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통영(統營) 신사 이승암, 그 단아한 삶과 죽음5
에세이 제1107호(2020.9.27)
이득수
승인
2020.09.26 13:41 | 최종 수정 2020.09.2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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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0년 가까운 긴 세월은 어떤 때는 다정한 동료로서 바둑도 두고 고스톱도 치고 또 승진이나 전보, 시험을 앞두고 치열한 경합을 벌여 한 두 번쯤 이기고 일곱 번쯤 진 나보다 월등히 인간성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 그래서 친구도 보통친구가 아닌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과 사마중달처럼 수시로 그 속마음을 헤아려 작전을 짜고 전쟁을 승패를 가르면서도 비록 최대의 적수이지만 어느새 정이 들어 차마 남 같지 않은 사람, 그래서 가히 지음(知音 원래 아는 목소리, 친구로서 깊이 사귀어 속마음까지 서로 가늠할 정도로 친하면서도 때로 적이 되는 사람)이 된 사람을 나는 단지 내 머리를 식히고 내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하여 바깥출입을 않고 휴대폰마저 잘 열어보지 않는 바람에 그 소중한 사람의 부음도 듣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가장 큰 두 번의 위기 42세의 교통사고와 66세의 간암폭발이 한 6개월 전쯤 어떤 전조(前兆)같은 것이 있었는데 스스로 감을 잡지 못한 것이었다. 우선 교통사고를 당하기 얼마 전 영주의 큰댁으로 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다니며 열차를 타거나 승용차를 타고 차창을 보면 왜 그리 서글픈 생각이 자꾸만 나는지(사실 그 때 나는 직장에서 욱일승천의 기세였는데) 당시에 몇 줄씩 끄적거려 나중에 처녀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를 보면 하나같이 슬프고 허전한 톤의 시들로 채워진 것이었다.
그리고 문득 오랜 지음(知音) 이승암 국장, 목소리도 눈빛과 모든 것이 다 착하고 싱싱하고 다정한 그 사내를 잃어버리고 문상도 못한 채 엉뚱한 죽음에 관한 회고를 잡지에 발표한 나, 그 이기적이고 의리도 없는 사내 나는 단 6개월을 더 버티지 못하고 급성 간암이 발병하는 시한부생명이 되고 만 것이다.
아 말은 비단 나뿐이 아니라 독자여러분들도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서글픈 시기, 허무나 외로움이나 서러움 같은 단어가 자꾸 떠오를 때 머잖아 자신의 신상에 커다란 사건이 닥칠 절체절명의 위기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 사람의 우울과 허무도 또 이웃의 죽음도 나름 또 하나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우리는 미처 그걸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추도문을 쓸 때 줄곧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던 저 음울한 숲의 나라 노르웨이, 차디찬 얼음의 나라 북으로 가는 길의 작곡한 그리그가 작곡한 그 빼곡한 침엽수와 음울한 겨울바람과 눈보라와 끝없이 침강하는 피오르드의 나라 노르웨이의 대표적 가요 <솔베이지송>, 마치 이명(耳鳴)처럼 내 귓속을 울려 전회의 대미에 내가 마침내 인간으로서 모든 능력과 자질이 다하여 이제 숨이 끊어지고 눈만 감기면 되는 그 열명길에 접어들었을 때 그 피폐한 조건에서도 청각은 끝까지 남아 다정하던 목소리와 친근한 음악을 들으면 아주 느긋하고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그 많은 노래 중에서 저 음울한 숲의 나라 노르웨이의 <솔베이지송>을 듣는 것이 좋겠다고 한 일이 있었는데 누가 그런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공영방송 KBS <죽음의 특집>에 암에 걸린 젊은 여자가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는 순간마다 빈사상태로 남편과 아이를 만나 손으로 얼굴을 만져볼 때 또 먼저 죽어간 사랑하는 부보형제를 생각할 때마다 배경음악으로 솔베이지 송이 나오는 것이었다.
한 시골늙은이의 푸념 같은 이야기 속의 노래를 공영방송국의 작가나 PD가 어떻게 알았을까, 불과 회원 수 30명의 동인지를 방송에 종사하는 분들이 접할 수도 없었을 텐데... 좌우간 3, 4회 연속으로 나온 그 죽음의 특집(제목은 생각 안남)나는 늘 그 솔베이지 송에 젖어 날마다 눈물을 질금거리며 산 기억이 난다.
그렇다. 마치 감당도 못하고 형언도 못할 엄청난 사연을 가진 듯 무겁디무거운 긁힘으로 읊조리다 마침내 오르가즘에 도달한 여인의 희열에 찬 외마디 소리로 끊어지는 저 찬바람과 흰 눈과 우울(憂鬱)이 지배하는 나라 노르웨이의 사내 그리그의 <솔베이지 송>, 우리가 죽음을 생각할 때 영원한 시간과 어둠, 또 그 가운데의 노란 햇살 한줄기를 떠올리면 그 노래는 얼마나 깊고 그윽하게 우리의 청각과 영혼을 어루만져 마침내 지금 내가 살아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 또는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지, 우리가 말로는 어떻게도 표현할 수가 없지만 듣기만 하면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군대시절의 <하기식 음악>이나 어느 새까만 흑인 사내가 밤하늘에 대고 부는 재즈나 영가(靈歌)보다도 더 낮고 음울한 트럼펫 <밤하늘의 멜로디>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루하루 세월이 지나 내가 점점 죽음에 가깝다고 인식할 때 마다 내 귓가에는 <솔베이지송>이 이명처럼 살아난다. 마치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노래 지상(地上)에서 영원(永遠)을 통하고 영원에서 지상을 통하는 노래처럼.
마지막 한 마디, 참으로 고맙고 존경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어진 벗님이여, 부디 그윽이 영면하시라.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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