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장손 병에 망한 모임 「부부산악회」①

에세이 제1129호(2020.10.19)

이득수 승인 2020.10.18 17:09 | 최종 수정 2020.10.18 17:28 의견 0

내 50대 중반에 60전후의 형님 벌 낯선 사람들과 문득 모임하나를 만들어 일생일대의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했지만 이 세상에 더는 없을 후원자와 친구 한 사람을 만난 계기가 되었는데 그 회의 이름이 하필이면 「여보산악회」이다. 짐작들 하시겠지만 그 이름을 지은 자가 바로 그 때만 해도 술 잘 먹고 말 잘 하며 노래 잘 불러 만인의 로맨티스트로 불리던 필자였다.

우선 이 회의 구성을 보면

1. 회장 서원조 69세 화물자동차종합관리업체 세창운수 경영.
2. 고문 박00 71세 대신동 박부잣집 큰아들로 재산관리로 일생을 보냄.
3. 강00 69세 부산역 산하의 작은 역에 근무
4. 회원 이00 70세 감포항 어부의 아들, 서회장의 죽마고우.
5. 회원 문승태 65세 6.25에 아버지가 전사한 전 은행원
6. 필자 64세, 애환투성이 시인이자 구청과장

으로 굳이 특징을 찾아보면
-부잣집 장손에 장남이 3명(이름이 명시 안 된 박, 강, 이씨) 
-자수성가형 고생주머니로 아직도 7, 8남매를 돌보아야 하는 억울한 차남 2명(서회장, 필자)
-60대 중반이 되어서도 남의 아버지가 아프거나 죽었다는 말만 들어도 눈물을 흘리는 <어버지결핍증>의 문승태 씨 입니다.

 (사진1 필자의 퇴임식에 참석한 「여보산악회」 회원. 앞줄 좌에서 시계방향으로 변순기여사, 박사장과 황여사부부, 최여사와 강씨부부, 장애순, 서원조부부, 이득수, 홍성순부부, 감포 이사장.
 필자의 퇴임식에 참석한 「여보산악회」 회원. 앞줄 좌에서 시계방향으로 변순기 여사, 박 사장-황여사부부, 최여사-강씨부부, 장애순-서원조부부, 이득수-홍성순부부, 감포 이사장.

그럼 이 불특정의 중년들이 어떻게 모여 회를 조직하고 회원이 되었을까요?

우선 위에서 서원조 회장의 친구 이모씨를 뺀 다섯 회원의 부인들이 같은 해 연동초등학교에 아이들 보내는 학부모로서 각각 운수회사사모님, 은행집, 철도정집으로 불리는 네 집의 부인의 치맛바람으로 매일 만나다 생긴 모임인데 제 아이 정석이가 그 학년에서 공부를 과하게 잘 하는 바람에 죄 없는 동사무소집의 제 아내가 억지로 초청되고 주동 서회장의 친구 이사장, 회장부인인 여왕벌 장여사의 친구 황여사가 들어오면서 대신동부잣집 박사장까지 가세한 것입니다.

그래서 남녀동반의 첫 모임인 사량도 옥녀봉 1박 2일  등산행사를 보면 세상에 코미디가 따로 없었습니다. 평소에 친숙한 부인네들 끼리 저녁을 먹고 오손도손 노는 사이 양치를 하고 온 사내 6명은 도무지 할 말이 없는데 이사장이 문득 저를 보고

“당신은 복이라고는 없이 마누라 복으로 밥을 먹는 상이야. 우리 철학관으로 와서 사주를 보고 공을 좀 들여야 오래 살지 그렇잖으면 출세는커녕 얼마 더 살지를 못해.” 안 그래도 구청장에서 역적으로 몰려 죽을 고생을 하는 제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무속이 성한 어촌에 자라 그런지 중년에 신이 내려 당시 돈방석이던 대형 화물차 탱크로리를 그만두고 조그만 아파트에 부처를 모시고 한 20명 미만의 신도도 아닌 피상담자(그것도 대부분 그들의 친척이나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사는데 1남 4녀의 자녀와 형제가 너무 많아 그 중심인 종손이자 장남이자 엄한 아버지 노릇을 하기 위해 9인승 봉고차를 운영하여 그날처럼 때로는 손님이자 이웃을 싣고 기름 값과 도로 비를 넉넉히 받아 살림에 보탠다고 들었습니다.

필가자 읽은 점복서 주역, 토정비결, 당사주요람(천하 명도(明道)라는 이상준씨는 한 번도 그 책을 본적이 없다고 했다.
필자가 읽은 점복서 주역, 토정비결, 당사주요람(천하 명도(明道)라는 이상준 씨는 한 번도 이들 책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나이 한 평생 죽고 살고 자기 의지대로지 운명은 무슨 운명!”

제가 코웃음을 치자 

“당신 얼굴에 죽음의 기운이 가득해. 겉은 멀쩡해 술을 잘 먹지만 얼마 안 남았어. 미리 굿을 안 하면 얼마 못 살아.”

단정적으로 말하자 이사장을 초청한 서회장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그를 달래면서

“오늘 다를 초면인데 친구 니가 왜 그러나?”

말리는데
“무식한 중생들이 무얼 알아야지 눈앞에 닥친 제 죽는 줄 모르고.”

기고가 만장한데

“보세요. 이 사장님, 아무리 우리의 관상이 죽을상이라고 해도 초면에 이것 너무 심한 것 아니요?”

은행원 출신 문씨가 나서는 걸 기화로 필자도
“내가 동양의 점복서의 기본인 주역과 사서삼경 또 토정비결과 사주관상 보는 법을 두루 읽고 주역만 세 번을 달아 읽어도 어렴풋이 무얼 좀 느끼기는 해도 우선 제 팔자부터 알기가 쉽지 않은 게 사주팔잔데 당신은 입산수도를 하거나 역술이나 점법, 풍수지리나 푸닥거리조차 배우지 못한 것 같은데 무슨 공갈이 그리 세요? 그럼 나하고 주역의 64괘에 대한 이야기나 하여볼까요?”

하자 미처 대답도 못 하고 얼굴이 벌개져 숨을 헐떡이는 걸 친구 서회장이 달래자 한발 물러선 이 사장이
“이 과장님은 원래 시골천재로 국문학을 하다 철학서를 읽은 모양이지만 세상에 골목골목 그 흔한 무당과 점집, 절집이  무슨 그런 자격이 있습니까? 그저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니 올해 동지나 내년 초파일이 우리 집에 등이나 하나씩 달면 우리 내외가 정성껏 운수대통을 빌겠습니다.”

하고 마무리를 했는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오합지졸로 모인 다섯 집이 그 후로부터 동지와 초파일, 백중 등에 반드시 봉투를 보냈습니다. 인맥의 나라의 한국에서 어쨌거나 같은 회원이 되었으니까요.(내일 계속)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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