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천천히 일어나는 변화, 그것보다 더 느리게 변해가는 계절의 변화, 1년을 단위로 회귀하는 봄. 옛사람들은 이런 자연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시간과 날짜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태양 고도와 달 모양 변화를 관찰해 양력과 음력 혹은 둘을 혼합한 다양한 방식의 달력을 만들었다. 요즘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에 사소한 것이라도 새로운 계획을 하나씩 세우곤 하지만 종교가 생활 깊숙이 스며든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아마도 부활절을 통해 새해의 다짐을 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가 며칠이냐고 물으면 곧장 12월 25일이라고 잘 대답하지만, 부활절이 며칠이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어른들 반응도 대부분 다르지 않다. 부활절 날짜는 매년 다르다.
예수가 태어나기 전부터 유대인들은 봄마다 치르는 과월절(유월절)과 무교절의 전통이 있었다. 신의 계시에 따라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둔 집은 재앙이 지나쳐갔지만(Passover) 그렇지 않은 집의 맏아들은 모두 돌연사해버린 열 번째 재앙을 통해 유대인들은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났다. 이후 첫 번째 낳은 가축의 수컷 새끼를 신에게 바치던 유목민족의 오래된 방식은 그날의 어린 양의 피를 기억하는 과월절(유월절)이 되었고, 급하게 이집트를 탈출하느라 발효되지 못한 반죽으로 만든 빵을 먹으며 사막을 건너가던 힘든 기억은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의 전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구약의 이런 전통은 신약에서 예수가 맞이하는 마지막 삶의 순간과 대비를 이룬다. 예수는 과월절(유월절) 축제 당일,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지만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한 제자의 밀고로 체포된다. 하지만 만찬 중 제자들에게 자신의 ‘피’와 ‘몸’이라 말하며 포도주와 빵을 나눠주는 장면은 과월절과 무교절의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유대인들은 특이하게도 춘분 근처 달이 처음으로 사라지는 월삭을 1월 1일로 삼았다. 초기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의 달력으로 1월 14일에 과월절(목요일),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1월 15일에 무교절(금요일), 1월 17일에 부활절(일요일)을 기념했다. 하지만 로마 교회에서는 율리우스력과 춘분을 기준으로 하는 날짜로 부활절을 기념했고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 문제가 함께 결부되어 부활절 날짜 논쟁은 격화되었다. 결국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춘분이 지난 후 만월 이후의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정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한 율리우스력의 춘분 날짜인 3월 21일 역시 수백 년이 지나자 천문학적 회귀 연도와의 누적된 오차에 의해 16세기 후반에는 3월 11일까지 당겨져 그레고리력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기준으로 날짜를 정하는지에 따라 죽음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기적의 날짜가 연기되기도 하고 앞당겨지기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태양 고도로 정해지는 춘분을 기준으로 하지만 만월이라는 달의 모습을 통해 구체적인 부활절의 날짜를 정하는 니케아 공의회의 합의는 오래된 토착 신화를 흡수하게 한다. 춘분이라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부활절의 영어 단어 Easter는 봄을 알리는 여신에 기원을 두고 있다. 북유럽의 춥고 긴 겨울을 지내고 봄의 햇살을 맞이해보면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만큼 너무도 반가워서 마치 여신을 맞이하는 것 같다. 그래서 부활절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춘분은 새로운 빛과 생명을 상징하는 대지의 여신 혹은 대자연의 어머니와 어우러지는 오래된 축제의 시기였다.
한편 춘분을 기준으로 하지만 부활을 맞이하는 날짜를 달의 모양으로 결정하는 역법은 달을 토끼 신화와 연결시킨다. 이집트에서는 살해되어 토막 난 시신이 나일강에 버려진 후 우여곡절 끝에 다시 부활한다는 오시리스(Osiris)의 신화가 있는데 부활 이전의 그는 종종 토끼 머리를 한 ‘운네페르(Unnefer; un=open, nefer=good)’의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토끼는 주변 환경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어딘가로 숨어버리는 속성 탓에 은밀한 비밀을 전달하는 전령사로 묘사된다. 마야인들과 아즈텍인들 역시 달 토끼의 전설을 믿고 있었고 12간지 중 하나인 토끼의 시간은 밤의 어둠을 지나 새벽의 햇살을 맞이하는 아침 5시에서 7시 사이다. 그렇다면 겨울에서 봄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부활의 새로운 삶과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비밀을 알려주는 존재가 토끼일까? 하지만 달이 지구에 그 모습을 보이며 알려주는 날짜는 부활절처럼 가변적이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한 손에 든 주머니 시계를 보며 뛰어가는 토끼를 뒤따라가다 이상한 나라에 들어서게 된다. 이 모습은 달에서 내려온 토끼가 대지의 여신(앨리스) 지구에게 보여 주는 시간이 환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보는 것은 과연 믿을만한 것일까? 관측 대상은 지속적인 시각 정보를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영화필름처럼 단절된 짧은 순간의 장면들로 구성된 것은 아닐까? 일상 속 물체들의 움직임은 모두 시간의 흐름이라는 공통의 방향성을 지니고 있지만 반대 방향은 허락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끓던 물이 갑자기 차가워지고 추락하던 그가 다시 높은 곳으로 도약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 필름은 가능하다. 필름의 배열방식에 따라 시간이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게 반들 수 있다. 심지어 미래, 현재, 과거를 진자처럼 반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 대체로 그런 비현실적인 움직임을 환상이라 부르지만, 환상은 불가능한 것일까?
