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로 불리기도 하는 나훈아의 노래 <홍시>는 빨갛게 홍시가 익어 가면 어릴 적의 어머니가 연상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인, 특히 보릿고개의 시골에서 자라난 사람으로서는 누구나 겪어온 지극히 평범한 모정과 향수를 모티브로 한 노래로 가사자체를 하나의 시(詩)로 본다면 우선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라는 조금은 생뚱스런 출발을 보입니다. 어떤 엄마나 젖을 물려 재울 때는 당연히 입맞춤이나 눈웃음으로 다정하게 다가가기 마련인데 자장가나 미소도 없이 바로 젖가슴을 내어준다는 것은 작사자 나훈아 모자가 아무리 경상도 사람이라고 해도 너무 단순하고 성급해 다정다감한 엄마들의 속성과 많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다 그 엄마를 떠올리는 구체적 도입부로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걱정
눈이 오면 눈 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
는 이 땅에 사는 어느 어머니라도 객지에 떠난 자식을 걱정하는 지극히 간절하고 살가운 염려와 근접하며 이윽고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에는 어느 정도 사회성, 철학성을 띠게 되며 이어
사랑땜에 울먹일세라
에서는 갑자기 누구나 가슴이 먹먹할 애절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며 절로 눈시울이 붉어지게 됩니다. 마치 지금까지 이어온 단순하고 평범한 가사가 오로지 이 한 줄 <사랑땜에 울먹일세라.>를 끌어내기 위한 전조(前兆)이며 그 감흥을 극대화하기 위한 소품인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땜에 울먹일세라>는 지금껏 발표된 어느 시나 가요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절묘한 표현으로 그야말로 눈에 선하고 가슴이 뭉클한, 우리 한국어의 간절한 표현력을 가장 잘 드러낸 실례(實例)로서 마치 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대단원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라.>의 <아니 눈물>에 버금가는 절구(絶句)며 절창(絶唱)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노래의 백미이자 존재이유이기도 한 <사랑땜에 울먹일세라>를 음미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아직도 흔히들 조선사람이라고 부르는 이 땅의 모든 부모는 조선의 개국 이후 600년이 넘게 일관해온 유교적 명분과 격식, 체면문화에 젖어 아버지와 아들사이, 어머니와 딸 사이에 성(性)에 대한 언급이 터부시 되어 성교육이 있을 수가 없는 판에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장성한 아들에 대해 어머니가 <사랑땜에 아파할세라>라는 간지럽고 남세스러운 걱정은 상식적으로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땅의 어머니들이 모두 아들의 사랑이나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무엇보다도 아들이 좋은 여자를 만나 자식을 낳고 재산을 불리며 호강하며 살기를 바라며 아침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빌지라도 단지 돌덩이처럼 굳어진 유교적 관습 때문에 감히 그런 말을 입에 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건 돌아가신 제 어머니가 평생 아들의 구체적 연애나 여자, 결혼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이 없이 단지 제가 태어나서 첫 사주를 보니 <식복이 많고 처궁(妻宮)이 좋다더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생면부지의 처녀와의 결혼을 고분고분 받아들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금기시 된 아들의 사랑과 여자에 대한 걱정은 사실상 한 부모가 자식에 대해 할 수 있는 일반적 걱정, 을 지나 그 아들이 한 사내로서 완성되는 마지막 단계, 사랑과 연애, 여자문제는 절대적 금기임에도 <사랑땜에 울먹일세라>로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은 가수의 청년기 70년대 당시로서는 참으로 신선한 충격인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가수 나훈아(또는 작사, 작곡에 능한 최홍기)에 대해서 장대한 체격과 야성미 넘치는 눈빛과 목소리로 단숨에 여심을 사로잡는 카리스마 넘치는 가수로 생각하지만 그를 가까이서 보면 신비로울 정도로 강력한 흡인력을 가진 눈빛에 노래는 물론 작사와 작곡에도 능한 천부적인 뮤지션이며 하다 못해 붓글씨를 써도 알 수 없는 신비한 광휘(光輝)가 묻어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남다른 염력(念力)에 의해서만이 <사랑땜에 울먹일세라>가 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단지 9글자의 이 절구는 그래서 우리 가요계의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구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노랫말입니다.
홍시(울 엄마) / 작사 작곡 최홍기, 노래 나훈아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오면 눈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젖을 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 세라
사랑 땜에 울먹일 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회초리 치고 돌아 앉아 우시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바람 불면 감기들 세라
안먹어서 약해 질 세라
힘든 세상 뒤쳐질 세라
사랑 땜에 아파 할 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도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하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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