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짠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이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아마도 어딘가에 하루 준비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저렇게 일찍 일하는 분들이 있음으로 우리는 수월하게 하루를 열어가는 것이다. 식당 주방에서, 혹은 사무실을 정리하고, 건물을 빛나게 청소하고, 건설 현장에 연장을 준비하고, 주연들이 나오기 전에 무대를 설치하는 사람들처럼 그들이 미리 준비하기 때문에 주연들이 빛나는 활동이 가능한 것이다.
움츠린 옷깃을 다시 여미며 어둠이 아직도 자기 영역을 차지한 채, 꿈쩍도 하지 않는 이른 6시30분 교대역에서 출발한다.
거제휴게소에서 일출을 보려고 했으나 섬에 가려 여명만 보다 거가대교를 카메라에 담는다. 사방이 트인 바다는 아침을 맞는 빛이 붉게 물들이면 더욱 빛을 더하고 있다. 거제를 지나면서 옥포 대우조선소의 위용이 드러난다. 우리나라 조선업의 선구자적 위치를 자랑하다 이제 주인을 잃고 있는 모습이다. 역사의 굴레를 힘겹게 견디고 있다. 나도 대우에 몸담았던 사람으로 짠하다.
장사도 가는 근포 선착장에 도착한다. 카멜리아 호를 타고나면 ‘카멜리아’라고 작은 패를 준다. 돌아올 때 다시 선장에게 반납해야 한다고 한다. 없으면 태워주지 않는다고 한다. 장사도를 향해 물살을 가르면서 시원한 초겨울 바람을 맞는다. 섬에 대한 궁금증을 가슴에 더욱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차츰 다가오는 섬이 더욱 나를 끌어당긴다는 느낌이다.
‘통영의 작은 외딴섬, 장사도. 14채의 민가와 80여 명의 주민이 살았었고, 장사도 분교와 작은 교회가 있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이 섬에 부임한 장사도 분교의 염소 선생님의 이야기는 「낙도의 메아리」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0만 그루의 수백 년생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천연기념물 팔색조와 풍란과 석란은 장사도의 자랑거리이다. 예로부터 긴 섬의 형상이 누에를 닮아 누에 잠에 실사를 사용하여 ‘누에섬’이라고 불렸다. 겨울엔 동백이 꽃망울을 터트리는 절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한려해상국립공원이다. 폐교된 학교와 섬 집을 예전 모습으로 복원하고, 20여 개의 코스별 주제 정원과 건축물은 체험 학습과 영상교육 및 작품 전시 등의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1000여 종의 다양한 식물과 청정해역의 숲속에서 천혜의 자연환경과 한려수도의 정취가 한눈에 보이는 크고 작은 섬을 볼 수 있다. 전망대와 12머리 상의 조각품과 자연의 의미를 되새기는 특별한 시간을 보내실 것이다. 장사도의 심볼은 ‘카멜리아’, 캐릭터 ‘늬비’란 누에를 뜻한다. 해서 옛 지명이다.’ <장사도 소개> 발췌.
장사도는 통영이지만, 근포 선착장은 거제 구역이다. 선착장 근처 방파제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쳐 놓은 텐트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만큼 낚시 인구가 많이 오고 그만큼 낚시도 잘되는 곳인가 보다.
뱃전에는 갈매기들이 새우깡 쟁탈전이 한창이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새우깡으로 놀이처럼 하다 보니 갈매기들이 습관처럼 모여든다. 이러다 고기는 못 잡고 새우깡에 매달리지나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장사도 해상공원에 도착한다. 2011년 12월 문화 해상공원으로 카멜리아로 탄생한 섬이다. 해태상 두 마리가 우리를 굽어보면 맞이한다. 오르막길을 따라 섬으로 빨려 들어간다. 길가에는 수국, 동백이 줄지어서 발걸음을 안내하고 있었다. 수국은 이제 빛을 잃어 마른 잎만 남겨져 있고, 동백은 붉은 꽃망울을 잎 속에 감춘 채, 새롭게 피어나기도 하고, 목을 꺾은 채 도로에 나뒹구기도 한다. 피는 꽃은 노란 꽃술이 하늘거리며 눈이 부시다. 쇠고비, 콩 짜개 넝쿨, 족제비고사리, 털머위, 갯고들빼기, 참으아리, 소철 등 250여 종의 난대식물군을 자라고 있다고 하니 그 볼거리가 꽤 많을 것 같다.
