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통영(統營)신사 이승암의 단아한 삶과 죽음1

이득수 승인 2020.09.22 22:21 | 최종 수정 2020.09.22 22:49 의견 0
이승암 국장이 자란 통영의 강구안 항구 전경 [사진 = 통영신문]

여기 한 사내가 죽었다. 
사철 새빨간 동백꽃이 피는 남쪽나라의 바닷가 언덕에서 아침저녁으로 들고나는 배들과 새파란 바다를 보며 고무공을 차고 휘파람을 불며 자라난 그 아이는 눈빛 가득 통영바다를 담은 싱싱한 소년이 되어 글짓기를 잘하고, 축구에 능하고, 노래하기 좋아하는 해맑은 젊은이로, 번쩍이는 눈빛의 늠름한 청년이 되어 전투복이 잘 어울리는 파월장병이 되기도 했다.

이어 긴 공직생활을 고엽제후유증의 쇠약한 몸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여 노모를 부양하고 아이들을 길러내어 훈장을 받으며 퇴직하여 동료와 시민들에게 모범공무원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바로 수십 년간 나와 앞서거니 뒤서기니 경합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헤일 수도 없는 이승암국장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1988. 8. 1 우리는 당면한 올림픽의 완벽한 추진과 미구에 닥칠 지방자치단체의 발족을 앞둔 대대적 안사태풍에 휩쓸려 그는 시청 시정과라는 요직에서 서구청행정계장으로, 연산1동사무소 평직원이던 나는 괘씸죄에 몰려 머나먼 서구청으로 좌천하면서 만났다. 그리고 20년 정도의 세월을 자치구의 계장과 민선시대의 사무장과 서기관 승진을 놓고 숨가쁜 혈전을 벌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충 2 대 5정도로 내가 진 것 같다. 그런 가운데 공무원의 최대 고비인 사무관승진 시험은 내가 이겼고 고급공무원단에 포함되는 서기관 승진에서는 내가 참패를 당했다. 그러나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그 복마전 자치구애서 그는 세력을 구축해 일방적으로 나를 밀어붙일 수 있음에도 끝까지 파인 플레이를 하고 실패한 내가 절망에 빠지면 표나게는 아니지만 뒤에서 세심하게 배려하며 은근히 걱정도 해주었다.

그 수많은 세월을 압축한 마지막 승부 서기관 승진에서 내가 참패해 <앞집에 처녀는 시집을 가는데 뒷집에 처녀는 목매러간다>는 속담처럼 그는 승진해 국장이 되고 나는 이름도 없는 신설과장으로 좌천이 되는 경우에도 그는 나의 진로를 꼼꼼히 챙겨 걱정해주었으니 인간적으로 나보다 한 수 고수며 은근한 적의를 품고 그를 넘으려 늘 전전긍긍하는 나보다 인품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신사중의 신사인 것이다.

그러나 어쨋든 우리가 인간으로서 친구로서 또 적수로서 마지막 겨룸인 죽음에 있어 그는 나보다 먼저 죽었고 나는 그 죽음을 오로지 내 불찰로 알지 못했으니 인간적으로 떳떳하지가 못하다. 그 원인은

퇴직만 하면 읽는 대로 머리에 글이 속속 들어오고 마우스만 잡으면 술술 글이 써질 것 같았던 현직시절의 희망이 퇴직을 하고 무한정의 시간이 주어지자 도무지 무슨 열병에라도 걸린 듯 머뭇거리고 비틀거리며 자리를 잡지 못 하자 나는 뭔가 변화를 구해야만 했다. 

그래서 길을 가다 동사무소의 태극기를 만나도 길을 돌아서 가고 정치, 행정, 회의, 행사, 축제에 참여하거나 생각하는 것조차 삼가며 공직자의 그 딱딱한 사고방식을 벗어나려고 아주 가까운 동료의 길흉사가 아니면 직접 참석을 않고 부조만 보내면서 그저 금정산에 채소를 가꾸거나 수영강을 배회하기를 3년, 겨우 평생을 준비해온 자전적 대하소설 <신불산>의 집필에 매달리면서 또 하나 나를 혼란에 빠트리는 존재 휴대폰을 멀리해야한다는 난관에 부딪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 정신을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하루에 너덧 시간 정도이고 특히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침나절의 서너 시간 동안이라 무아지경으로 몰입하고 파김치가 되어 물러나는 것이 습성인데 시도 때도 없이 오는 휴대폰을 받다가 무슨 갈등이 있거나 장광설에 휘말리고 나면 몇 며칠이나 마음을 다져 겨우 써나가던 문장이 뚝 끊어지면 다시 쓰려 해도 생각도 산만하고 억지로 써도 앞뒤의 글맛이 영 딴판이 되어 끝끝내 며칠을 고생한 글을 지워버리고 다시 한동안 마음을 다스려 다시 시도해야 하는 것이었다. 

부산 서구청 제3대 민선구청장 취임식(두 번째줄 오른쪽 두 번째 이승암 국장, 네 번째 필자. 이 순간이 그는 영광의 길로 내가 질곡의 세월로 들어가는 출발점이 된다)

결국 휴대폰을 끄고 신문을 끊고 기장의 야산을 일구어 농막을 짓고 칩거했는데 주말에 모처럼 찾아온 아내가 내 휴대폰의 메시지를 하나씩 지워나가다 초특가 상품 틈에 조그맣게 자리한 부음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질긴 인연의 동료 이승암국장이 간암과 만성피로로 죽은 지 이미 6개월도 더 넘어서...

아내에게 혼이 난 것은 변명이라도 하지만 망인에게는 어떻게도 사과할 수 없는 일, 어느 듯 장년(長年)을 넘긴 나로서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어딘가 늘 나를 훔쳐보고 호시탐탐 노리는 것만 같은 그 죽음에 관한 짧은 고찰로 고인에 대한 애도와 함께 명복을 빌고자 긴 애도문을 써 당시 내가 몸담은 단 하나의 바깥세계 <연제문학>에 발표 애도의 뜻을 표했다. 다음은 그 본문이다.

도대체 죽음은 무엇이고 생명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태어나고 죽어가는 것일까? 

이는 죽음의 재료가 되는 탄생에 대하여 먼저 생각해보아야 되는데 하나의 풀잎이 지각을 찢고 나오거나 나비가 부화하거나 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성스럽고 경이로운 생명의 출발이지만 그 의미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이득수 시인

흙이나 바위 같은 무생물과 달리 움직임을 가지는 이 유기질의 생명체는 우주를 이루는 두개의 얼개인 시간과 공간을 꾸미고 채우고 훼손하는 존재, 그래서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는 장점대신 필경에는 기어이 죽고 만다는 시간적 제약을 받아 꼭 같이 받아, 다시 말해 그렇게 죽기 때문에 생명체라고 불리지만 각자 살아있는 동안 시간적 공간적 활용은 매우 판이한 양상을 보인다. 

즉 식물은 한정된 공간 즉 땅에 뿌리를 박고 잎과 꽃을 피우고 물과 햇빛을 받기위해 서로 다투며 옆으로 번지고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열매를 맺기 위해 화려한 꽃과 달콤한 꿀로 벌 나비를 유혹하고 떨어진 열매를 싹 틔우기 위해 감과 포도, 밤과 도토리처럼 맛있는 과육을 내어준다. (다음회 계속)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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