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하는 배성의 <바람에 띄운 사연>은 제목이나 가수도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노래로 방송이나 행사에 거의 올라오지 않는 이름 없는 곡입니다.
그러나 이 노래의 가사는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한 사내가 한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다가가지만 거의 대부분이 상대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사내들만이 겪는 보편적인 아픔이자 불치병인 사랑병, 간혹 짧게 관심을 받은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단 한 번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혼자 가슴만 태우는 보다 근원적인 아픔에서 비롯됩니다.
부지불식간에 문득 한 사내의 가슴에 각인(刻印)되면서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을 저리게 하고 오금을 떨리게 하는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그 지순(至純)한 그리움, 그 수백만 년 된 오랜 그리움이자 동서고금의 거의 모든 공통분모인 그리움에 대하여 무명의 트로트 <바람에 띄운 사연>만큼 진솔하고 애절한 노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그리움의 대표주자중의 한 명인 필자가 새삼 설레는 가슴을 쓸면서 가사 1절을 살펴보면
바람에 띄운 사연 / 작사 조영하, 작곡 박원 배성
갈잎이 우거진 언덕에 올라서
소리쳐 불러본 잊지 못 할 그 이름
바람에 띄워 보낸 그립다는 말 한마디
아아아 몰라준다면 내 사랑 어이 하려나
갈잎이 우거진 언덕에 올라
소리쳐 불러보는 잊지 못할 그 이름.
보다시피 작사, 작곡, 노래 세 관련자가 다 무명입니다. 거기다 한 사내가 혼자서 갈잎이 우거진 언덕에 올라 소리쳐 불리 보며 흉중의 말 한마디를 실제로 전해볼 용기나 자신도 없이 그냥 바람에 띄워 보내는 가사내용도 아주 단순합니다. 그러면서도 제 가슴속에 깊이 각인 된 심중의 여인을 영아, 순이야, 이름마저 불러보지 못 하고 그냥 <잊지 못 할 그 이름>이라고만 반추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남자가 칼을 뺐으면 한번 찔러보기라도 하라.>는 말처럼 뭔가 한번 현실적으로 저질러보기는커녕 그냥 잊지 못 할 그 이름만 되뇌며 노래가 마무리 되어 무슨 기대를 가지고 귀를 기울였던 사람이라면 너무나 실망하고 말 서글픈 노래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더욱이 늘 사랑에 목이 마른 사내들에게 늘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 때로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따스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무지개나 신기루처럼 저 아득한 곳에서 눈이 부신 광채로 반짝이다 정작 한발 다가서면 저만치 점점 더 멀어지는 여인들은 그 냉정한 눈빛과 침묵으로 말없는 사내를 절망의 나락에 떨어트리고 맙니다. 그렇게 사랑병에 걸린 사내들에겐 결코 손이 닿지도 않는 먼먼 그리움일 뿐,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그리움의 노예인 사내에겐 못 잊어, 못 있어 끝내 못 잊는 아픔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여기에서 그렇게 사내들의 애간장만 태우고 머나먼 곳, 오래 된 그리움이 되어가는 이 세상의 여인들 특히 눈빛이 깊고 목소리가 곱고 미소에 향기가 뚝뚝 흐르는 여인들을 원망하고 그 일부의 책임을 물 수가 없을까요?
예. 정답은 <아닙니다.> 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이승의 모든 동물은 음양의 이치에 의한 자웅(雌雄)의 원리에 의해 살아갑니다. 그런데 한자의 자웅, 모빈(牡牝)처럼 암수의 원리에는 모두들 여성성, 즉 이 세상의 대지가 되고 물이 되어 생명을 배태하는 암컷에 우선적인 선택권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교국가인 우리 조선만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부부유별(夫婦有別), 부창부수(夫唱婦隨)를 들먹이며 사내를 앞세우다 해방이후 가족계획운동이 생길 당시 처음으로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발상을 전환한 것입니다. 그것은 서양에서는 벌써 수만 년 전부터 <레이디 엔드 젠틀맨>으로 여성우위의 레이디퍼스트가 생활화가 된 데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냉정한 여인을 규탄하고 안타까운 사내를 구출하고 사내를 그리움으로 부터 구출하지 못 하는 이유는 따로 있으니 바로 <성(性)의 선택권>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남녀든 동물의 암수든 모든 동물이 짝짓기는 반드시 그 2세인 자식과 새끼를 제 몸으로 직업 분만(分娩)하는 어미에겐 자동으로 <양육의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여인이 무슨 죄가 있어 그렇기 보다는 사내건 황소든 전갈이든 세상의 수컷들은 모두 수많은 정자(精子)를 가지고 사랑이건 아니건 어디고 마구 침탈해 제 복사판인 새끼를 찍어내려 합니다. 그러나 여자나 암컷의 입장에선 그 중 강한 유전자를 받아 건강한 새끼를 낳아 키우기 위해 아주 소수의 난자(卵子)를 생산하여 그것도 한 번에 겨우 2,3일 배란기를 두어 자기 맘에 가장 드는 수컷, 힘이 좋아 먹이를 구하기 쉽거나 맵시가 좋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상대를 택해 잠깐 사랑을 하고 오랜 기간 새끼를 키워야 하니 여성의 냉정함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기 세포에 새겨진 유전자의 길을 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대체로 냉정하여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사내는 늘 여인에 목마른 상사병의 희생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단순하면서도 무지 철학적이고 가슴이 저린 노래를 저는 나이 69세가 되어 우연히 뜯고 단번에 빠져 요즘 제가 가장 많이 듣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나이 일흔의 병든 사내가 이렇게 끝없는 연모의 노래를 여태 좋아한다는 것은 어쩌면 같은 사내로서 좀 창피하거나 여자의 입장에서 징그러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땅의 고등동물 인간이란 한 종(種)으로 사내가 모두 앓아야 하는 그 병을 남보다 더 절실히 앓을 뿐 저는 그 사실이 부끄럽지도 않고 이 애타는 연가를 절대로 포기할 의사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꼭 한번 들어보고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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