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27) 파동 배합 레시피

김광석 승인 2022.04.03 10:33 | 최종 수정 2022.04.03 10:54 의견 0

소리는 파동이다. 파장이 긴 것은 저음, 파장이 짧은 것은 고음. 빛도 파동이다. 붉은빛은 파장이 길고 파란빛은 파장이 짧다. 그러므로 소리의 음계를 빛의 색과 연결시킬 수 있다. 주기로 분류해도 된다. 낮은 음과 붉은빛은 주기가 길고, 높은 음과 파란빛은 주기가 짧다. 유리컵에 물의 높이를 다르게 채우면 실로폰 같은 음계를 만들 수 있다. 컵 속의 물이 많이 채워지면 저음, 얕게 채워지면 고음이 들린다. 만약 음이 높아짐에 따라 컵 속의 물을 빨강에서 파랑까지 다른 색소로 채워 넣는다면 빛의 계단은 소리의 계단이 된다.

파장과 주기가 다른 소리와 빛의 여러 파동을 합치면 국소적인 펄스가 된다.
파장과 주기가 다른 소리와 빛의 여러 파동을 합치면 국소적인 펄스가 된다.

화음이나 색의 혼합처럼 다른 빛과 소리를 모두 더하면 어떻게 될까? 파동의 다름은 공간과 시간의 측면에서 각각 나누어 봐야 한다. 파장이 다른 파동을 더한다는 것은 시간이 멈춘 한순간 봉우리 사이의 거리가 멀거나 가까운 다양한 풍경이 공간 속에서 합쳐진 모습을 보는 것이다. 주기가 다른 파동을 더한다는 것은 공간의 한 지점을 정하고 떨림의 시간적 간격이 길거나 짧은 다양한 역사가 시간 속에서 합쳐진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파동을 합치는 과정에는 특이한 원리가 작동한다. 가령 두 개의 파도가 마루와 마루로 만나는 경우(위상차 = 0도)에는 각자가 지닌 파도의 높이가 온전하게 더해지지만, 마루와 골의 상태로 만나는 경우(위상차 = 180도)는 서로 상쇄시킨다. 마루와 골의 차이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다름으로 합쳐지는 경우(0도 < 위상차 <180도)는 온전한 합과 완전한 상쇄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값을 지닌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파동이 합쳐지는 모습은 벽돌과 모래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경우와 다르다. ‘위상차’에 따라 온전하지 못한 합이나 상쇄가 작동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다양한 파동의 합을 복잡한 수식으로 이해하기보다 좀 더 감각적인 ‘맛’으로 느껴보자. 요리에 사용되는 양념들은 풍미를 더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불쾌한 냄새나 향을 잡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양념들을 모두 더하면 버무리기 전의 특성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색다른 맛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파장과 주기가 다른 여러 개의 파동을 더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배합의 비법은 맛의 ‘레시피’를 닮았다. 다양한 맛에 빛과 소리의 이미지를 대응시킨다면 버무려진 양념은 파장과 주기가 다른 다양한 색과 음이 혼합된 파동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레시피’는 세 가지 사항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어떤 색과 음의 높낮이를 선택할 것인지, 둘째 그 색과 음을 얼마나 많이 사용할 것인지, 마지막으로 그 색과 음이 보강( + )을 위한 것인지 혹은 상쇄( - )를 위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파장이 긴 빨강의 매운 맛은 아주 조금, 몸에 좋은 초록은 아주 많이, 하늘빛 소금은 짜지 않게 적당히 뿌려야 한다. 그렇게 다양한 양념들의 배합에 따라 다채로운 색깔의 빛과 소리를 버무린 맛은 공간적으로는 국소화된 영역만을 점유한 ‘섬’이 되고 시간적으로는 아주 잠시 요동치는 심장의 맥박 같은 ‘펄스’가 된다. 공간적으로 수평선 위에 동그마니 솟아오른 섬 모양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파장의 파동들을 잘 버무려야 하고 시간적으로 맥박 같은 펄스 모양을 얻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기의 파동들을 잘 버무려야 한다.

