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꽃도 아닌 것이 열매도 아닌 것이

에세이 제1092호(2020.9.12)

이득수 승인 2020.09.11 12:52 | 최종 수정 2020.09.11 13:34 의견 0
벼 포기에 붙은 빨간 서양우렁이의 알

한동안 이야기가 너무 집요한 감이 있어 고명으로 들녘소식 하나를 얹습니다.

첫 번째 사진을 보시면 파란 벼 포기의 허리 부분에 가늘고 빨간 물체가 아래위로 길게 매달려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지금 벼(나락)가 한창 패기 시작하는 철이라 저 빨간 것이 바로 벼의 꽃인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반만년 배달민족의 주식(主食)인 벼는 벌, 나비나 새 같은 동물이 도움이 아니라 바람으로 수분(受粉)하는 풍매화(風媒花)라 우선 저런 화려한 빛깔이 필요가 없고 꽃이나 이삭도 그냥 희끗하거나 약간 노란 무채색에 가깝습니다. 그럼 벼 아닌 다른 기생식물의 꽃일까요? 이와 비슷한 모양의 여뀌풀의 붉고 동그란 꽃과는 역시 많이 다릅니다. 바로 벼에 가생하여 사는 농사용 <서양우렁이의 알>이라는 것입니다. 
 
한 때 우리는 반만년의 가난을 물리칠 식량 자급자족을 위해 농촌지도소와 면사무소를 통하여 벼농사의 다수확지도를 했는데(저도 울주군 삼남면사무소에서 한 해를 담당) 그건 벼의 알곡을 증산(增産)하기 위해서는 토질이 좋고 물이 넉넉한 옥답에는 벼를 심는 골을 넓게 해서 드문드문 심고 비료를 넉넉하게 쳐 키가 한 길이나 되는 풍성한 벼 이삭을 키워내는 광파다비(廣播多肥)의 기법과 함께 산골짜기에 있는 좁고 긴 천수답에는 비와 햇빛이 풍부해 날씨가 좋아야 알곡을 먹을 수 있으므로 일단 벼를 소물게(배게) 심는 것입니다. 하여 날씨가 좋은 해는 부추밭처럼 빽빽한 논에서 알곡을 수확하고 날씨가 나쁘면 소출을 포기하는데 그 기법을 소주밀식(小株密植)이라 했는데 저 같은 농촌소년이나 농업고등학생들은 그게 부모나 선생님 몰래 숨어서 소주를 마시는 행위라고 쿡쿡 웃었습니다.

아직도 논바닥을 점령한 우렁이(물이 흐려 길에 놓고 사진을 찍었음)

그런데 그나마 성이 안 찼는지 소위 녹색혁명(綠色革命)이라는 종자개량이 이어졌는데 이는 벼의 밥맛이나 영양보다는 오로지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를 농촌지도소를 통해 전 농토에 보급(거의 강제)했는데 키가 두어 뼘 정도지만 줄기가 통통한 이 통일벼는 포기나눔(分蘖)을 할 때가 되면 한 줄기가 10 개 이상의 줄기로 새끼를 치고 그 줄기마다 또 몇 개씩의 벼이삭이 패 소출량이 갑자기 배(倍)이상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정부의 그 지독한 혼분식권장, 쌀술담기금지 등이 졸지에 해제되어 단군 이래 최초의 식량자급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산된 통일미가 밥맛이 너무 없어 땅이 좀 넓은 농가에서는 자기들의 식구가 먹을 아끼바리같은 미질이 매우 치밀하고 밥에 윤기가 나는 자포니카(일본벼)를 들여오기 시작해 당시 부유층은 고급 쌀을, 일반인은 통일미를 먹는 계층갈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농촌진흥청이나 지도소에서 계속 연구한 것이 통일벼보다 생산량도 많고 아끼바리처럼 밥맛도 좋은 쌀을 개발하는 것인데 화학비료가 아닌 퇴비를 듬뿍 넣은 법, 농약을 치지 않은 무공해 볍쌀 등이 연구대상이었고 그런 와중에서 제초제 대신 논의 잡초를 제거하고 그 분비물로 토질이 비옥해지는 <서양우렁이>를 키우는 방법과 <오리농법>이라 하여 논배미마다 울타리를 치고 오리를 치고 그 오리가 잡초와 올챙이 등을 제거하고 그 배출물로 땅이 비옥해지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전에 화학비료를 칠 때보다 소출이 떨어져 포장을 따로 곱게 하고 무공해 쌀임을 홍보해도 잘 먹히지 않아 판로가 막히자 아예 자연친화농법을 포기하거나 밤에 몰래 화학비료를 치는 집이 늘어나 결국 무공해쌀은 국민들의 믿음과 사랑을 얻지 못해 대부분의 농가들이 이를 포기했습니다. 그러자 지금껏 농사의 효자이던 우렁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볏논은 물론 도랑을 타고 번져 다른 지방까지 번져버려 그 서양우렁이는 저렇게 나락포기에 알을 붙여 부화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빨갛고 동그란 여뀌풀(약국대)의 꽃

