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카톡으로 보는 코로나19

에세이 제1101호(2020.9.21)

이득수 승인 2020.09.20 14:45 | 최종 수정 2020.09.20 14:58 의견 0
우리 3남매와 숙재누님이 모인 버든사람의 점심
우리 3남매와 숙재누님(필자 왼쪽)이 모인 버든사람의 점심

코로나19로부터 살아남는 일이 우리에게 매우 절박한 일이기는 하나 너무 오래가면 전 국민이 무력감에 빠지거나 기가 죽을 것 같아 적당하게 마무리를 하려는데 주변에서 나름대로 코로나로 고민하는 생생한 카톡이 두 건이나 날아와 하루 더 연장하기로 한다.

첫 번째 사진은 우리 생가마을 종가집의 딸로 나보다 6세 많은 76세의 신숙재누님이 보낸 카톡이다. 그녀는 장돌뱅이 우리 마을에서 가장 많은 성씨를 차지한 영산(靈山) 신(辛)씨 큰집으로 그의 증조부가 유명한 한학자이자 시인으로 언양 작천정에 시가 걸린 유림에다 그의 부친 신근수 씨는 왜정 때 언양청년회를 구성 회장으로 있으면서 겉으로는 농업진흥, 생활개선을 앞세우고 뒤로 작천정에 <청사대(靑史臺)>라는 항일의 단을 쌓은 매우 엄격한 양반집 딸이라 학창시절에는 방과 후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라 사고방식이 좀 순수한 부분이 많다. 평소 몸이 약해 농가에 시집가면 힘이 든다면서 부친이 시골의 조그만 약방총각에게 시집을 보냈는데 세월이 흘러 언양장터골목에서 <범표신발>운동화 장사로 살림을 이루었다. 

그 당시 내가 4권의 시집을 발간하며 누구보다 열독하고 얼마간이라도 책값을 주며 대시인인 자기 증조부를 이어 같은 마을 <버든>에서  자라난 시인에 대한 자랑이 대단했다. 내가 알기로 나이든 남편은 신발장사를 접고 치매가 와서 상북면 양등리의 요양병원에 있고 아들은 길천공단에서 제법 큰 회사를 운영해 사람구경이 힘들어 어쩌다 내게 전화를 해 한번 연결이 되면 나무 오래 통화를 하는 바람에 내가 쓰던 글이 엉망진창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새 책을 내거나 무슨 일이 있을 때 내 두님과 아내와 언양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 식사보다도 오랜만에 만난 마을친구 우리누님들과 이야기가 목말라 좀체 일어시지를 않아 또 곤욕을 치르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 강퍅한 세상에 이만한 이웃이 또 어디 있으랴?

숙재누님의 카톡

그 숙재누님이 엊그저께 내게 카톡이 보내왔는데

코로나여 어서 가오
미련 없이 떠나가오
오만 사람 다 만나는 
아들 걱정 심히 되오
보고파도 볼 수 없는
사랑하는 보물들아
다가오는 추석명절
어찌하면 좋을꼬.

하는 내용이었다. 70대 후반의 할머니라 좀 가오, 되오 하는 문구가 좀 구식이기는 하지만 언양일대 제일의 선비요 시인인 석암 신혁식선생의 증손녀답게 조목조목 아쉬움을 두루 표현한데 다가 절로 운율이 잡힌 점이 좋아 올립니다.

인도의 아들이 보낸 술상차림 사진3
인도의 아들이 보낸 술상차림 

그리고 어제 밤에는 가족들과 떨어진 지 벌써 몇 달이나 되는 뉴우델리의 아들이 부모에게 자기는 이렇게 잘 지내니 아무 걱정 말라는 투로 인도의 술과 한국의 소주까지 상차림을 해서 사진을 찍어 보냈다. 애련한 마음에 그래 어서 먹고 푹 자라고 댓글을 보냈는데 그래도 많이 아쉬워 포토에세이에 올린다. 외교관과 해외근로자, 재외동포여러분, 배달의 민족답게 꿋꿋하게 코로나19를 잘 넘깁시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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