언덕에 오르니 ‘바다, 섬, 여인’이란 제목의 2011년, 정희옥 님의 석재 조각품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게 한 작품이다. SBS 드라마 스페셜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이 천송이에게 프러포즈한 곳이기도 하다. 또 통영 사자탈과 통영 선녀탈 입상도 두 개의 하트 모양의 작품도 자리를 같이하고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조각품들이 눈에 속속 들어온다. 그 숫자만도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 그 곁으로 죽도초등학교 장사 분교, 폐교 앞마당에 분재가 가득하다. ‘정직, 우애, 자조' 글씨가 교사 벽에 파란 글씨로 쓰여 있다. 학교 교훈이었겠다 싶다. 옛날 아이들의 놀이를 형상화한 줄넘기, 말타기, 등이 실제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어 아련한 추억을 소환해 주고 있다.
바다를 향한 억새 군락이 처음 보는 모습이다. 육지에서 보던 모양과 다르다. 그 너머로 붉은색 무지개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 건너편을 오르니 부엉이 전망대에서 비진도, 오곡도, 용초도, 미륵산을 안내하는 간판이 있어 손으로 집어보면서 그 방향을 가늠해 본다.
무지개다리 아래에는 갖가지 필름프로미네이드 게시판에 장사도의 지난 역사를 걸어 놓아 엮었고, 그 곁에는 조각품들도 곁들여 조각 공원이었다.
온실 속에는 용설란, 으아리꽃, 선인장, 소철 등 열대 식물들이 즐비하게 우리를 맞는다. 특히 소철은 잎이 하늘을 찌를 듯 그 생명력이 힘살 돋는 듯하다. 하나씩 눈길을 주며 열대의 향기를 맡는다. 아기자기한 조각품들로 꾸며진 섬 전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동백꽃 숲길을 걸어 나오는데 섬 집이 있다. 정겹다. 우리들의 정서가 그대로 흙벽에 묻어 있고, 장독대와 나무로 된 부엌문, 부엌의 실겅, 아궁이, 절구통, 요강, 남포등, 다듬잇돌 등이 있어 정겹다. 퇴색된 마루에 앉아본다. 옛날 어린 시절이 생각나면서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봅니다.' 라는 〈섬집 아기〉 동요가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붉은 동백꽃망울이 떨어진 숲길을 지날 때면, 자꾸만 동백 숲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너무 예쁘기 때문이고, 끌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때 바로 미술관이 나타난다. 그림을 둘러본다. 한 사람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작품들이 크고 작은 모습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흔든다.
야외 공연장에서는 중절모를 쓴 채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트로트 노래를 부르고 있어 노래가 끝날 때까지 서서 기다려 주었다. 박수를 보내니 고개를 들어 묵례로 답을 한다. 한 곡 더 듣고 싶었지만, 그만 돌아서는데 가시 장미가 몇 개 남은 잎과 함께 나에게 대신 손짓을 해 준다.
사람 머리 12가지 모양으로 형상화한 조각품이 둥그렇게 서 있다. 저마다 말하고자 하는 모습이 다르다. 포켓(욕망을 담는 그릇), 손가락(사유적인 내용), 책(동서고금), 별자리(우주 질서 관장), 만화(꿈과 낭만과 사랑), 쓰레기(오물투성이의 지구), 브랜드(세계를 움직이는 유명브랜드), 건물(불가사의한 건축물), 상(월계관 등 모든 상), 12지(인간의 운세 띠), 성(모든 생명의 본능적 애정 표현), 종교(종교의 집대성). 2004~2005년에 제작하였고, 작가는 김정명이란 분이라고 안내 표지에 적혀 있다.
세상을 보는 작가의 눈이 여기에 집약되어 있다는 것이 참 경이롭기도 하다. 아마도 꽃 피는 봄이나 여름에는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서서 더 볼거리를 보여주리라 생각이 든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어떻게 섬 전체를 꾸미고 다듬었을까? 그래도 자본의 냄새도 조금 드러난다.
아름다운 해상공원 섬 장사도 선착장으로 내려오는 계단에는 동백 꽃잎이 즐비하게 마중하듯 나와서 올려다보고 있다.
카멜리아 호는 선착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뒤돌아보면서 아쉬움 마음을 바닷바람에 실어 보낸다. 파도가 뱃전에 부딪혔다 부서지기를 몇 번이던가 우리는 떠났던 그 자리, 근포항 선착장에 안전하게 내린다.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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