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연산동 고분군(古墳群)에는 누가 잠들었을까?⑦

에세이 제1127호(1010.10.17)

이득수 승인 2020.10.15 14:36 | 최종 수정 2020.10.16 14:43 의견 0

6. 서럽도록 아름다운 어느 봄날 
  
금정산으로 사냥을 떠났던 소년왕이 마을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성안에서 인적은커녕 개짓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괴이한 정적에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한 왕은 척후병을 먼저 성위로 달려가게 했는데 금방 놀란 비명과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왕이 황급히 성위에 올랐을 때 눈앞에는 도무지 믿지 못할 광경 -움막집이 거의 다 불타고 몇몇의 나이 든 사내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진- 이 펼쳐졌습니다. 아직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곳도 있었고 숨이 끊어지지 않아 헐떡거리며 앓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촬영을 간 날 고분군 인근 혜원정사라는 절에서 장식한 연등길. 소년왕이 아내를 묻은 날의 잘미산은 저보다 더 황홀한 꽃밭이었으리라.

자기 움막으로 달려간 왕은 아내를 찾았지만 흔적이 없었습니다. 틀림없이 이웃부족에게 잡혀갔을 것이라고 이를 부드득 가는 순간 숲속으로 도망갔던 아낙들과 아이, 몇 명의 노인네들이 넋 나간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노인이 말하기를 소년왕과 젊은 장수들이 사냥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을 지키던 사내들의 눈에 앞바다에 헤엄치는 돌고래 떼들이 보이자 모두들 고래를 잡겠다며 바다로 나가려 해 노인이 말렸지만 부득부득 떠난 지난밤에 얼굴에 흙과 오징어먹물을 칠해 도무지 누군지는 알 수 없는 이웃부족의 사내들이 쳐들어와 사정없이 마을에 불을 지르고 순록고기와 도토리와 칡가루를 빼앗고 여자들을 납치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왕비는 어떻게 되었느냐는 말에 맨 처음으로 붙잡혀가며 끝까지 저항하다 어쩌면 잘못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를 부드득 갈며 현장을 샅샅이 뒤지던 왕은 머지않아 가슴에 칼이 찔린 왕비의 주검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항했는지 손목이 모두 부러져 있었으며 그 손안에 소년왕이 선물한 반들반들한 조약돌이 쥐여져 있었습니다.

몇몇은 불타고 쓰러진 움막을 고치고 몇몇은 시체를 수습해 열 몇 구의 아낙과 노인네들의 주검은 언덕에 묻고 왕비는 왕족들의 커다란 무덤이 있는 뒷거울쪽의 능선에 묻기로 하고 도토리나무를 베어 칡으로 얽어 상여를 만들어 왕비의 시신을 운구하기로 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해도 찬란한 배산언덕길을 젊은 왕비의 상여가 걸을 수 있는 모든 부족들을 이끌고 천천히 내려올 때 그 용감하던 소년왕은 눈물이 앞을 가려 자주 비틀거리며 울부짖었습니다. 잠시 뒤 멍에처럼 생긴 멍에고개에서 잠시 멈추자 제당과 무당의 애끓는 사설과 아낙네들의 울부짖음이 끊어지지 않고 사내들은 모두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고 소년왕은 하늘을 향해 왕비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뭐라고 울부짖었는데 아마도 요즘 젊은이들의 말로 ‘지.못.미 지.못.미 지켜주지 못 해 미안해.’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진1 눈처럼 하얀 망초꽃과 무덤에 묻었을 찔레꽃(소년왕이 왕비에게 꺾어준 꽃)
 눈처럼 하얀 망초꽃(왼쪽)과 무덤에 묻었을 찔레꽃(소년왕이 왕비에게 꺾어준 꽃).

다시 우둘투둘한 바위언덕을 한참 내려온 상여는 마침내 선대왕들이 한 줄로 묻힌 무덤 사이에 멈추고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시신을 넣고 왕이 왕비의 손에서 나온 조약돌과 함께 멧돼지의 엄니와 소라껍데기와 장식이 거의 없는 소박한 장신구 몇 개도 묻었습니다. 

그리고 흙을 덮으려 할 때 고개를 번쩍 든 왕이 손을 들어 일행을 제지하고 산기슭에 핀 진달래꽃을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점박이나 삭불이로 불리던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가 서럽게도 붉은 꽃송이를 한 아름 따오자 직접 시신 위에 뿌린 왕이 다시 노랗게 핀 산수유 꽃을 가리키고 자신도 무덤가의 할미꽃과 씀바귀, 왕고들빼기의 꽃을 따 뿌리자 주위의 사람들이 물웅덩이에 핀 찔레꽃과 민들레, 솜방망이 꽃을 따오고 땅에 붙은 제비꽃과 가시가 사나운 자주 빛 엉겅퀴 꽃까지 돌로 쌓은 토광에 넣고서야 비로소 매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서러운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숲에는 작은 산새들이 포르르 날고 뻐꾸기가 구성지게 울고 왕관의 술처럼 꽃송이가 늘어진 오리나무는 영락(瓔珞)처럼 동그란 열매를 매달고 있었습니다. 돌아서 걷다 다시 뒤돌아보는 소년왕의 눈에 차츰 눈물이 걷히면서 전보다 더 깊숙한 슬픔의 빛이 어렸습니다. 여전히 뻐꾸기가 울어대는, 참으로 찬란한 봄날, 서럽디 서러운 봄날이 가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고분군에 관련된 영상에서 왕비나 귀족으로 추정되는 어느 여인의 무덤에서 몇 점의 장신구와 함께 여러 가지 꽃씨가 출토되었다는 보도가 있어 각색해본 것입니다.)  

에필로그
 
아주 가끔 황사가 오기도 하지만 해마다 배산에는 어김없이 붉은 진달래꽃, 노란 산수유꽃과 외래종인 하얀 아카시아가 피고 뻐꾸기가 울어대는 찬란한 봄이 와 그 옛날 잘미국의 슬픈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배산성에서 바라보이는 저 아래 시청이 있고 법원이 있는 요충지이자 환락가인 연산로터리의 고층건물들에는 매일 수많은 사람 -잘미국의 후예들- 이 바쁘게 오갑니다. 저들도 밤이 오면 가족을 찾고 봄이 오면 사랑을 꿈꾸면서 가끔은 헤어지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할 것입니다. 아아, 연산동 고분군 아래로 올해도 찬란하고 서러운 봄이 갑니다. 연산동의 봄이 가고 있습니다.(끝)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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