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17) 크레용팝

김광석 승인 2022.01.13 11:48 | 최종 수정 2022.01.15 09:21 의견 0
크레용팝 시드니 공연실황 [유튜브
크레용팝 시드니 공연실황 [유튜브 John H] 

규칙적으로 오가는 진자나 드넓은 바다 위로 출렁이는 파도는 많은 영감을 떠오르게 한다. 안무가들은 이런 주기적 모습을 다양한 춤으로 표현하고, 떨리고 흔들리는 마음은 발라드곡 가사의 단골 메뉴다. 반면, 물리학은 ‘진동’과 ‘파동’을 구분한다. 동일 상태로 반복해서 돌아오는 회귀성에 대해 진동은 시간적 측면만 고려하지만 파동은 공간과 시간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살펴야 한다. 구체적으로 파동은 아주 많은 진동이 합쳐져 만들어진다. 그래서 파동이 진동보다 어렵다. 공학계열 학생들은 이 과정을 복잡한 수학의 언어로 풀어내야 하는데 처음 이 내용을 접하는 학생 중에는 수식에만 매몰되어 핵심이 되는 원리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2012년 B급 감성의 ‘빠빠빠’가 유행하던 당시, 크레용팝이라는 팀의 재미있는 춤동작을 보던 중 진동과 파동을 몸으로 익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학생들 여러 명을 불러내 율동을 시킨 적이 있었다.

한 명이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촬영해 시간순으로 나열해 보면 ‘진동’의 주기를 알 수 있다.
한 명이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촬영해 시간순으로 나열해 보면 ‘진동’의 주기를 알 수 있다.

우선, 용수철처럼 한 명이 앉았다 일어나는 진동(oscillation)을 해석해 보자. 온전히 서 있는 상태를 양(+)의 최대위치, 가장 낮게 앉은 경우를 음(-)의 최소 위치라 하면, 그 중간 어딘가에는 기준이 되는 0의 위치도 정해진다.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반복하는 한 명의 동작을 0.1초 간격으로 촬영한 여러 장의 사진을 나열해 보자. 시간 축 방향으로 출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같은 위치로 돌아오는 주기(period)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진동의 실체인 주기성은 과거의 모든 순간을 나열할 수 있는 기억에 의해 드러난다. 무엇에 관한 것이든 역사는 주기를 드러낸다.

시간 축에서 출렁이는 그래프에서 봉우리와 골짜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중간의 어정쩡한 지점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산 능선을 타고 내려온 중턱 어디쯤을 어떻게 묘사해야 다른 사람이 쉽게 찾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물리학은 매 순간 높이 X라는 1차원적 정보만을 알려주는 진동을 2차원적 원운동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대신 원운동이 좀 특이하다. 실재적인 실수의 X축과 비실재적인 상상의 허수 Y로 구성된 평면 위를 회전하고 있다. 이를테면 체험하고 목격하는 현실의 실수 X와 믿고 꿈꾸는 허수 Y로 구성된 복소수(complex number)의 평면을 회전하고 있다.

매 순간 높이 X라는 1차원적 정보만을 알려주는 ‘진동’은 2차원적 XY평면에서 회전하는 원운동이 X축으로 투사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매 순간 높이 X라는 1차원적 정보만을 알려주는 ‘진동’은 2차원적 XY평면에서 회전하는 원운동이 X축으로 투사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체험하고 목격하는 현실에 몸뚱이를 붙이고 살아가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를 상상하고 믿는다. 실재적인 현실이 팍팍할수록 비실재적인 허공을 헤맨다. 그렇게 몽상 속을 떠돌다 꿈에서 깨어나듯 다시 현실에 서 있는 위치를 절감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복소수의 XY 평면 위를 회전하는 작대기의 그림자를 실재적인 실수 X축으로 투사하라. 만약 꿈과 현실이 일치하는 상황이라면 실재적인 실수값의 크기는 최대가 된다. 하지만 현실을 벗어난 곳에 있다면 현실에 투사한 크기는 작대기의 온전한 길이를 얻지 못한다. 허수축 Y 방향으로만 수직하게 뻗은 몽상가의 현실 값은 0이다. 각각의 다름은 원운동의 각으로 표현할 수 있고, ‘위상각(phase angl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시간 축으로 표현된 X의 진동 그래프에서 봉우리와 골짜기의 다름을 위상각으로 표현하면 180도다.

용수철 위치를 시간에 따라 그래프로 그려봐도 유사한 파도 모양이 나온다. 하지만 진동의 매 순간을 포착한 사진 속에서 용수철의 끝자락에 매달린 추는 정적인 점일 뿐이다. 진동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의 공간 속에 파도 같은 출렁임은 없다. 하지만 수면 위의 파문이나 바다의 파도는 다르다. 순간을 포착한 파도의 사진 속에는 공간의 다른 지점마다 규칙적으로 출렁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다른 사진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파동 물결의 위치가 달라졌음을 알 수도 있다.

