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연산동 고분군(古墳群)에는 누가 잠들었을까?④

에세이 제1121호(2020.10.13)

이득수 승인 2020.10.12 16:31 | 최종 수정 2020.10.12 16:49 의견 0

맨주먹인 고대인들로서 엄청난 위험과 노동이 소요되는 이 성을 쌓게 되면서 고대인들의 생활은 더욱 안정되고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지요. 거기다 이제 인구의 구성원도 이웃에서 약탈해온 여자나 세력이 미약해 복속(服屬)해온 사람과 노예가 된 전쟁포로를 비롯해 여러 갈래의 피가 섞여 성안의 집단은 하나의 씨족(氏族)을 넘어 몇 갈래의 구성원을 가진 부족(部族)으로 확장되며 그 많은 사람들이 공생하기 위한 질서와 통제력 즉 통치제도라는 권력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고대국가이며 그 우두머리가 바로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잘미국의 왕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2. 국가(國家), 민족(民族)의 원시적 자형(字形)풀이 

 국(國): 사람 또는 인구(口)를 창(戈)으로 지켜내는 성곽, 공동방어의 범위
 가(家): 사람과 돼지(豕)가 함께 사는 움막
 민(民): 노예로 부리기 위해 눈(艮)에서 눈동자를 뺀 적의 남자포로
 족(族): 깃발(方)을 든 사람을 따라 화살(矢)을 들고서 따라가는 사람들, 전열(戰列)


§따라서 위정자, 또는 국수주의자, 전쟁광들이 금과옥조로 들먹이는 국가민족의 개념도 앞으로는 

0.국가(國家)는 성채처럼 국수적인 완강한 단절보다 경제적, 문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선린과 우호의 단위여야 하며
0.민족(民族) 또한 배타적 질시나 경원이 아닌 서로 다름(多文化)을 인정하는 상호존중의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를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임 

3.잘미국의 왕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겨우 해발 200미터가 조금 넘는 산봉우리에 자리 잡은 조그만 왕국의 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얼핏 사극드라마에서 보는 으리으리한 궁전과 화려한 왕관의 위엄이 가득한 왕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기와나 벽돌이 없었으니 화려한 궁전도, 비단옷과 왕관이 있을 리 없었겠지요. 목화를 심지 않던 시절이라 솜옷마저도 없이 칡넝쿨이나 나무껍질로 얽은 조악한 옷이나 곰이나 늑대 같은 짐승가죽을 무두질도, 바느질도 제대로 하지 않고 통째로 걸치고 수염과 머리칼이 헝클어졌지만 온갖 위험을 헤쳐 온 침착하고 날카로운 눈빛의 중년사내이거나 어깨가 딱 벌어지고 달리기와 활쏘기엔 능하지만 아직도 눈빛이 해맑은 젊은이일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부족전체를 대표할 만한 몇 가지의 필요한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겠지요.

단군영정 [한국민족문화대백화사전]
단군영정 [한국민족문화대백화사전]

여러분, 우리가 옛 부족국가의 작은 왕, 예를 들어 단군왕검(檀君王儉)을 생각할 때 그는 어떤 능력과 재주로 사람들을 다스렸을까요? 상제(上帝)인 환인의 아들인 환웅(桓雄)이 석 달 열흘 동안 동굴 속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인간으로 변신한 웅녀와 결혼해 태어난, 하늘로부터 왕으로 점지된 신성한 존재라는 단군신화처럼 본디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초월적 존재였을까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상신을 숭배하는 고대인 중에서 동물숭배의 애니미즘의 영향, 즉 그냥 사납기만 한 살육자 호랑이가 아닌 우람하면서도 영리하고 어딘가 순해 보이는 곰을 토템으로 하는 온순한 부족의 조상미화를 통한 구성원의 긍지와  단합을 꾀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단군을 비롯한 원시국가의 통치자들은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요.

우선 한 부족의 대표자니까 부족을 이끌 통솔력이 있고 전쟁에 앞장설 용기와 전투력도 있고 흉년, 전염병, 풍수해에 대처하는 위기관리능력과 판단력, 부족의 질서를 어기거나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한 처벌, 즉 결단력도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족들을 한 데 묶을 결속력, 즉 하나로 동화(同化)시킬 동기부여와 카리스마가 필요했겠지요. 

우리는 보통 가장 건강하고 사냥을 잘 하고 침략자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장수로서의 능력과 위엄이 왕의 첫째조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날마다 맹수나 이웃부족의 침략에 시달리고 태풍과 홍수, 천둥과 벼락의 공포에 시달리며 기근이나 전염병으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넘기던 고대인들에겐 무엇보다도 이 세상을 움직이는 절대적인 힘, 즉 자신을 있게 하고 움직이며 길흉을 부여하는 절대자인 하늘이나 태양, 동식물의 토템이나 조상신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고 도와준다는 믿음이 중요했겠지요. 천둥과 벼락으로 가까운 사람이 죽어가고 태풍으로 금방 세상이 뒤집힐 것 같고 밤새 호랑이나 늑대가 울부짖는 상황에서 그들은 하늘이나 신이 자신을 보호하는 절대자와 자신을 연결하는 고리, 즉 굿을 벌이고 제사를 지내는 신관(神官) 또는 제사장(祭司長)이라고 할 무당이 필요했겠지요. 그래서 제단(祭壇)을 쌓거나 제물(祭物)을 진설하고 그 절대자를 찬양하는 축원(祝願)이나 주문(呪文)을 외우며 밤새 울부짖거나 노래를 불렀을 것이고 그렇게 여럿이 한목소리로 부르는 주문이나 노래를 보다 간절하고 외우기 쉽게 주문을 짓는 -단군의 천부경(天符經)같은- 가사를 쓰는 시인(詩人)과 가락을 붙여 선창을 할 작곡가와 가수로서의 능력 즉 그런 것들이 하나로 응집된 토템 즉 무당으로서의 능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였겠지요. 그러니까 단군은 유능한 장군이자 무당이며 시인과 음악가에 재판관이기도 하지요.

연산로토리에서 본 연산터널(그 위가 고분지대임)
연산로터리 쪽에서 본 연산터널. 터널 바로 위에 고분군이 있음

또 하나 가장 중요한 능력은 그렇게 제사를 지내고 제물, 즉 당시 사람으로서는 1년에 한 두 번 제사 때나 구경할 수 있는 귀한 쌀밥이나 떡, 술, 특히 좀처럼 먹기 힘든 단백질 식품 돼지고기를 고루 분배해 부족 전체가  건강하게 살도록 하는 능력, 즉 행정력이었지요.(책략가 장량과 더불어 한고조 유방을 도와 천하통일을 이룬 살림꾼 진평(陳平)도 사실은 어느 시골의 이름 없는 망나니였으나 우연히 동제(洞祭)의 제물을 고루 잘 나누게 된 능력으로 이름을 얻고 나중에 천하통일의 공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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