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장남, 장손병5
에세이 제1113호(2020.10.3)
이득수
승인
2020.10.02 20:00 | 최종 수정 2020.10.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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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지방의 웬만한 유지들, 심지어 내가 만난 팔순의 늙은 전직교사들까지 천재로 기억하는 형님은 다시 언양 걸음을 않았는데 술을 먹으면 성질이 괴팍해 친한 교사도 전혀 없고 학교에서 회식만 하면 교장선생에게 대들고 술상을 엎어 몇 번이나 우리형수가 울며불며 빌러가야 했다. 그 깊고 어두운 불안과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은 자신도 물론 그 누구도 해결을 못하는 장손병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또 영주까지 제사 모시러가기가 힘들어 내가 일직근무라며 제사비를 보내면 제사비가 너무 적다고 이게 큰집에 대한 예의냐고 전화로 호통을 치며 돈을 돌려보내 일직이 아니라 교통비가 없어 영주까지 못가서 마음이 아픈 아내를 몇 며칠이나 울게 했다.
객지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형제들이 영주로 가자 돈이 없어 언양에 산소를 못쓰고 영주에서 화장을 지낸다고 해서 그 많은 땅 팔아간 돈 다 어디에 썼냐니까 큰 것 팔아서 영주에 살 집을 사고 나머지 조그만 것 팔아서는 냉장고 큰 거 넣고 목걸이 하나 사고 보니 없더라고 했다. 그 욕심 때문에 동생들이 10년 20년씩 셋방살이를 더 한 건 어째 보상할 것이냐니까 대한민국은 부모 재산을 장남이 다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 아니냐며 형수는 배짱을 부렸고 형님은 침묵을 지켰는데 우리는 그 형님이 또 불을 지르거나 자해를 할까 봐서 도로 걱정을 해야만 했다.
모든 경비를 차남인 내가 다 부담하기로 하고 언양으로 운구해 공동묘지에 차일을 치고 문상객을 받은데 서구청을 비롯한 근무지의 직원과 유지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 버든마을이 생기고는 제일 큰 상사(喪事)라고 마을사람들이 모두 기뻐했는데 형수는 손님대접은 둘째 치고 어떻게 하면 부조통을 들고 튈 지 혈안이 되었다. 그러자 이미 그 악평을 다 들은 사촌, 육촌 나이 많은 형님들이 악착같이 부조통을 고수하다 우리형제들과 며느리를 모아놓고 경비를 결산하니 800만 원(1989년) 이상 들어온 돈이 단 50만 원이 남았는데 그걸 장남인 자신이 다 가지겠다고 떼를 쓰는 것이었다.
그 때 부보계를 맡은 6촌 형님이
“부조는 부모의 은덕이기도 하지만 상주의 빚입니다. 이번에 받은 부조만큼 형제 각자가 갚아야 하는데 장남은 돈 백만 원도 못 들어왔으니 입을 열 자격이 없고 600백 만 원 넘어 들어온 둘째는 빚이 600이 지고 직장에 가면 당장 밥을 사고 술을 사야 될 돈도 몇 백은 나갈 거라며 이 집은 형과 아우 손위와 손아래의 순서가 바뀌었다고 했다. 기왕 남는 돈도 없는데 마음 상하지 않게 네 누님에게 10만 원씩 막내에게 10만 원을 주자 장례 중에 조카의 안경이 깨어졌다고 그걸 사달라고 형수가 우는 소리를 해서 동생 몫 10만 원에 내가 생돈 10만 원을 보태 안경을 싸주고 종결이 되었다.
객지에서 친구하나 없이 살다보니 가지게 된 취미가 민물낚시였는데 일주일 내내 분필 만지던 사람이 낚시터에 쪼그리고 앉아 하루 종일 줄담배만 피우더니 결국 쉰일곱에 폐암이 와서 쉰아홉 가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 제 아내가
“아주버님 정말 우리 내외가 그렇게 미웠나요? 우리가 잘못 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한 30분 눈을 깜빡거리다
“다른 사람은 다 두고라도 제주씨한테는 정말 미안해요.”
일생에 단 한 번의 양심고백을 했는데 이어 오줌이 급해 우리 형제가 양쪽을 끼고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환자복이 오줌발이 튀자 자신이 못낸 시집을 내고 사무관에 동장을 지낸 청출어람의 동생이 너무 싫어 만나기만 하면 트집을 잡던 심술을 다시 꺼내어
“이기 다 득수가 잘못해서 옷을 버렸다.”
세상 모든 잘못은 다 내게 미루고 퍼붓는 장손 병의 절정을 날리고 그날 저녁 눈을 감았다.
형님의 발인은 본인의 원에 따라 영주화장장에서 발인한 유골을 언양까지 운송해 중고등학교를 다닐 시절 건너다니던 태화강 뚝다리(징검다리) 자리에 산골(散骨)했다. 교사로 취직하여 도피하듯 경북의 오지로 떠난 뒤 20년이 되도록 어머님장례식 때와 국민학교 동창회에 한 번 온 뒤 세 번째의 귀향이 죽어 뼛가루로 뿌려진 것이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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