공간적 혹은 시간적으로 국소화된 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파수(1/파장)과 주파수(1/주기)의 배합 비율이 필요하다.
공간적 혹은 시간적으로 국소화된 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파수(1/파장)와 주파수(1/주기)의 배합 비율이 필요하다.

이렇게 ‘섬’과 ‘펄스’를 만들기 위해 파장이나 주기가 다른 파동들을 어떻게 배합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레시피를 푸리에 변환(Fourier transform)이라고 한다.수학적 편의를 위해 주기의 다름은 주기의 역수인 주파수(frequency)로 표현하고, 파장의 다름은 파장의 역수인 파수(wave number)를 종종 사용한다. 주파수의 레시피를 사용해 빛과 소리의 양념을 버무리면 시간축 위의 맥박이 되고, 파수의 레시피를 사용하면 특정 공간에 국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섬’이 만들어진다. 그들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파동은 공간적으로는 모든 영역에 펼쳐져 있고 시간적으로도 멈추지 않고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마법 같은 주파수와 파수의 레시피에 따라 버무리면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만 모습을 드러내고 다른 영역은 모두 상쇄시켜 버리는 것이다. 즉, 섬 주변에 펼쳐진 수평선의 단조로운 모습은 다양한 파동이 합쳐져 만들어 낸 상쇄의 결과인 것이다.

내 실험실에는 펄스 레이저가 많다. 그래서 과학 지식이 없는 방문객이나 처음 실험실에 들어온 인턴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어떻게 펄스를 만드냐는 것이다. 펄스 레이저에 대비되는 단어는 연속 레이저다. 시간적으로 빛의 파동이 끊기지 않고 연속해서 발진된다는 뜻이다. 펄스 레이저 기술은 나노(nano = 10-9) 초, 피코(pico = 10-12) 초, 펨토(femto = 10-15) 초를 지나 최근에는 아토(atto = 10-18) 초 펄스 레이저까지 개발되고 있다. 펄스라는 것은 공간과 시간 측면에서 모두 국소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공간적인 폭과 시간적인 폭을 정의할 수 있다. 파수(wave number)폭이 넓은(다양한 파장을 사용하는) 레시피는 그 결과로 만들어진 펄스의 국소화된 공간폭을 줄이고, 주파수(frequency)폭이 넓은(다양한 주기를 사용하는) 레시피는 그 결과 만들어진 펄스의 시간폭을 줄인다. 따라서 시간폭이 좁은 펄스 레이저를 만들기 위해서는 넓은 주파수 영역의 빛을 잘 버무려야 한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스쳐가는 펄스 속에는 많은 색깔의 빛이 합쳐져 있는 것이다.

펄스 레이저는 파장이 다른 다양한 정상파(mode)들 사이의 위상차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모드잠금(mode-locking)을 통해 만들어진다.
펄스 레이저는 파장이 다른 다양한 정상파(mode)들 사이의 위상차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모드잠금(mode-locking)을 통해 만들어진다.

다양한 색깔의 빛들을 단순하게 합친다고 펄스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색깔이 다른 파장들은 주기와 파장이 모두 다르지만 서로 간의 위상차를 지니고 있는데 펄스가 되려면 그 위상차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가령 흰색 백열전구에서도 다양한 색깔의 빛이 방출되지만 색깔 사이의 위상차가 무작위로 변하기 때문에 폭넓은 주파수의 여러 파동을 모두 더했음에도 펄스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반면 펄스 레이저는 색깔이 다른 파동들 사이의 위상차가 유지될 수 있게 하는 과정이 내재되어 있는데 이것을 모드 잠금(mode-locking)이라고 한다. 모드 잠금은 레이저 공진기 내에서 제각기 고유한 방식의 진동을 하고 색깔이 다른 정상파 mode들 간 위상차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강제하는 과정인 것이다.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는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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