오면 계곡 곳곳에 물이 흐르면서 그려내는 풍경은 이름값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곳곳에 꽃도 피우고 물을 품은 채로 무릉계곡은 베틀 바위의 위용에 약간 움츠러드는 것 같지만 나름의 모습으로 많은 사람이 오도록 유혹하고 있다.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쌍폭포가 나타난다. 수량도 많아 더 구경거리다. 왼편은 두타산에서 내려오고 오른편 폭포는 용추폭포의 물을 받은 청옥산 물을 안고 있다. 물방울이 운무처럼 나부낀다. 청옥산 장군바위 쪽에서 내려오는 용추폭포는 혼자서도 쌍폭포에 못지않게 자신의 모습으로 소리를 내면서 소에 떨어진다. 물소리에 마음이 다 씻기는 기분이다. 맑은 공기를 듬뿍 마시면서 무릉계곡으로 내려선다.
삼화사를 지나오면 만나는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 무릉계(김홍도 작품)는 무릉계곡을 대변하는 그림이다. 또한, 무릉반석 암각서는 ‘무릉계곡 초입에 있는 무릉반석에 가로로 쓴 살아 움직이는 듯 힘이 있고 웅장한 글씨이다.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 이라는 암각서로, 그 아래에 그 아래에 옥호거사서신미(옥호거사서신미)라는 각서가 있는데, 신미년에 옥호 거사가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릉선원은 도교(신선)사상을, 중대천석은 불교 또는 유교 사상을, 두타동천은 불교사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글씨는 봉래 양사언이 강릉 부사 재직(1571~1576)기간에 전임 정두형 부사의 부친상 관계로 신미년(1571)에 광천[비천]을 방문했을 때 무릉도원을 방문하고 썼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옥호자 정하언이 삼척 부사 재직(1750~1752)기간 중인 신미년(1751)에 무릉계곡을 방문해서 썼다는 설도 있다. 동해시에서는 오랜 세파에 글자가 희미해지고 마모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보존하기 위해 1995년도에 모형 석각을 제작하였다.’<안내 표지판 인용>
이 글을 읽으며 무릉계곡에 오기를 잘했구나 하는 위안을 얻어간다. 베틀 바위의 잔영도 가슴에 품고 내려온다. 다시 한 번 조용하게 쉬엄쉬엄 등산객에 떠밀리지 않게 호젓이 오고 싶어진다.
<글, 사진 = 박홍재 객원기자, taeyaa-park@injurytime.kr>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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