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여보산악회③ 살림밑천 봉고차가 퍼지고나니...

에세이 제1131호(2020.10.21)

이득수 승인 2020.10.20 14:38 | 최종 수정 2020.10.21 16:26 의견 0
 2.2016. 6월 능동산 케이블카를 타고 기념사진 길에서(좌에서 우로 팔자, 장애순, 문승태, 서원조, 이상준씨
2016년 6월 능동산 산행 하산 중. 왼쪽부터 보일러 김 사장, 필자, 변 여사, 장 여사, 서 회장, 이 사장.

그냥 사람 좋고 사려 깊은 서 회장님의 식대와 찬조금만 축내면서 재벌로 소문난 두 장손은 여전히 꿈쩍도 않고 주는 음식, 그것도 이동 중에는 반드시 미식가 박 사장이 가자는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천천히 군용반합으로 커피를 끓여 마시고 기분이 좋을 때는 색소폰을 꺼내 불며 한껏 장손의 풍요와 여유를 즐기고 눈치 빠른 강 사장은 무조건 따라 넘어가면서 단 30분만 여유시간이 생기면 자기가 등산한 산과 절에 대해서 고장 난 라디오를 틀었습니다. 

거기다 한없이 소심한 두 아우, 해고정리당한 은행원이자 노모와 처자식을 거느린 문 총무는 어쨌건 큰 분란이 없이 모임이 조용하게 넘어가 귀한 사모님들의 즐거운 세월이 계속되도록 이쪽, 저쪽 눈치 보기에 바빴습니다. 거기에 비해 막내로서 현직공무원인자 자유분방한 시인인 필자는 나름 민법의 일반원리나 사회의 관습을 지키며 사는 민주시민의 양심 같은 것을 신봉하고 살다 너무나 인색하거나 무책임한 세 장손의 말도 아닌 행동을 지적하다 싸움닭처럼 늘 코피가 터졌지만 누구보다 필자의 말이 솔깃하고 속이 후련한 두 용한 남자 회장님과 총무님은 제 의견에 차마 동의도 못하고 세 장손의 눈치만 보았습니다. 결국 제 아내만 회원 전체의 분위기 너무나 불 칼 같은 막내가 미운 살이 박히지 않도록 계곡에서 음식을 하든지 하면 늘 최선을 다해 거의 대장금(식모)급이었습니다. 총무부인 변 여사 외에 네 여성은 아예 당연한 일처럼 그걸 바라보며 먹기만 하는 귀부인이 되고.

그러나 그 중에서 제일 어렵고 힘든 사이가 감포항 고추친구인 서 회장과 봉고차운전자 이 사장이었습니다. 비싼 쇠고기구이를 사거나 노래방에 데리고 가는 날은 잘 순종하다 조금만 운전길이 힘들다든지 기분이 나쁘면 바로 <원조, 니는> 하고 오래된 우정을 빙자한 방자한 언행을 서슴지 않아 내성적인 회장의 부아를 돋우었는데 기어이 그를 중심으로 사단이 벌어졌습니다. 

너무 오래 된 9인승 봉고차가 이제 힘을 못 써 오르막에서 퍼지거나 위험한 모습이 늘어나자 회장사모 장여사를 비롯한 황여사, 최여사, 변여사가 베스트드라이버이자 운전에 취미가 많은 박사장의 개인 승용차(운행비는 나중 정산함)에 타고 털털이 봉고차에는 여섯 남자와 이사장의 부인 송여사와 막내 제 아내가 타게 되어 한번 여행을 나가면 몇 번이나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사진1.우리 집의 suv자동차(이사장의 9인승 봉고차는 이 보다 훨씬 낡아 금방폐차가 되어 말썽을 일으켰다.)
 우리 집의 suv자동차. 이 사장의 9인승 봉고차는 이보다 훨씬 낡아 자주 말썽을 일으킨 끝에 금방 폐차되었다.

