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3) 무한의 엡실론 델타

『詩와 그림으로 읽는 감성물리』
낯설고 어려운 물리학을 동화처럼 들려줄 수 없을까?

김광석 승인 2021.09.29 10:23 | 최종 수정 2021.11.17 18:04 의견 0

물리학 초보자들은 흔히 속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육상 선수가 100m를 10초 만에 달렸다면 속력은 10m/초.”

속력은 100m ‘거리’나 10초 ‘시간’처럼 측정을 통해 바로 알 수 있는 값이 아니라 두 값을 사용해야 얻을 수 있다. 이런 연산에 대한 번거로움 때문인지 초보자들은 속력에 대한 이 서술의 문제점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경황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100m를 달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눗셈을 하지 않고도 빠름을 감각적으로 안다. 결승선 앞에서 다른 선수들을 추월하던 짜릿한 경험을 ‘10m/초’라는 ‘평균속력’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달리기의 극적 요소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매 순간 변하는 ‘순간속력’이 필요하다.

유한한 시간 간격을 사용해 얻어내는 '평균속력'은 '순간속력'과 다르다.
유한한 시간 간격을 사용해 얻어내는 '평균속력'은 '순간속력'과 다르다.

속력 측정기를 사용하면 실시간 속력 변화를 알 수 있다. 출발부터 도착까지의 속력을 시간에 따라 그려보면 매 순간 느꼈던 빠름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출발 당시에는 속력이 크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차츰 증가한다. 마지막에는 체력이 고갈되어 속력이 최곳값에서 조금 줄어드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속력 측정기 역시 시간 한계가 있다. 측정기에서 방출된 전파가 달리는 물체에 반사되어 다시 측정기에 감지되는 과정에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비록 그 시간이 아주 짧기는 하지만 속력 측정기 역시 ‘평균속력’을 제공하는 셈이다. 인간적 관점에서 그 정도로 짧은 시간이면 순간으로 취급해도 괜찮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노 스케일의 미시 세계에서 천분의 일 초는 빛의 생성과 소멸이 수만 번 일어날 수도 있는 영원과 다름없는 시간이다. 찰나의 시간도 유한하다면 ‘평균속력’일 뿐이다. 그 어떤 기계도 진정한 순간을 잡아낼 수는 없다.

이상적 순간은 크기가 없는 0의 시간이다. 하지만 속력 계산 과정에서 분모에 0의 시간을 사용하면 분자로 사용하는 거리의 크기와 상관없이 속력이 무한대로 발산해 버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순간속력’을 구할 수 있을까? 결국, ‘평균속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대신 유한 시간의 폭을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얻는 ‘평균속력’들이 특정 값으로 수렴해간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이를테면 10초의 시간 간격으로 얻은 평균속력은 특정 순간의 속력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다르지만 시간 간격을 1초, 0.1초, 0.01초, 0.001초로 줄여가다 보면 단계별 평균속력이 특정 값으로 다가간다. 즉, ‘미분’과 ‘무한수렴’의 원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도 없는 수렴의 그곳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가본 적은 없지만 일단 믿어야 하는 신앙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일까?

『詩와 그림으로 읽는 감성물리』 '엡실론-델타' 중에서

"우리 어디가?"
"홋카이도!"
"거기가 어딘데?"
"몰라!“

비행기 안에서 아이와 대화를 나누던 중, 지도 개념이 없는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의 관계가 함수를 닮아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함수는 출발지를 떠나 잠시 눈을 감고 있으면 금방 목적지에 자신을 데려다주는 비행기나 포탄의 여행을 닮았다. 여정의 과정에 존재하는 바다와 땅의 풍경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단지 ‘원인’이 되는 ‘출발지’와 ‘결과’에 해당하는 ‘목적지’ 사이의 관계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아마도 아이는 'x=부산'이면 'f(x=부산)=홋카이도'라는 사실만을 기억할 것이다.

