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로드킬, 순해빠진 물뱀은 얼마나 아팠을까

에세이 제1137호(2020.10.27)

이득수 승인 2020.10.26 17:08 | 최종 수정 2020.10.26 17:18 의견 0

수만 종(種)의 동식물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지구촌에서 뱀 만큼 사람에게 미움을 많이 받은 동물도 드물 것입니다. 그건 우선 화살처럼 섬뜩하게 생긴 뱀 대가리와 날름거리는 혓바닥에 독이 가득한 이빨까지 흉칙하고 섬뜩한 공포심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뱀에게 공포와 적개심을 가지는데 남자보다 여자의 경우가 훨씬 더 합니다.

거기에다 구약성경창세기에서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하여 마침내 아무 부끄러움도 부족함도 모르고 살던 착한 우리 조상 아담과 이브가 지상낙원 <에덴>에서 쫓겨나 천지간을 방황하게 만든 주범이고 그리스신화에서든 쳐다보기만 해도 죽거나 눈이 머는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괴물 메두사로, 불교에서도 불, 칼, 아귀와 함께 지옥을 지키는 존재로 뱀이 묘사되어 마치 악의 상징으로 생긴 짐승 같습니다. 그래서 독사의 대가리는 어떤 때는 사내를 망친 악녀의 상징으로 또 어떤 때는 무작위로 여자를 유혹해 불행에 빠뜨리는 바람둥이 사내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막지방의 해충 전갈과 함께 사갈(蛇蝎)시 되기도 합니다. 

거기다 무독인 물뱀과 너불대(花蛇), 능구렁이처럼 지상의 뱀 중에는 독이 있는 뱀보다  독이 없는 뱀이 훨씬 많은데도 사람들은 뱀이라면 일단 독사나, 살모사, 사람도 잡아먹는 밀림의 보아뱀이나 아마존의 아나콘다처럼 일단 맹수로 취급합니다. 우리나라 만간에서는 모든 뱀의 왕자로서 늦가을이 되면 주변의 모든 뱀들을 소집시켜 한 구덩이 속에서 축구공처럼 몸을 돌돌 감아 겨울을 나는 생태계상의 뱀의 대장 능구렁이가 농가는 물론 고관대작의 기와집이나 궁궐에도 한 마리씩 그 터를 지키는 지킴이로 살다 그 집이 망할 징조가 보이면 집을 나간다는 민간전설을 믿기도 합니다. 그래서 6.25나 시절이 어려울 때는 자기 마당을 가로 질러 집을 나가는 눙구렁이 앞에 상을 차리고 정화수를 얹고 노파가 손을 빌며 지킴이가 나가지 말라고 비는 영화도 다 있었고 어떤 노파는은 갑자기 집에 나타난 빛깔이 화려한 꽃뱀 한마리가 군에서 전사한 자신의 아들이 환생해 돌아온 것이라고 졸졸 따라다니며 손을 빌며 먹이를 주는 모습도 나왔습니다.

고요한 여름 밤에 은하수의 별을 헤거나 강 건너 등불을 새며 개구리울움소리를 듣다 문득 “까악!” 제 짝이 될 암캐구리를 찾느라고 아무 조심도 없이 울어대다 그만 물뱀의 야식이 되는 물뱀의 단말마의 비명도 듣기가 괴롭지만 미국의 모하비사막 등 모래땅에 사는 방울뱀의 꼬리에서 나는 “츠츠츠” 나는 방울소리까지 뱀은 대체로 밉고 사나운 짐승으로 사내들의 눈에 띄기만 하면 돌멩이나 몽둥이 세례를 당하는 걸 보면 인간과는 태생적인 적수 또는 비호감이란 생각도 듭니다.
  

