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장손병에 걸린 여보산악회②

에세이 제1130호(2020.10.20)

이득수 승인 2020.10.19 14:06 | 최종 수정 2020.10.19 14:41 의견 0

그리고 서 회장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고스톱을 치자고 하니 이 사장이 자기 봉고차에서 화투판과 담요를 가져와 저와  셋이 판을 벌이니 이 사장이 갑자기 순한 양이 되었는데 문제는 제일 큰 형님 박 고문이 남은 이제 좀 같이 놀 분위기를 잡는 판에 방 한가운데 요를 깔고 드러누웠습니다. 몸이 약해 내일 등산을 위해서 미리 자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또 한 명의 장손인 강씨가 
“전에 내가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을 때 말이야.”
문득 등산 이야기를 꺼내 무심코
“아, 예” 
하고 맞장구를 치던 문승태씨가 두 시간 반이나 전국명산을 다 유람해야 했습니다. 자기가 다닌 모든 산의 정상 봉우리의 높이와 위험 정도에 당신 같은 아마추어는 절대로 도전하면 안 된다는 경고를 10분에 한 번씩 들어야 했습니다. 명색 새로 생긴 모임의 총무인 그는 자기의 점을 보고 굿을 해야 살 수 있다고 초면에게 겁을 주다 천연스럽게 고스톱을 치는 장손 이 사장, 누가 무어든 피로하니까 저 먼저 누운 박 사장, 고장 난 라디오처럼 두 시간 이상 등산방송을 하는 세 장손들, 누구보다 자신만만하고 누구도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면 절대로 용서를 않고 모임이나 집안의 모든 이익이나 대우는 다 차지해도 손해나 싫은 소리는 단 한마디도 용납 못하는 제 멋대로 사나이 장손이 6명 중의 절반 3명이나 되는 걸 모르고 무심코 모임을 결성했으니 첫날부터 회장은 친구 이사장과 제가 붙을까 전전긍긍하며 고스톱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폭탄 같은 막내 필자의 눈치를 슬슬 보고 총무는 강씨 종손의 등산 무용담을 끝없이 들어야 했습니다. 

사진2. 이사장이 봉고차에서 꺼내온 군용담요와 화투)
이 사장이 봉고차에서 꺼내온 군용담요와 화투

이튿날 아침을 먹고 옥녀봉 등산을 하는데 아직 등산 경험이 거의 없는 제와 아내는 등산화나 배낭, 스틱도 없이 옥녀봉을 오르느라 죽을 고생을 했는데 농촌 태생에 나무꾼 출신인 저는 그냥 숨이 찬 정도지만 평생 산에 들어가 본 일이 없는 아내는 내리막이 되면 어디 쯤 앞발을 놓아야 되는지 기본 상식이 없어 제가 간이 움찔움찔 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1박 2일을 마치자 저와 문총무는 그만 진절머리가 나 여자들끼리만 하고 남자들은 빠지자고 하니 늘 유복하지만 혼자 심심하게 지내는 게 제일 힘든 회장부인 장여사와 은행집 변여사에 철도청의 최여사도 어림에 반 푼 어치도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먹고 살기에 아무 걱정이 없어 그저 남아도는 게 돈과 시간인데 그렇게 또 회를 하나 모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방금 폭발직전의 상태에 이르러 다시 화해를 하고 산에 오르고 골짝골짝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가끔 노래방에도 가는 일이 그녀들로서는 안전에 천국이 닥친 것, 아니 아주 재미있는 막판드라마 한 편이 시작되는 판이라 그저 즐겁고 신이 나는 것입니다. 

 (사진1.2016 6월 주말 등산을 하고 하산하던 사진(좌로부터 철도청 강씨, 필자, 죽은 보일러김씨 부인 전명자, 장애순, 서원조회장 내외, 감포 이사장
 (왼쪽부터 필자, 장여사,문총무, 서회장, 감포 이사장.

그저 사람 좋은 서 회장 한 사람을 뺀 다섯 사내는 죽을 지경이었지만 아내들의 통사정에 못 이겨 억지로 모임에 나가 금방 일촉즉발의 위기로 부딪히다 간신히 분위기를 잡는데 아내들은 그 위기감마저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7, 8번 산행을 하며 6개월이 되도록 거의 모든 제대로 된 별미는 서회장이 개인으로 사고 이동 중간에 간단히 먹는 점심 정도는 월 5만 원의 회비에서 지출하며 어느 새 몇 백만 원이나 회비가 모여 자꾸만 1박2일 행사가 잦았습니다. 그런데 막내인 제가 문 총무가 가장 못 견디는 것은 철도청집 최 여사가 돈이 많고 회사가 탄탄한 서 회장을 단지 부자라는 이유로 얼마나 따르고 존경하는지 내가 바르던 선크림을 빼앗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서회장의 얼굴에 발라주고 선크림하나 제대로 새것을 안 가지고 다닌다며 오히려 나를 보고 한참이나 나무라기까지 했습니다. 단순히 돈이 적다고 말입니다. 

치맛바람부대에서 출발해 그런지 그 모임의 여성들의 가치관은 오로지, 돈, 돈 많은 사람을 존경하고 부추겨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운수회사를 하는 서 회장의 회사는 자본도 넉넉하고 사업도 번창하고 월수입도 상당하고 부동산도 많은 신식부자지만 대신동 박부잣집 장남 박씨는 물려받은 재산이 수백억이 될 지도 모르고 강씨 역시 두구동 토박이 대농의 장손으로 도로변과 요지에 수천 평의 대지를 가져 월세만 몇 천만 원이 된다고 하는데 부부가 평생 남을 위해 돈 10원을 쓰는 일 없이 은근히 공짜만 즐겼습니다.

이득수

직장생활을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은 은행출신 총무와 동사무소의 필자가 꾀를 낸 것이 그 알부자 두 종손의 협찬을 끌어내어 운영비 90%, 식대 90%를 다 부담하는 서 회장의 부담을 들어주자고 아무리 힌트를 주어도 두 장손 재벌이 눈도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1박 2일을 마치고 온천장에서 돼지수육과 국밥으로 저녁을 먹는 날 제가 문총무에게 눈을 끔뻑하며 계산대로 나가 10여만 원의 식대를 내었습니다. 그러자 문총무가 바로 그 사실을 공개하고 단체로 박수를 유도하며 앞으로는 서회장만 매일 내는 식대를 오늘 공무원 이모가 내듯이 실업자 자신도 한 번씩 낼 테니 회의 두 소문난 재벌님의 협조를 바란다는 말로 여성회원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어이, 이과장 내 좀 봐!” 강씨가 씩씩거리며 내게 다가오더니
“당신 돈이 얼마나 많으면 저녁 값을 내? 당신 같은 가난뱅이가 그렇게 밥값을 내면 내나 박고문님은 수백만 원을 내야 될 판인데 돈도 없는 당신이 왜 함부로 설쳐서 다음에 내가 돈을 내게해? 뭐 때문에 남의 돈을 쓰게 만들어?” 하자 그만 분위기가 얼음판이 되었고 그걸 빙긋이 웃고 바라보던 박고문까지 두 종손의 재벌들은 회가 해산될 때까지 결코 단 한 번도 식대나 찬조를 않고 졸때기 필자가 돈쓰는 것까지 봉쇄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장손병의 자존심과 욕심이었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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