‘파동’은 시간을 멈추게 해도 공간에서 규칙적인 반복의 풍경을 보여준다.
파동은 시간을 멈추게 해도 공간에서 규칙적인 반복의 풍경을 보여준다.

바다에 들어가 같은 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면 내 몸에서 바닷물이 찰랑이며 높아지고 낮아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출렁임은 내가 서 있는 위치뿐 아니라 다른 공간에도 퍼져 있다. 파도의 물결은 멀리서 내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파동은 시간과 공간 양쪽 측면에서 모두 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파동은 여러 개 용수철이 결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크레용팝은 한 명이 뛰면 옆 사람이 앉는 모습이지만, 줄에 배열된 사람의 높이를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누면 제법 파동스러운 모습을 만들 수 있다. 언뜻 보면 경기장 관중들이 응원하는 ‘파도타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파도타기’의 경우, 파도를 만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은 사람은 이후에 아무 동작을 하지 않는다. 파도를 아직 만들지 않은 사람 역시 파도를 만드는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즉, ‘파도타기’응원은 모든 공간에서 출렁이는 모습이 아니라 특별한 공간에만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펄스를 만드는 셈이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펄스 보내기’라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하다.

진정한 파도를 구현하려면 한 줄로 늘어선 각자가 계속해서 진동해야 한다. 개인별로 보면 처음 서 있는 자세에서 앉았다가 다시 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0.6초의 주기만 잘 만들면 된다. 하지만 진짜 파도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옆 사람과의 파도 높이의 차이를 적절하게 잘 유지해야 한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하며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도 유지하려고 하는 옆 사람과의 다름은 원운동의 ‘위상 각도’의 차이다. 그림에서는 옆 사람과 다들 60도 위상차를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0초일 때 왼쪽 가장자리에 서 있는 크레용팝 멤버는 상상의 원운동의 실수 축에 있는 것과 같고 위상은 0도라고 한다. 0.1초가 지나 약간 쪼그려 앉은 상태는 반시계 반향으로 60도 회전한 것과 같다. 0.2초 후에는 0.1초에 있던 곳에서 다시 60도를 더 간 120도의 위치, 가장 낮게 쪼그려 앉은 0.3초에는 실수 축에서 0초와는 반대 방향인 180도 위치에 있게 된다.

파동의 규칙적 반복 특성은 공간과 시간의 측면에서 분석해야 한다.

특정 시간(예를 들어 0초)에 사진을 찍어 보면 여러명의 크레용팝의 멤버들은 공간적으로 파도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 이들은 동일한 시간에 있지만, 공간적으로 각자 다른 위상을 지니고 있다. 시간을 고정한 상태에서 공간적으로 보여 주는 반복적 거리를 파장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봉우리에서 다음 봉우리까지의 거리다. 다른 시간마다 찍은 사진 속 공간의 모습과도 비교해 보면 파동의 봉우리에 해당하는 멤버가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동은 이렇게 움직인다. 파장의 길이를 주기의 시간으로 나누면 파동의 위상 속력을 얻을 수 있다.

매 순간 옆 사람과의 위상차를 유지하려는 크레용팝 멤버들의 노력에 의해 파도 안무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매끈한 파동의 모습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매질이다.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다고, 우아한 선의 파형을 만드는 것은 줄이고, 허공 속에서 소리의 파동을 만드는 것은 공기 다. 매질을 구성하는 개체들은 크레용팝의 멤버들처럼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파동의 출렁이는 매끄러운 곡선은 개체 간에 존재하는 관계의 탄력성과 조화에 달려 있다. 한 개인은 제자리에서 지속적이며 규칙적인 일관성을 보여야 하며 주변의 개인들도 같은 주기를 유지하며 이웃과 일정한 탄성에 의해 타이밍을 조화롭게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서로의 다름에 해당하는 위상차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조화로운 일관성을 통해 규칙적이고 매끄러운 파동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파동 이론이 지겹고 어렵다고 느껴지면 그림처럼 여러 명이 함께 크레용팝 춤을 춰보길 권한다. 조화로운 파동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서로 집중해서 맞춰 나가는 몸의 기억들은 훨씬 감각적으로 이해를 도울 것이다. 힘과 운동을 다루는 물리를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은 본인이 직접 그 운동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수학의 언어로 표현된 물리를 체화된 지식으로 바꿀 수 있다면 좀 더 근사한 춤으로도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한 안무가는 어떤 춤을 만들어낼까? 물리학은 현대무용 안무가에게도 창작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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