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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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2 21:05 | 최종 수정 2022.05.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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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나 일반인들에게 레이저는 기계나 기술적 느낌이 강해서 장치 경험 없이 이론 설명만으로는 원리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하고 어려워한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술 마시는 비유로 레이저의 원리를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의 에너지 준위는 양자역학의 결과로 드문드문하게 떨어져 있다. 그래서 낮은 에너지에서 높은 에너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특정 값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만약 외부에서 주입되는 에너지가 물질 에너지 준위 간극에 못 미치면 아무런 도약을 유발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수학이나 물리를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경우와 별 차이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
물질에 에너지를 가해 흥분시키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빛을 사용하는 경우를 고려해 보자. 양자광학적으로 빛은 입자로 취급할 수 있다. 한 알의 빛을 한 잔의 술로 비유해 보면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는 원자를 높은 에너지의 흥분상태로 만드는 상황은 술 한을 마시고 흥분하는 모습에 해당된다. 여기서 높은 에너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술잔으로 비유되는 빛 알의 색깔이 중요하다. 신기하게도 양자역학적 빛 알은 색깔에 따라 에너지가 다르다. 무지개의 보라색 방향으로 갈수록 빛 한 알의 에너지가 크다. 가령 빨간 빛 한 알보다 파란빛 한 알이 월등하게 큰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뭐든 한 방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흥분을 위해 주입된 붉은 빛 한 알의 에너지가 물질의 내적 에너지 간극에 미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빛은 양자역학적으로 물질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그 빛은 물질을 투명하게 지나간다. 기분이 바닥 같은 날, 도수 낮은 술을 아무리 마셔도 몸이 술을 투명하게 배출한 듯 기분 변화가 전혀 없는 순간은 양자광학을 많이도 닮아있다. 그러므로 물질의 내적 도약을 위해서는 한 알의 빛이라도 에너지가 강력한 색을 선택해야 한다. 즉, 도수 높은 술은 파랑이나 보라빛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빛 알(술 한 잔)이 물질이 지닌 에너지 간극을 온전히 넘어서 흥분상태가 되는 과정을 광학은 빛(술)이 흡수(absorption) 되었다고 표현한다. 몸이 술 한 잔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바닥이던 기분이 높은 곳에 올라선 것 같은 들뜸과 활기를 찾는 상황과 같다.
하지만 약기운이 오래가지 않듯 술기운도 일시적이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 기분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다. 모든 것을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중력처럼 낮은 에너지를 선호하는 자연의 원리는 흥분한 높은 에너지 상태를 다시 침울한 낮은 에너지로 떨어뜨리며 그 순간 처음 자신을 흥분시켰던 것과 똑같은 색깔의 빛 알이 방출된다. 이 과정을 자발방출(spontaneous emission)이라 하는데 ‘형광’이라고 말하는 현상들이 모두 이 부류에 해당된다. 처음 한 잔 술의 한 알 빛은 몸과 원자를 흥분시키는 에너지로 전환되며 자신의 모습과 존재는 사라지지만 흥분된 물질이 낮은 에너지로 상태를 바꾸며 빛이 다시 부활하는 셈이다. 즉, 빛이 물질로 다시 물질이 빛으로 변신하며 부활하는 기저에는 에너지라는 추상적 물리량 보존법칙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레이저의 강력한 빛은 어떻게 얻을까?
레이저의 강력한 빛은 자발방출이 되기 직전 상황, 즉 높은 에너지의 흥분된 상태에 있는 그 순간을 이용한다. 자연은 낮은 에너지를 선호해 높은 에너지에 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자발적으로 낮은 에너지로 내려오기 마련이지만 레이저에서는 빛을 내는 물질을 인공적으로 높은 에너지 상태에 머물도록 만든 뒤 자발이 아닌 자극의 방식으로 빛을 방출시킨다. 술 한 잔만 마셔도 치명적인 사람에게 술을 마시게 한 뒤, 또 한 잔을 강제로 마시게 하면 어떻게 될까? 이후에 뿜어내는 것은 자발적인 방식이 아닌 강제적이고 자극받고(stimulated) 유도된(induced)방식의 방출이다. 그래서 한국어 번역은 유도방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영어는 자극받은 방출(stimulated emiss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즉, 처음 한 알의 빛을 흡수해서 이미 흥분해 있는데 또 한 알이 주입된다면 흡수가 아니라 품고 있던 흥분상태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게 만든다. 즉, 흥분된 상태에 주입된 빛 알이 이미 흥분된 상태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며 또 다른 빛을 토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두 알의 빛이 한꺼번에 뿜어져 나오게 되는 셈이다.
물론 술이 강한 사람은 독한 술 여러 잔을 모두 흡수해도 뱉어내는 것이 없을 수 있다. 물리학은 이런 경우 높은 에너지 준위에 빛 알을 품을 상태가 아주 많아 축퇴(degenerate)되어 있다고 표현한다. 즉, 흥분 에너지 상태 층에 빛 알(술)을 받아들일 방이 아주 많은 것이다. 따라서 비록 흥분 층에 있는 방을 모두 채우는데 많은 광자가 필요하지만 일단 채워지고 나면 자극된 한 알이 아주 많은 빛 알의 소나기를 유발할 수 있다. 실제 작동하는 레이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펌핑’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가해진다. 즉, 술을 멈추지 않고 계속 먹이는 것이다. 또한 한 번의 ‘유도 방출’ 과정이 집단의 모두를 자극하거나 선동할 수는 없으므로 레이저 매질 양쪽에 거울을 둔다. 자극과 ‘유도 방출’의 과정으로 증폭되어 가는 이 과정을 거울을 통해 반복하는 것이다. 양쪽 거울이 모두 반사만 하면 빛이 레이저 매질 속에서 커져만 갈 뿐 빠져나올 수 없으므로, 둘 중 하나의 거울은 투과를 약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레이저 매질이라는 집단 속 개인들은 이렇게 계속해서 자극되고 흥분해 집단적 유도 방출을 마친 뒤 바닥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또다시 흥분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
매질을 인공적으로 흥분시키고 빛을 토해내도록 사육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레이저를 보면 왠지 안쓰럽고 마음이 짠하다. 물론 레이저를 두고 이런 느낌을 가지는 것은 공감하기 쉽지 않은 정서이기는 하지만, 나는 자본주의 사회 속 개인들의 모습이 레이저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무한 경쟁 속 생존을 위해 쉬지 않고 열정을 강요당하다 결국 소중한 것마저 토해내고 바닥으로 가라앉지만, 정작 토해 낸 소중한 빛을 누리는 것은 매질 속 개인이 아니다. 또한, 이 지친 개인이 집에서 쉴 때면 다양한 미디어 매체는 광고를 통해 끊임없이 욕망을 자극한다. 하루 중 어떤 방식으로든 흥분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본권력과 얽혀 있는 사회 속에서 인공적 욕망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 사회 전체는 거대한 레이저를 닮았다.
◇김광석 교수 :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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