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36) 양자 자살

김광석 승인 2022.06.05 08:52 | 최종 수정 2022.06.12 16:31 의견 0

프랑스에서 살던 시골 마을에는 미용실 겸 이발소가 한 군데밖에 없었다. 솜씨도 별로 좋지 못하면서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서 돈도 아낄 겸 아내가 집에서 바리캉으로 내 머리를 깎아 줬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초여름 어느 날에 나는 웃통을 벗고 마트 비닐 봉지를 덮어쓴 채 발코니 의자에 앉았다. 아내가 내 머리 위에서 요란스런 소리를 내는 기계로 덥수룩한 머리숱을 쳐내는 동안 집 앞 나무에 매달린 매미들은 그 소리에 맞서듯 소리 높여 울고 있었다. 기계음과 매미 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지는 이국땅 어느 산골 마을의 무료한 오후, 건너편 집 발코니에서는 감미로운 샹송이 들려왔다. 이내 후덥지근한 더위도 잊은 채 졸음이 몰려왔다. 마치 세상의 모든 시간을 멈추게 한 후 또 다른 세상으로 몰래 넘어가는 동화 속 마법사처럼 비몽사몽 한적한 길을 따라가다 결국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를 만큼 한참을 졸다 깨어보니 아내가 바리캉 사용에 익숙지 않은 탓에 나는 어딘가 좀 모자란 듯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어 있었다. 마치 장자의 나비 이야기처럼 여러 가지의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떠돌다 한순간 낯선 곳에 불시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양자역학 해석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다중세계 해석은 매 순간 여러 개의 세상이 있고, 여러 개의 내가 있다고 말한다. 상자를 열기 전에는 확률적으로 반은 죽고, 반은 살아있는 고양이라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이런 요상한 제안을 하고 있다. 그런데 슈뢰딩거 고양이와 다르게 관측자와 관측 대상이 별개가 아닌 동일한 경우가 되면 아주 흥미로운 결과가 발생한다. 즉, 내가 나를 관측하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다중세계에 각각의 내가 있고 그것을 관측하는 것도 나인 것이다. 하지만 관측의 나 역시 절대적 우위를 지니지 못하는 수많은 다중세계의 한 명이다.

다세계해석(many-world interpretation) 모형은 슈뢰딩거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순간 두 개의 세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다세계해석(many-world interpretation) 모형은 슈뢰딩거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순간 두 개의 세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그림 출처 = 위키피디아]

최근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교수는 '양자 자살에 의한 불멸성(immortality)'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출판한 적이 있다. 슈뢰딩거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관측자와 고양이를 동일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러시안 룰렛 방식의 ‘양자 자살’을 하는 것이다. 즉, 방아쇠를 당겼을 때 양자역학적 ‘중첩’ 상태에 의해 총알이 나갈 확률이 50%가 되도록 설정한 후 자기 머리에 총을 쏘는 것이다. 방아쇠를 당겨 동시에 공존하는 두 상태를 깨트린다는 점은 상자를 열어 삶과 죽음이 중첩된 둘 중 하나의 상태로 붕괴시키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례와 유사하지만 러시안 룰렛은 중첩을 깨트리는 ‘측정’을 하는 자와 ‘관측의 대상’이 동일한 것이다.

머리에 총을 맞은 자는 결코 살아있는 자신을 관측할 수 없다. 그러나 총을 맞지 않은 자는 항상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이 논의는 총에 맞고도 의식이 있는 경우는 배제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결과를 두고 테그마크 교수는 다중세계 해석에 입각해 의식적 ‘불멸성’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다소 허무하고 황당한 해석이지만 앞서 언급한 전지적 시점을 버리고 나면 나름 그럴듯해 보인다. 깨어 있다는 것, 무언가를 인지한다는 것,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다중세계에서는 상식 이상의 비중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아직은 ‘인지’의 개념이 종교, 철학, 심리학, 뇌·신경과학, 물리학마다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양자물리학을 ‘인지’와 연결시키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슈뢰딩거 고양이의 경우, 관측대상(객체)과 관측자(주체)가 다르지만 양자자살의 경우 객체와 주체가 동일해 진다.
슈뢰딩거 고양이의 경우, 관측대상(객체)과 관측자(주체)가 다르지만 양자 자살의 경우 객체와 주체가 동일해 진다.

최근 뇌 신경 속 신호처리 과정에 양자물리가 내재할 것이라는 가설이 많은 주목을 끌고 있지만, 실험적으로 규명된 사례는 아직 없다. 하지만 눈부시게 발전하는 ‘뇌공학’과 ‘인지과학’이 조만간 ‘인지’에 대한 과학적 정의와 비과학적 경계를 좀 더 명확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김광석 교수 :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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