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⑧ 이연실 〈목로주점〉
에세이 제1142호(2020.11.1)
이득수
승인
2020.10.31 13:08 | 최종 수정 2020.10.3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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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실 작사, 작곡, 노래의 <목로주점> 가사는 아주 오랜 친구에게 목로주점에서 만나 큰 잔에 술을 붓고 마주 앉아 마시자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또 둘이 마주보고 껄껄 웃으면서 월급을 타서 로프를 사고 적금을 타서 낙타를 사서 산에 오르고 사막에 가자고 얘기하는 퍽 감미롭고 낭만적인 내용입니다. 가사 1절을 보면
목로주점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으로 찾아오라던 이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따르고 이왕이면 마주앉아 마시자 그랬지 그래 그렇게 마주 앉아서 그래 그렇게 부딪혀 보자 가장 멋진 목소리로 기원하려마 가장 멋진 웃음으로 화답해줄 께.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전체적으로 붕붕 뜨는 느낌의 흥겨운 멜로디도 좋지만 기름이 잘잘 흐르는 햅쌀밥 같이 매끄럽고 감미로우면서 당돌할 정도로 톡 쏘는 목소리가 아주 특이합니다. 향수, 모정, 사랑과 이별 등 주로 슬픈 가사와 애절한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는 우리의 가요에서 보기 드문 김수희의 <애모>나 <남행열차>같은 똑 부러지고 앙칼진 목소리와 비슷하면서 좀은 부드럽고 푸근하며 비눗방울처럼 동글동글 맺히는 목소리가 오히려 기분을 돋우는 것 같습니다.
정겹기는 하지만 비교적 단순한 가사에 비해 저는 작사, 작곡을 겸한 가수 이연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연실이라는 가수는 동글동글하고 앳된 얼굴의 한 40대 초반 쯤의 특이한 가수로 생각했는데 웬걸 인터넷을 검색하니 저보다도 연상인 70대 초반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70-80의 통기타가수의 스타인 양희은, 박인희와 절친한 사이로 자유로운 영혼들이 뭉친 남자 <세시봉>에 버금가는 <여자세시봉>의 주역이라 할 만한 가수였습니다.
거기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연실을 자신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 평생 미혼으로 카페를 경영하며 손님들과 어울리며 통기타를 치다 영감이 오면 작사, 작곡, 노래를 한꺼번에 해치우는데 그 자유로운 발상과 감미로운 목소리가 드넓은 우리 가요계에 가장 개성 있는 일각(一角)을 차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목로주점>의 가사 중 가장 핵심은
월말이면 월급타서 로프를 타고연말이면 적금타서 낙타를 사자그래 그렇게 산에 오르고그래 그렇게 사막에 가자-
라는 구절입니다. 월말에 월급을 타 로프를 사 산에 오르는 것은 다음 주에 다시 직장과 일상으로 돌아가는 작은 일탈(逸脫)로 도시의 소시민이 누구나 꿈꾸며 또 어렵사리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연말에 적금을 타 낙타를 구해 사막에 가자는 것은 그 비용과 절차가 결코 쉽사리 이루어질 일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단순한 일상의 탈출이 아니라 라이프사이클의 급격한 전환, 말하자면 팔자(八字)를 바꾸는 일과 같아 그 낙타를 타고 다시 도심의 직장으로 돌아올 수 없는 일종의 몽상, 허황한 꿈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말도 안 되는 가사가 그렇게 감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도시생활에 찌든 현대인은 누구나 그런 탈출을 꿈꾸고 있으며 자기로서는 감히 뛰어들 수도 없는 그 황홀한 꿈에 카타르시스(대리만족)를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낙타를 타고 사막에 가자는 친구도 또 그 이야기를 들으며 껄껄 웃는 친구도 이미 자신들이 그 사막에 갈 수 없음을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그 이야기가 재미있고 뿌듯한 것은 바로 값싼 소주와 30촉 백열등의 허술한 조명 속에서 평소에 억눌린 소시민의 우울을 날리고 영혼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분위기와 포장마차 바깥에 조용히 내려앉는 어둠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혼자 조용히 기타를 치며 작사, 작곡, 노래를 겸한 음유시인 이연실이 당대 제일의 로맨티스트요, 아티스트라 할 것입니다. 브라보! 저도 환호와 박수를 보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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