두 번째 사진은 덕고개의 좁은 길, 그것도 어쩌다 포터나 봉고차나 하루 한두 번 다니는 한적한 길인데 하필이면 총각쯤으로 보이는 물뱀이 나와 볕을 쏘이고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인지 자동차하나가 지나가고, 아무튼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일입니다. 
덕고개의 좁은 길, 그것도 어쩌다 포터나 봉고차나 하루 한 두 번 다니는 한적한 길인데 하필이면 총각쯤으로 보이는 물뱀이 나와 볕을 쏘이고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인지 자동차 하나가 지나가고, 아무튼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일입니다. 

필자가 어릴 때 논을 매다 여러 번 뱀에게 물려 손가락에 구멍이 나고 피가 한두 방을 흐른 적이 있습니다만 독이 없어 아무 일 없이 넘어간 일도 더러 있습니다. 또 뱀 중에 가장 숫자가 많으면서도 아름다운 너불대(화사, 花蛇)는 모든 뱀탕의 한 70% 이상을 차지하는 기초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골의 나무꾼이나 목동들이 봄이 되어 살이 통통하게 찌거나 알을 밴 너불대를 잡으면 껍질을 벗기고 불에 구워 특식으로 즐기는데 메추리알보다 조금 큰 뱀 알(한 마리에 보통 20, 30개가 나옴)은 달걀과 감자의 맛을 합친 것 같은 아주 특별한 별미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의 만화에 뱀은 사람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동물로 묘사되지만 사실 뱀이야말로 사람을 제일 무서워하는 동물로 사람의 발자국소리나 쇳소리 담배냄새, 노랫소리를 극히 싫어해 사람의 기척만 있으면 저 먼저 풀밭이나 돌 틈, 흙덩이 속으로 숨습니다. 그런데 그 화려하고 사나와 보이는 외모와 달리 냉혈동물인 뱀은 경첩이 되어야 겨울잠에서 깨고 추석을 전후해 재빨리 겨울잠에 들어가는데 그건 체질적으로 추위를 너무 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봄에서 가을까지도 밤새 웅크리고 추위에 떨다 날이 밝아 해가 뜨면 제일 먼저 볕이 잘 드는 자리에서 몸을 길게 펴고 햇빛을 받아 몸을 달굽니다.   

사진1은 어느 여름날 가스공사를 한다고 큰길을 파고 다시 아스팔트로 포장을 한 자리를 밤에 지나가던 조그만 물뱀이 고만 그 찐득거리는 콜타르에 사로잡혀 미이라가 된 모습입니다. 그 조그만 아기 물뱀이 그 어둡고 긴 여름밤 내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거기에다 짝짓기도 한 번 못 해보고...
어느 여름날 가스공사를 한다고 큰길을 파고 다시 아스팔트로 포장을 한 자리를 밤에 지나가던 조그만 물뱀이 고만 그 찐득거리는 콜타르에 사로잡혀 미이라가 된 모습입니다. 그 조그만 아기 물뱀이 그 어둡고 긴 여름밤 내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거기에다 짝짓기도 한 번 못 해보고...

에너지를 확보해야 사냥을 나설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럴 때는 개구리나 생쥐도 전현 뱀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침나절에 좀 외진 곳에 등산을 하다보면 무방비로 몸을 녹이다 인기척에 놀라 몸을 공처럼 돌돌 말고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를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한길이 넘는 바위에 대롱대롱 매달리며 올라가자 방금 내가 손을 짚었던 옆 자리에 똬리를 틀고 있던 독사가 슬그머니 도망가는 모습도 가끔 보는데 사람이 먼저 해치지 않으면 절대로 먼저 공격하지 않는 것이 뱀의 특징인데도 우리는 그 뱀을 발견하기만 하면 몽둥이나 돌멩이부터 찾으니 한편으로는 참 불쌍한 존재입니다.

굳이 사람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동식물을 각자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생명체인데 말입니다. 철없고 말없는 짐승들의 긴 공포와 설운 죽음에 자동차를 자주 탑승하는 한 고등동물로써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시인·소설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