스트로보스코프(Stroboscope)라는 장치가 있다. 회전하는 선풍기 날개의 한 귀퉁이에 붙인 별을 향해 어둠 속에서 주기적으로 깜빡이는 조명을 비추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만약, 선풍기의 회전주기와 조명이 켜지는 주기가 똑같다면 별은 늘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명이 켜지는 주기가 짧아지거나 길어지면 별은 매 순간 위치를 바꾸며 회전하기 시작한다. 조명이 빛을 비추는 시간이 너무 짧다면 우리는 영화를 감상하듯 단절을 느끼지 못한 채 자연스러운 별의 움직임을 목격할 것이다.
예를 들어 토끼가 달리는 장면들을 낱장의 사진으로 찍어 한 장씩 디스크의 테두리에 붙여 보자. 대신 시간순으로 전개되는 동작을 담은 낱장들은 디스크의 테두리를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붙인다. 이제 사진 한 장 정도의 크기만 비추는 고정된 조명을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디스크에 비춰보자. 대신 조명은 일정한 주기로 깜빡거려야 한다. 만약 조명의 깜빡거리는 주기가 디스크가 한 바퀴 회전하는 주기와 동일하다면 정지한 듯 똑같은 장면만을 보게 된다. 즉, 토끼는 특정 순간의 모습으로 멈춰 있다.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조명의 깜빡임 주기가 디스크 주기보다 약간 길면 사진이 한 칸씩 밀리면서 달리는 토끼를 보게 된다. 그러나 조명의 깜빡임 주기가 디스크 주기보다 조금 짧으면 제자리에 멈춰 선 그 장면을 포착해야 하는 타이밍에 비해 빛이 조금 빨리 켜져 과거의 장면을 보게 된다. 이제 토끼는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처럼 뒤로 달리기 시작한다.
낡은 LP판이 돌아가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참 좋다. 빛바랜 낡은 앨범 자켓을 열어 보는 것도 좋고 추억처럼 드문드문 튀는 잡음도 좋다. 디스크가 맴돌며 퍼져 나오는 음악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순간이 좋고 디스크 위에 그어진 무수한 선들이 주름진 얼굴처럼 낯익다. 하나의 주름에 하나의 기억이 새겨져 있고 기억은 바늘 끝으로부터 음악으로 새어 나온다. 방안 불을 모두 끄고 LP플레이어 곁에 있는 작은 조명 하나만 켜 두어도 좋다. 어스름한 불빛 속에서 담배 연기처럼 음악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나면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오래된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조명 아래 보이는 디스크에 패인 수많은 홈들이 영화 속 장면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어느새 나는 꿈속으로 빠져든다.
별빛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하늘에는 보름달만 떠 있다. 달빛은 마치 깜깜한 무대 위에 설치된 조명처럼 한줄기 빛살들을 비추고 있는데 그 아래는 하얀 토끼가 주머니 시계를 보며 뛰어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토끼가 달리는 검은색 바닥은 미세한 홈이 패여 있는데 홈 속의 요철이 꿈틀거리는 것으로 봐서는 토끼가 달리는 바닥 역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회전하는 거대한 LP판이나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처럼 토끼는 움직이는 바닥 위를 달리고 있지만 달빛이 깜빡거려서 그런지 움직이는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마치 오래된 흑백 영화를 보는 것처럼 연속적이지 못하고 동작이 어딘가 이상하다. 달빛 조명 아래 달리는 토끼는 제자리에 멈춘 듯 보였다가 간혹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뒤로 간다. 지구에게 보여주는 달의 시간을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비슷한 방식으로 부활이 일어난 기적의 날짜도 매년 바뀐다.
◇김광석 교수는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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