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여보산악회④ 뭐라, 자동차 키를 빌려달라고?

에세이 제1132호(2020.10.22)

이득수 승인 2020.10.21 16:26 | 최종 수정 2020.10.21 16:33 의견 0

그래서 다방에 조용히 만난 서회장이 자식 같은 셋째 딸에게 이야기하기로 다들 힘든 회원들에게 짐을 지울 필요 없이 아버지의 봉고차를 살 1,200만 원 중 600만 원을 자신이 내고 나머지 600을 자녀들이 추렴해 사드릴 의향이 없냐고 물으니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 풀쩍 뛰었답니다. 

1남 4녀 막내아들 동생을 키우면서 특정한 직업도 없이 집에 부처만 모시고 파란 플라스틱 댓가지를 아파트에 세워놓아 네 딸들은 자라면서 무속인의 딸이라는 그 새파란 댓가지에 주눅이 들었는데 네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자 결혼을 한 사람은 한 데로 안한 사람은 안 한데로 다달이 부모의 생활비를 내어놓으라 하여 얄궂은 회사에 다니면서라도 그 집 딸들은 엄청난 생활비를 내어놓아야 했고 그 어머니 송여사도 부잣집 맏며느리에 인이 박혀 일상의 끼니인 쌀과 생선, 쇠고기를 최고급 자연산이나 a+가 아니면 상대도 않고 등산복과 등산화도 모두가 대체로 외제 아니면 한국의 베스트 메이커 <코오롱>외에는 상종을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 까지 한 달 한 달 살아오는 데만 고정수입이 없이 야간업소 보도방을 하는 둘째 사위는 밤잠도 못 자면서 죽을 지경으로 간신히 분담금을 내어 장인어른을 엄청 기피하는 판에 만약 새 자동차를 사면 누구도 감당 못 할 일이 생긴다는 것이었지요. 우선 대한민국최고의 옵션을 넣고 가장 좋은 오디오와 비디오에 외장까지 자식이야 죽든 살든 무조건 분담금을 매기고 안내면 죽이려고 덤빌 게 빤한 부모님의 대책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이사장의 봉고차가 무산되고 장거리 여행이 사라져 늘 심심한 귀부인들이 한심해 죽을 판인데 마침 이웃에 사는 사람 좋은 김사장(심야전력과 보일러사업을 하고 부부가 다 가톨릭에 충실한)내외가 새로 가입을 했는데 보너스 봉고차가 하나 생기기는 했지만 현장을 뛸 때 보일러는 물론 온갖 부속품을 다 넣어두고 정비와 세차가 아무래도 이사장 자동차에 상대도 안 되지만 그런대로 그 심야전기 김사장의 봉고차와 베스트드라이버 박사장의 승용차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한번은 서기관 승진직전 총무과장으로 사무실의 일이 바빠 제가 빠지고 나머지 13명의 회원이 해마다 가는 지리산 대원사계곡의 민박집을 찾아 떠났습니다. 

박 사장에 의해 남의 마누라로 의인화된 자동차 키. 결국 여보산악회 파탄의 도화선이 되었다.
박 사장에 의해 남의 마누라로 의인화된 자동차 키. 결국 여보산악회 파탄의 도화선이 되었다.

제가 없는 대신 새로 들어온 막내 김사장이 운전에 궂은일은 물론 형수들을 은근히 놀리며 같이 몰속에서 놀아주는 일까지 잘 수행하며 방금 점심준비를 할 때였습니다. 벌써 1박2일 운전대를 잡지 못해 애간장이 타는 이 사장이 한 살 많은 박고문에게
“형님, 제게 자동차 키 좀 빌려주소.”
하는 데
“뭐라?”
단번에 얼굴이 사색이 된 박고문이
“아니 자동차 키를 빌려달라는 말은 남의 마누라를 내어놓으라는 말과 꼭 같은데...”
“아니, 형님 제가 지금 운전을 오래 못 해서 몸이 근질거려서...”
“뭐라? 몸이 근질거리니 남의 마누라를 빌려달라고!” 얼굴이 벌개진 박사장이 순간
“근아!”
장남의 이름을 부르며 아내 황여사를 찾아
“자동차 안타고 니 지금 뭐 하노? 그라면 니가 이사장한테 자동차키처럼 저 숲속으로 딸려갈 거란 말이가?” 화를 왕성같이 내며 아내를 차에 태우고 부웅, 부산을 향해 떠나버린 것입니다.

여보산악회 전성기에는 14명의 회원이 1막2일로 거제도 이수도에 다녀오기도 했다. 사진은 이수도행 매표소와 포구 
여보산악회 전성기에는 14명의 회원이 1박2일로 거제도 이수도에 다녀오기도 했다. 사진은 이수도행 매표소 

이제 남은 사람들은 더는 놀 기분이 아니라 점심 닭백숙을 먹느니 마느니 하고 돌아갈 짐을 싸는데 공사용 자재까지 적잖은 화물이 쌓인 김사장의 보일러봉고차에 열한명의 사람과 그들의 짐을 모두 실으니 발을 펼 자리도 숨을 쉴 공간도 없어 누가 가스라도 흘리면 전체가 질식한 정도였답니다.
그날 오후 제 퇴근시간이 지나 연산로터리 지하철에 내리는데
“여보!”
아내의 전화가 오고 이내 서회장아파트에 주차시킨 아반테차를 찾아 마중 오는 아내의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고 다리에 피가 안돌아 한참을 기다리기도 해야 했습니다. 이건 자화자찬은 아니지만 제가 어떤 모임에 참석하면 술잔도 돌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고스톱으로 시간도 때워 대체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판인데 마침 제가 딱 한 번 안 가는 사이에 이렇게 큰 문제가 발발한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온 뒤 회의 분위기가 급랭되며 제일 연장자에 부자인 고문이 단돈 10원 찬조도 없는 데다 말도 아닌 자존심으로 행사를 박살내고 남은 회원을 초주검을 만든데 대해 여론이 분분해 이제 새 회원도 들어온 만큼 박고문을 제명해야 된다는 여론이 분분한데 절친 회장부인 장여사를 통해 박고문의 아내 황여사가 모든 소식을 듣고 남편에게 전해 저쪽에서 도로 
“남의 자동차 키를 빌려달라고 한 이사장을 제명시키지 않은 한 자신은 이제 모임에 더 나가지 않는다.”
적반하장의 통보가 오더니 기어이 다음모임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자존심이 상한 것이지요. 그런데 더욱 기가 찬 것은 그래놓고도 온천천에 자전거를 타는 비공식모임으로 강사장과 박고문과 이사장이 만나는 모양으로 회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박고문에게 전해지고 그렇게 설움을 당한 이사장은 여전히 박고문에게 형님자를 붙이며 따라 다니는 것이었습니다.(계속)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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