우리나라의 속담에 한 마리의 우렁이가 다 자라면 꼬리 쪽 등껍질 아래 가득 알을 채워 키워 그 하얀 사각형 알이 하나하나 동그란 우렁이로 부화하면 어미의 속살을 파먹으며 성장해 마침내 몸 밖으로 나오면 이제 빈 껍질이 된 어미 우렁이는 텅 빈 속껍질에 나전칠기(螺鈿漆器)의 무지개 빛깔이 어린 화려한 몸매, 마침내 자신의 소명을 다한 빈 껍질을 자랑하며 동동 도랑물에 뜨면 바닥에 정착한 새끼우렁이들이 꼬물대며 소리칩니다.

“우리 엄마 물이고 간다. 우리엄마 시집간다!”

어미를 보낸다고 했는데 마치 애 많은 동양의 어머니가 7, 8명 딸들을 시집보낼 때마다 눈물로 이별하는 것과 달리 시원시원한 서양의 엄마 달팽이들은 처음부터 모성애는 전연 없이 새가 먹든 물에 쓸리든 그냥 벼 포기에 매달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우렁이 농법>, <오리농법>이 사라지고 당시의 농부들이 늙어 물러서자 이제 소수의 젊은이들이 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 등으로 광활한 면적에다 경작과 이앙과 타작과 수매까지 원스톱으로 수행하는 시대가 되니 우렁이는 저렇게 물가나 도랑바닥에 팽개치고 오리사육장은 저렇게 흉물이 되어 빈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황량한 들판을 연출하는 텅 빈 오리집들

그런데 말입니다. 저렇게 <우렁이농법>과 <오리농법>으로 다수확에 기여했다고 상을 주고받은 현장공무원과 정책입안사람들은 아무도 무슨 책임도 지지 않고 뒤처리를 하지 않아 너무 질겨 먹을 수도 없이 기하급수적으로 온 들녘과 도랑을 빨갛게 덮어버리는 빨간 우렁이알과 여름날 초록들판과 가을철 황금들판에 저렇게 흉물스런 오리집이 세월에 삭아가는 것입니다.

지방정부의 간부공무원으로 환경심사 등 환경단체원들과 접촉할 일이 많았던 저는 시골에 오자말자 그 많은 환경단체원들이 어디로 다 가버리고 우리의 문전옥답이 저렇게 훼손되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세월호>는 물론 근래 <검찰개혁>, <조국수호>라는 참으로 생경한 시위, 역사를 바꾼다는 그 촛불시위에 들녘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환경단체의 깃발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기가 찼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구호로 편을 갈라 실속 없는 이념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녹색당이든 그린(Green) 무엇이든 수많은 환경단체들이 정부의 하수인이 되면 순박한 농민의 농심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위장의 환경운동가들이 그 선동적 플래카드를 팽개치고 어서 우리의 들녘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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