지도처럼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물리적 여행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여행도 있다.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가치관이 제시하는 이상적 세계를 향한다. 이를테면 x=c라는 선택은 종교일 수 있고, 과학일 수 있고, 예술일 수도 있다. 그렇게 선택한 x=c가 f(x=c)=L이라는 '구원'이나 '진리', 혹은 ‘신세계’에 데려다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니르바나'의 L이 아닌 L+ε에서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이유는 현자가 발견한 x=c가 아닌 x=c+δ라는 잘못된 선택 때문일까? 아마도 x=c를 찾는 것은 바닷가의 수많은 모래알 속에서 바늘 하나를 찾아내는 것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범한 능력을 지니지 못한 평범한 인간은 x=c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으로 L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는 '믿음'을 지녀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 '믿음'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때로는 c에서 아주 조금 어긋난 사소한 실수가 L과는 너무나도 다른 곳으로 이끌 수 있다. 부산에 인접한 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홋카이도 근처로 나를 데려다줄 것이라 보장할 수는 없다. 결국,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선택은 단 하나의 x=c와 어긋난 많은 x=c+δ일 경우가 많다. 멀리서 보기에 x=c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는 기대감은 돋보기로 확대된 시각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진다.

엡실론-델타 논법은 x가 c에 다가감에 따라 함수 f(x)의 값도 L로 수렴할 수 있음을 c와 L에서 벗어난 상황과 그 과정에 대한 해석을 통해 증명한다.
엡실론-델타 논법은 x가 c에 다가감에 따라 함수 f(x)의 값도 L로 수렴할 수 있음을 c와 L에서 벗어난 상황과 그 과정에 대한 해석을 통해 증명한다.

미적분을 기반으로 하는 뉴튼 역학은 운동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는 함수를 제공할 수 있었지만, 그 기반이 되는 무한 수렴에 대한 엄격한 증명은 없었다. 증명의 부재는 결국 다양한 오해와 뉴튼 역학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까지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무한 수렴을 증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베르나르트 볼차노’라는 카톨릭 신부에 의해 제안되었다. 이른바 입실론(ε)-델타(δ) 논법으로 알려진 이 증명의 핵심이 되는 영감은 어쩌면 그의 사제로서의 삶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사제가 되어 마주한 현실 세상의 모습은 구원의 이상적 L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가난과 슬픔, 위선과 탐욕으로 얼룩진 L+ε를 마주하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함수 f(x)가 구원의 L에 데려다줄 수 있는 x=c를 알려줄 수 있다면 L에서 어긋난 가난의 L+ε과 슬픔의 L-ε을 유발한 원인 x=c+δ과 x=c-δ도 찾아낼 수 있다. ε과 δ도 f(x)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둘은 함수적 관계로 연결된다. 대신, 어떤 결과의 원인을 되짚어보듯 이상과의 차이인 ε를 목격한 후, 그 원인이 되는 δ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또 다른 함수적 여행 δ(ε)를 하는 셈이다. x=c+δ와 x=c-δ는 인간이 저지른 태초의 잘못이거나, 마음속 욕망이거나, 사회적 신분과 계급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리와 불평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어긋남을 유발한 원인을 발견한 후에 다시 질문할 수 있다. 현재 목격한 L+ε과 L-ε보다 더 좁은 범위로 다가설 수 있는 새로운 x가 가능할까? 비록 그 x 역시 여전히 c와 어긋난 값이지만 δ보다 작은 범위 속에서의 새로운 시도여야 한다. 그 시도 또한 이상적 L에는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기존의 ε과 비교해 보면 L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목격한 이상과의 차이 ε에 대해 그 원인인 δ을 찾고 기존의 ε에 비해 오류의 범위를 좁힐 수 있는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다면, 오차를 좁혀가는 기회는 무한히 가능하다. 즉, x=c에 다가서는 과정이 f(x=c)=L에 도달할 수 있음을 오차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시행착오’의 존재 가능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비록 유한한 시도의 과정에서 x=c를 발견해 f(x=c)=L에 도달하는 경험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어긋남이 좁혀질 수는 있다. 유한한 시간 오차를 통해 얻는 ‘평균속력’이 그렇게 ‘순간속력’으로 다가갈 수 있고,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학 지식 역시 그렇게 진리에 다가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신앙은 수학적이며 과학적이다.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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