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자가격리와 「라바」의 세월

에세이 제1098호(2020.9.18)

이득수 승인 2020.09.17 12:29 | 최종 수정 2020.09.17 13:03 의견 0

여러분은 어느 날 무심히 길을 가다 문득 경찰관의 검문을 받고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죽도록 고생한 이웃이나 지인이 있습니까? 어느 곳보다도 살기 좋은 예향 빛고을에 갑자기 밀어닥친 1980년 살인의 광기와 총성, 화약연기가 가득한 탱크와 특전사...

우리나라의 민주화과정에서 가장 아픈 기억이 된 민주화의 도시 광주의 시민생활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아침에 일을 하러 나간 아들이 저녁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태극기에 덮여 돌아오던 것처럼 2019 겨울 지구는 코로나라는 이름의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은 조그만 미생물에 점령당해 2020년에 곧바로 세계적 암흑기에 들어가 최고의 세계대국 미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나라가 코로나의 악몽, 아니 저주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 19는 그 치사율이 매우 낮은 데다 인류는 반세기전 특정원숭이가 옮겼다는 <에이즈>와 <메르스>, <샤스>등 몇 가지의 전염병에 잘 대응해 그 대부분이 찻잔 속의 태풍처럼 조용히 지나가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견할 당시에는 그리 겁을 내지도 않고 그냥 가볍게 지나가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남의 일로 치부했습니다. 

나 역시 이제 한국에도 중국 발 비행기를 통해 한 두 명의 확진자가 생긴다는 보도가 나오던 2월 5일 아침을 잘 먹은 제 이마에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그러다 내려가겠지 생각했는데 시간대별로 체온검사에 체온이 계속 올라가자 놀란 아내가 황급히 저를 싣고 부산 백병원으로 달렸고 응급실에 도착하자 근 10명의 의료진이 붙어 온갖 조사를 다 하며 사람을 덜덜 볶고 아내는 나를 거의 발가벗기다 시피 얼음찜질을 해 겨우 눈을 뜰 지경이 되자 제 책임담당의인 혈액종양과의 교수님이 나타나 나이도 일흔이나 되는데 말기암까지 걸린 중환자가 열이 난다는 것은 엄청 위험한 일이라며 무엇 때문에 열이 나는지 혹시 목이 막히고 가래가 끓느냐, 설사나 배탈은 없고 배출은 이상 없느냐, 하다 못해 오줌은 잘 누느냐, 별 희한한 예를 한 스무 가지나 들어 제 몸을 체크했으나 좌우간 원인이 무언지 그 이상을 밝혀 처리를 할 때까지 집에 갈 수 없다며 응급실 옆방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에 바로 열이 내리자 왜 열이 내렸는지 그 원인을 찾느라 수습의를 보내 또 다시 기나긴 질문을 던지며 사람을 5박 6일이나 억류해 저는 어느 날 갑자기 제 몸이 거대한 곤충류로 변해 완강한 등껍질에 갇힌 이야기, 카프카의 소설<변신>이 바로 내 자신 같고 어느 날 아침 잘 먹은 내가 갑자기 한 마리 곤충으로 변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5뱍 6일을 해도 무슨 발견이나 진전이 없어 저는 퇴원을 했는데 그때부터 바깥에서는 코로나19의 숫자가 자꾸 늘어나 바야흐로 마스크대란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입원생활에 크게 고생한 건 없지만 포토 에세이도 작성을 못 해 너무나 갑갑한 시간을 보낸 저는 말기암환자로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고 한숨을 돌리는데 마침내 주변에서도 코로나가 터졌는데 부산장산성당의 성모회장으로 있는 처제가 대구에서 온 어머니에게서 코로나에 감염된 여신도와 같이 미사를 본 게 확인 되어 2주간 자가격리를 당한 것입니다. 평소에도 하루에 한 두 번 자기 언니인 아내와 통화를 하면서 세상만사를 다 섭렵하고 분석하던 처제의 통화가 끝이 없이 이어져 나도 카카오 톡으로 쾌유를 비는 사이에 보다 더 가까운데서 일이 터졌습니다. 

지난 5월 우리 정부가 보내준 전용기 편으로 김해공항에 도착한 두 손녀.

인도 뉴델리에 주재원으로 떠난 아들 네 식구 중 며느리와 두 손녀가 한국정부에서 보내준 전용기 편으로 귀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인구가 많은 저개발국이라 늘 조바심을 내던 판에 이렇게 며느리와 두 아이가 돌아오는 것은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홀로 남은 아들도 걱정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일단 외국에서 비행기로 들어온 이는 발열검사를 해서 음성판명이 나도 일단 2주간을 자가격리를 하여야 된다는 말에 우리는 마침 비어있는 망미주공 아파트에 세 사람을 격리시키기로 하고 아내와 제가 내려가 생필품을 갖추고 밑반찬을 준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공항에서 출발한 호송차가 도착하기 한 30분쯤 철수했습니다. 지척에 그 귀여운 아이들을 두고 만나지 못 하는 사이 동갑친구 외사촌 현서는 또 얼마나 고종사촌들이 보고 싶을지, 마침 친손녀들이 만두가 먹고 싶다고 하면 우리내외가 미리 전화로 방문을 알리고 딸네집 만두를 쪄 포장해서 똑똑 노크를 하고 멀찌감치 떨어지고 며느리가 문을 열어 눈이 마주치면 어서 거실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한 뒤 만두를 현관에 놓아주고 거실에선 손녀들과 조손간에 눈인사를 하고 우리가 엘리베이터을 타고 내려간 뒤에 아파트 현관문을 닫는 식으로 생필품을 조달했는데 한 번은 현관문을 여는 순간

“할아버지!”

하고 달려오는 두 아이에게 멈추라고 표시를 하자 두 아이가 제 자리에 우뚝 서 팔을 들어 올리더니 문득 큰절을 하는 게 그동안 할아버지도 보고 싶었지만 얼마나 사람이 그립고 이야기가 아쉬웠을까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4일 격리기간이 끝나자 모처럼 4촌 상봉을 한 세 아이가 신이 나서 놀다 며칠 후에 할아버지를 보러 명촌리로 왔습니다. 반갑고 귀엽고 살갑고... 그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이나 대패삼겹살 집도 다니며 한 사나흘을 지나니 아이들이 반갑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거실에 모기장을 치고 잠자리에 들면 우리 내외는 좁은 서재에 빈 바께스 하나를 들고 와 눕는데 둘 다 몸매가 후덕한 편이라 몸부림치기조차 힘이 드니 꼼짝없이 어린이 애니매이션 「라바」에 나오는 갈색과 노랑색의 벌레가 되어 또 한 번 카프카의 <변신(變身)>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나오는 이미지 장수풍뎅이(명촌리에 매우 흔함)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나오는 장수풍뎅이(명촌리에 매우 흔함)

그리고 한 달 가까이 서울의 외가에 갔다 온 사이 우리 부부는 비로소 편안했지만 사돈까지 모시고 부산의 바다구경을 내려와 또 한 번 법석을 부리고 지금은 서울로 올라갔는데 이따 추석 때 내려오면 우리 내외는 또 다시 라바가 되어야 하는 너무 많이 즐거운 손녀상봉이 이어질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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