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여보산악회⑤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다 또 만나는

에세이 제1133호(2020.10.23)

이득수 승인 2020.10.22 17:09 | 최종 수정 2020.10.22 22:32 의견 0

그렇게 지지부진 시간만 끌던 사건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뒤 드디어 제명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박 고문의 아내 황 여사와 서 회장의 아내 장 여사가 너무 단짝이라 매일 같이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찜질방에도 가고 쇼핑도 하는 처지라 형식만 제명이지 실질적으로는 가족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차츰 장 여사가 천하양반 우리 서 회장님에게 얼마나 통사정을 했는지 제명 3개월이 된 회의에서 조심스럽게
“그새 뭐 아니고 서로 친하다 보니 생긴 일인데...”
서 회장님이 조심스럽게 재가입을 꺼내고 문 총무는 조용히 듣기만 하는데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불구대천이 아닌 동년배 친구들인데 다시 만나는 거야 너무나 당연하지요. 그런데 부부싸움으로 부부가 이혼을 하면 6개월 내로는 법으로 재혼도 못하게 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부인이 전남편의 아이를 회임했을 경우도 있지만 사람의 일이 무슨 장난도 아니고 그렇게 붙었다 뗐다 하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 <사랑과 전쟁>에 나오는 이혼조정관 신구가 
“그럼 4주후에 뵙겠습니다.” 
하고 미루거나 하다 못 해 노조의 투쟁에도 노사각자가 남의 형편이나 입장도 생각해볼 냉각기간 6개월을 두고 노사분쟁을 재판하는데 대부분 나이 60대의 성인들이 이 무슨 장난이냐, 적어도 6개월, 회소한 3개월 뒤에 제명을 해제하자고 건의하자 남녀모두가 입맛만 다시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너무 좋거나 남의 일에 신경조차 쓰지 않겠다는 어떻게 보면 순하고 어떻게 보면 소극적 도시인들인 것이었지요.

 사진1. 필자 퇴임식의 멋쟁이 신사 박사장내외(뒷줄왼쪽), 저 신선처럼 단정한 모습으로 살다 어느 날 문득 세상을 떠났다.
 필자 퇴임식의 멋쟁이 신사 박사장 내외(뒷줄 왼쪽). 신선처럼 단정한 모습으로 살다 어느 날 문득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 달 회의에 사무실의 일로 제가 한 시간 늦게 회의장에 도착하니 이미 박 고문이 참석해 같이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박 고문과 저를 전 회원들이 모두 듯이 바라보는데
"잘 오셨습니다. 박 고문님, 제 개인적으로 재가입을 환영합니다만 그렇다고 마음이 흔쾌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원칙적으로 말했지만 저도 마음이 약한 지라 술도 권하는 척 말도 붙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도 회의를 잘 나왔는데 그만 그 다음 달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참으로 기상천외한 것입니다.
“아니, 내가 나이 먹은 사람으로 많이 참고 다시 나갔는데 사람들이 도무지 반기는 눈치가 아니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혹시 새로 가입한 박 고문 마음 상할까 봐 사람 좋은 문 총무와 막내 이 과장까지 회원들 모두가 어쨌거나 같이 어울리자고 술을 권하고 말을 붙이고 일부러 그 군용항고뚜껑으로 끓이는 커피를 요청하고...”
깜짝 놀라는 서 회장의 말에
“그래서 도로 나온 거야. 전보다 더 존경하고 더 신경 쓰는 눈치인데 그게 도로 맘이 안 편한 거야.” 하는 좀체 이해가 안 되는 답변이 나왔지만 아마 처음부터 평생을 곱게만 살던 분이라 남이 신경써주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었습니다.

 박 사장의 애장품1호 색소폰

추신: 그 후로도 부인 황 여사는 단짝 회장부인 장 여사와 늘 가까이 지냈고 마음이 여린 서 회장님은 여러 번 위로차원으로 박 고문 내외와 식사를 하고 박 고문의 차로 2박3일 여행도 하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들의 그 어떤 명분보다도 중년부인들의 무료함 만큼 겁나는 게 없는 모양으로 하루하루 오늘은 누구랑 만나고 밥을 먹고 쇼핑을 하고 내일은 누구를 만나고... 사람 만나는 일에 늘 신경을 쓰는 것 같은데 그건 아마도 다들 여유 있고 곱게 자라났기 모양인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사 소소한 일로 성을 내거나 싸울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사에 갈등이 없어서야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 귀하신 박 고문도 작년에 문득 세상을 떠났습니다. 잘 살든 못 살든 세상 그것 참 허무한 것인 모양입니다.(추모의 글은 며칠 뒤에 나갑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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