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코로나19 시대」의 추석을 탄식하다
에세이 제1108호(2020.9.28)
이득수
승인
2020.09.26 14:04 | 최종 수정 2020.09.28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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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평생에 이렇게 삭막한 추석을 처음 맞습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꽁꽁 얼려 한국의 골목시장과 비닐하우스 하나하나에 실망과 근심이 가득한 가을도 모자라 유달리 장마가 길고 3개나 되는 태풍(颱風)이 한반도를 덮쳐 올해는 과일 한 가지 제대로 익어 사진이 곱게 나오는 것이 없으니 작금의 민심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하루하루를 보너스처럼 받아 연명하는 마초할배가 처음 아들이 인도로 떠난다고 할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내의 장도(壯途)를 막으면 아니 될 일, 설령 이 아비를 다시 보지 못해도 그게 인간사의 기본원리이니 아무 생각 말고 다녀오게.”
하고 대범하게 보냈는데 전 세계는 번진 코로나19가 조만간 아들이 근무하는 인도가 금방 코로나 확진자 수 1위가 될 것 같은 긴급 상황입니다. 그래도 부강한 모국의 경제력에 힘입어 전용기를 타고 아이어미와 손녀들이 미리 앞당겨 한국에 도착하고 보니 이제 하나 남은 아들의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러나 한창 일할 나이의 사내가 세계적 위기 앞에서 함부로 그 처신을 가볍게 할 수도 없는 법, 결국 어디선가 백신이 개발되어 세계인 모두 예방접종을 하고 코로나19의 소멸을 선언할 날만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 서로 오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서울의 며느리에게 굳이 명촌리에 오지 말라고 아내가 전화를 하자 이미 추석 이튿날에 서울에서 언양으로 오는 STR표를 끊었다 하니 자부와 두 손녀를 만나는 일은 반갑지만 그 아이들까지 왔다가면 인도의 아들이 더 한층 보고 싶어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시골할배답게 이 삭막한 추석기념 한시 한 수를 올립니다. 한자로 달리 번역할 방법이 없는 코로나19는 <고난19>로 마스크는 <막구>로 설총의 이두를 흉내 내었으니 두루 이해 바랍니다.
村老歎息 苦難19
-시골노인이 코로나를 탄식하다-
苦難19 襲一瞬 고난19 습일순
閭巷絶滅 親而近 여항절멸 친이근
獨子印度 孫女京 독자인도 손여경
1家3處 仰秋月 일가삼처 앙추월
코로나19가 한순간에 엄습하자
마을엔 친구, 이웃 일시에 절멸하고
외아들은 인도에서 손녀들은 서울에서
한 가족이 세 곳에서 보름달을 보는구나.
老妻子女 胥婦兮, 노처자녀 서부혜
嘉禾羽化 映,炫敍 가화우화 영,현서
有始有終 萬事滅 유시유종 만사멸
當面苦難 忍又忍 당면고난 인우인
아들딸과 내 아내여
가화우화 영서현서,
시작은 끝이 있듯 만사는 소멸되니
당면한 어려움쯤 참고 또 참아내자.
一時鬱寂 心事撫 일시울적 심사무
莫口衛生 持徹底 개인위생 일우일
膝下悉集 皆和樂 슬하실집 개화락
明日期待 今日笑 명일기대 금일소
무단히 울적한 맘 고요히 달래면서
마스크와 개인위생 매일매일 잘 지켜서
슬하에 10가족 한자리에 모여 노는
좋은 날 기대하며 오늘 미리 웃어보세
<해설>
1. 이 한시의 형식은 7언의 율(律)이 셋이나 되어 장편율시로 보아야 할 것임.
2. 고난(苦難)19 : 코로나19와 의미와 맞고 한시의 율에 맞게 지은 이름임
3. 일가삼처 : 필자가 거주하는 명촌리와 아들이 있는 인도에 아이들의 외가가 있는 서울
4. 嘉禾羽化 映,炫敍 가화우화 영,현서 : 서울손녀 가화, 우화와 부산손녀 영서와 현서
5. 莫口衛生(막구위생) : 마스크쓰기와 개인위생
6. 膝下悉集(슬하실집) : 슬하의 자손들이 모두 모이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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