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장남, 장손병8
에세이 제1117호(2020.10.7)
이득수
승인
2020.10.06 16:51 | 최종 수정 2020.10.0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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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신의 태양인 아들이 출가하자 형수는 그만 몸져눕고 말았다. 지금껏 자신이 범해온 그 수많은 졸렬함, 염치도 체면도 없이 돈을 챙겨 사치를 한 모든 책임을 묻어 줄 변명거리 <우리 우현이>가 없어진 것이었다.
어쩌다 용기를 내어 수원의 아들집에 가면 아들이 사라진 이후 며느리와 손자손녀가 훨씬 혈색이 밝고 살이 찐데다 며칠을 머물러도 누구하나 사라진 아들이야기를 않는 것이었다. 가족들로서는 주체 못할 폭군이 사라진 이 상황이 실로 오랜만에 맞은 평온이었다. 그렇게 출가한 지 4, 5년이 지나 영주의 형수처소로 어떤 스님이 찾아와 소식을 전하기로 이제 완전히 머리를 깎고 불문에 들었으니 다시는 찾지 말라고, 자기 딸이 시집을 가거나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오지 않을 테니 연락을 말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 모든 무리수와 악행을 저지르며 단하나 자기의 아들, 장남이자 장손이란 이유로 집안의 모든 것을 가져야 하고 문중의 모든 사람이 받들어야 된다고 한 형수의 신(神)이자 하느님인 <우리 우현이>가 이제 생모인 자신이 죽어도 오지 않는다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었다.
그후 밝고 명량하고 현시욕이 많은 형수의 성격이 급격히 우울(憂鬱)에 빠졌다. 영주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시가 식구들이 모이면 봉투를 얼마나 넣어 왔느냐만 관심을 가지고 도통 식구들을 챙겨 먹이지 않았다. 제사를 지낸 통닭이나 생선을 좀 먹어보려고 해도 <잘 밤에 먹으면 해롭다>고 신문지로 돌돌 말아 냉장고에 넣었고 이튿날 아침도 아침에는 기름진 것 먹으면 해롭다고 콩나물국을 끓여 제사나물에 비벼서 아침을 먹는 즉시 금방 열차시간이 급하다고(두 시간이상이 남아도) 졸갑증(조바심)을 내며 형제를 길거리로 내몰았다. 하는 수 없이 우리가 집을 나서면 벌써부터 집주변에 웅성거리던 아낙네들과 추레한 영감들이 슬금슬금 집으로 들어갔다. 형님이 살던 <뒤새>라는 마을이 영주시의 대표적 달동네로 그 주민이 대부분 술 한 잔, 고기 한 점 먹기가 어려운 판에 아무에게나 씀씀이가 큰 골목대장 <이선생부인>은 그들의 절대적 지도자로 모든 사람들이 형수의 눈치를 보며 형수가 벌이는 고스톱판에 뛰어들었다. 시동생, 시누이가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통닭과 생선을 그 달동네 아낙들에게 퍼 먹이고 골목대장을 하고...
이어 병이 오고 힘이 떨어지니 그 많은 이웃들도 이제 더 이상 음식을 대접하지 않는 형수를 찾지 않았다. 형님이 자의식에 사로잡혀 고향을 등졌을망정 형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시가의 연고지인 언양이나, 친정쪽인 김해로 가자고 해도 모두 포기하고 영주에 앉아 가난하고 복종적인 여인들에게 왕 노릇을 하는 일이 끝이 나 우울증에 빠진 형수는 자신이 시집올 때 다섯 살이던 울산 동생, 막내대름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 울먹였지만 동생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일생을 두고 수도 없이 동생들을 울리고 모든 걸 다 챙겨가고는 성격이 날카로운 남편을 통해 한 평생 시동생들을 착취하던 형수의 목소리만 들려도 그만 화가 치솟는다고 했다.
그런 형수가 우리 몰래 두 번 아버지 산소를 다녀갔는데 산소 근방에 살던 4촌 형님과 6촌 누님이 들어보니 참으로 기가 차더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아버지 산소에서 굿을 하면서
“아버님. 우리 우현이 아빠가 장남인데 왜 동생인 부산대름은 사무관이 되고 동장이 되고 우리아이아빠는 직장에 적응도 못 하고 우리 아들 종손 우현이는 왜 만성우울증에다가 대인 기피증에 걸렸는지 지금이라도 작은 집으로 간 복(福)을 되돌려 자신들이 잘 살게 해달라"고 빌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이 많은 6촌 시누이와 사촌시숙에 쫓기다 시피 돌아간 형수가 두 번째로 나타난 것은 내가 서기관이 되고 아들이 삼성에 들어가 집안이 펴자 왜 작은집만 잘 되고 원질인 자기 집은 잘 안 풀리느냐면서 굿을 벌이며 당장이라도 그 복을 자신과 장손 우현이에게 돌려달라고 엎드려 흐느끼는지라 6촌 누님이 똥물을 퍼붓는다고 욕을 해 쫓아내었다고 했다.
좌우간 오로지 우리 장손이라고 태어나자 마자 매달린 수많은 여인들의 손길과 과잉보호로 우리 형님과 조카는 대를 이어 욕심 많고 사나우며 늘 우울증에 빠진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이바지도 못 하고 음울한 그늘만 지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렇게 지나간 일보다 그런 아비 밑에서 공포에 젖어 자란 우리 장손 상현이가 스물다섯 살이나 되어도 하루 종일 말이 없이 장기 알만 만지작거리며 지내는 것이 제일 큰 걱정거리가 되었다. 아비의 공포에 질려 말이 어둔한 그 아이는 청소년기에 친구를 사귀지도 못했고 평생 웃는 법이 없더니 제 덩치가 아비보다 크고 힘이 세어지자 사자보다 더 사나운 적개심을 드러내어 아비를 쫓아내었다. 군대를 가기는 가야하는데 그런 정신상태로는 <문제사병>이 될 것이 틀림없는데도 병무청에선 겉으로 너무 멀쩡한 그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병력자원으로 관리하고 영장이 나오면 입영을 연기하며 세월만 보내고 있다. 6.25 동란 때 입대한 사촌셋째 형님을 시발로 스무 명 넘게 육군의 보병으로 철책선 근무를 해온 명예스런 병역이행의 가족마저도 무너져 버렸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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