이제 더는 감당이 안 되어 폐차를 하는 날 이 사장은 아주 편안하게 친구 서 회장에게

“내 봉고차가 여보산악회 여행 다니다가 폐차가 되었으니 새 차는 당연히 여보산악회나 서 회장이 빼주어야 되는 것이 아니야?”
하는 순간 서 회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즉답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또 절대 못한다고 잘라서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두 분의 우정은 역사가 깊었고 서 회장 자신이 남에게 희생은 해도 남을 섭섭하게 하고는 못견디는 성격, 그러니까 너무 양반이었습니다.

그렇게 불안한 일주일이 넘어가자 어디선가 새 봉고차에 대한 구입비 1,200만 원은 회장인 서 회장이 절반인 600, 회의 경비에서 300을 내고 나머지 300은 네 회원이 75만 원씩을 내면 된다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그 이야기의 출처가 어디냐고 물으니 바로 최연장자인 고문 박 사장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까지 10년 넘게 차를 굴리다 마지막으로 한 5년 철철이 1박2일을 했다고 회에 새 차를 사달라는 것, 회장부담 600만 원외에 회의경비 300만 원(그것도 매번 호화판 여행을 하면서 두 재벌급이 단 한 번도 찬조를 않아 90% 회장이 내고 졸때기 총무와 막내인 필자가 돈 10만 원 정도씩 한 두 번 보태어 거의 회장 사재나 다름없는 900만 원을 서회장이 부담하라고 하니 친목회장이 무슨 봉도 아니라고 부인 장여사의 볼이 부었습니다. 거기다 더 재미있는 건 회원 몫 300만 원의 분담은 어떻게 되냐고 하니 회장과 운전자, 이사장과 자신을 빼고 나머지 강사장과 문총무와 막내 제가 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자신은 왜 쏙 빠지냐고 물으니 회의 최연장자이자 고문이 회의 위기를 맞아 적당한 해결책을 내어놓았으니 그 공로로 당연히 자신은 공짜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불의를 못 참는 제가 고문은 의례히 모임을 위해 찬조를 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데 연장자라고 고문에 위촉된 박고문은 동대신동 제일부자 박부자의 장손으로 평생 손에 흙 한번 안 묻히는 귀족으로 살며 지금까지 단 돈 10원, 밥 한 끼를 산 일이 있냐고 지적하자 무섭게 나를 응시하던 그는 막내가 저렇게 막말을 하는 이 모임에 연장자 자기는 더 이상 몸을 담을 수 없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용감하게 이야기를 할 때 고소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속이 다 뚫린다는 사람들이 정작 박 고문이 화를 내자 절에 간 색시처럼 말 한마디가 없고 얼굴이 벌개진 제 아내만 여러 번 제 옆구리를 질렀고 이럴 때 칼 같은 결단을 내야 할 서회장은 
“아니 형님, 잠깐만!”

이득수

저를 외면하고 황급히 박 사장을 잡고 저의 발언에 가장 신이 났던 문 총무도 아내 변여사의 눈길에 쏘여 단 한마디 나를 두둔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지독한 자부심의 장손들과 참으로 용해빠진 차남과 외동아들, 그리고 단지 자기 돈이 들 들며 잘 먹고 잘 노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여성회원들이 만들어낸 이 말도 아닌 현실에 저만 괜히 동키호테가 된 셈입니다.

그 후 혼자서 전전긍긍 애를 태우던 회장단(회장과 문 총무와 무보직의 추종자 필자)이 고심 끝에 1남 4여 이 사장의 자녀(다달이 생활비를 바치고 최상급 등산복과 장비만 고집하는 부모에 치인) 중 가장 성격이 밝은 데다 남편이 중장비기술자에다 결혼식에 제가 주례까지 서준 셋째 딸을 만나 여차여차 돌아가는 형편을 이야기하기로 하고 서 회장이 만났는데 영 이외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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