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가을 민선구청장 취임을 기념하는 <제 1회 구민축제>가 구덕운동장 매인스타디움에서 열린다고 했다. 민선시대가 되면서 들불처럼 번지던 <구민의 날 행사>에 승리자인 구청장이 처음으로 전 구민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연설을 하고 술을 권하며 자신의 정치기반과 표를 공고히 다지는 행사로 구청장과 측근부대에겐 거의 사활을 건 행사였다.
그러나 행사내용은 동별 특색을 살린 가장행렬이 50점이고 나머지는 초등학교 운동회 학부형 대회 같은 간단한 게임 40점에 특별 점수 10점을 더해 100점 만점으로 하고 우승 동에는 무려 일백만 원의 상금을 주기로 했다. 구청장과 참석구민은 그저 하루 편하게 놀고 마시며 단합을 다지는 날이지만 18개 동장들에겐 비상이 결렸다. 바야흐로 행정사무관동장 시대가 열려 예비군중대장이나 정당 출신, 심지어 시장골목의 참기를 장사까지 관할 국회의원에게 돈을 주고 동장이 되어 본전을 뽑느라 무허가 건축에 손을 대다 구속되고 쫓겨 나가기 일쑤인데 참신한 사무관 동장이 세 명이나 가세한 판에 구태의연한 동장들은 상을 받기는커녕 연말인사 때 퇴직을 종용받을 분위기였다.
소식을 접한 나는 바로 단체장 회의를 열어 개발위훤회와 방위협의회 등 상위 위원회에 예산협조를 약속받고 청년회, 부녀회, 새마을지도자와 통반장, 자율방범대의 실무회의를 개최했다. 동의 특성을 살리는 가장행렬은 내가 제의한 대로 공동어시장에서 위판하는 대표어종 고등어, 오징어를 비롯해 갈치, 장어, 문어, 낙지, 삼치, 방어, 심지어 몸이 전기톱으로 잘린 듯한 개복치까지 한 20여 종 40여 개의 깃발과 모형을 만들어 <한국생선위판의 수도 남부민1동>의 플래카드와 함께 대규모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그날 현장에 동원할 인원, 행진에 참석할 사람을 선발하고 플래카드와 피켓, 깃발을 제작하는 사이에 인근동의 동향이 들어왔다.
부산수산업의 또 하나의 메카 자갈치시장에 연접한 충무동에서는 자갈치아지매를 테마로 또 남항부두 방파제가 있는 남부민3동에서는 거북선을 재현하고 서구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암남동에서도 송도해수욕장을 주제로 대대적인 준비를 해 남부민1동을 포함해 4개동의 혈전이 벌어지는데 행사의 내용과 아이디어는 남부민1동이 제일이겠지만 동장이 구청장에게 찍혀 보나마나 꼴찌일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여론이었다. 그렇게 완전 풀이 죽은 단체원들에게 오징어를 듬뿍 넣은 파전을 붙여 동사무소 회의실에서 회식을 겸한 단합대회를 하는 데 젊은 자율방범단의 회장이 나에게 뭐라고 속삭이고 갔다. 나는 아무도 흔들리지 말고 각자 맡은 대로만 하면 동장의 명예와 직책을 걸고 우승을 하겠노라고 선포했다. 이튿날 소문을 들은 소상인들은 10만 원이 든 봉투를 또 나보다 나이가 20세쯤 많은 피난민 할아버지사장, 내 삼촌부대에서는 20,30만 원짜리 봉투가 여남은 개 들어와 그 많은 경비를 씀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행사당일 동별로 행진을 벌이는데 나는 아직 제대로 걸을 수 없는 목발잡이라 사무장이 대신 행렬의 선두에 서고 나는 본부석에 앉아 나와 친한 구청직원 몇 몇과 미리 입을 맞추어 누가 봐도 남부민1동이 제일 준비를 많이 하고 아이디어가 톡톡 튄다고 구청직원이 아닌 구정자문변호사와 의회의원 두 외부 심사위원에게 남부민1동을 주입시켰다. 그리고 막상 행진이 벌어지자 충무동의 자갈치아지매 부대, 암남동의 언양어선 재현, 남부민3동의 충무공 거북선이 뜨고 남부민1동 순서가 되자 가장 행렬 물고기피켓과 <한국어업의 메카 공동어시장>플래카드, 깃발을 든 사람이 50명이 넘고 새벽부터 소주 한 잔을 좋게 걸친 공동어시장에서 생선을 분류하고 식품가공공장에서 배를 따는 아줌마까지 70, 80명의 오합지졸 대부대가 떠
“야 대단하다, 하마 승패는 끝이 나는가?”
하는 순간 커다란 반사판에 순전히 병뚜껑 몇 만개로 만든 “자원절약과 재활용이 우리의 살길!”이란 포터차가 등장하고 수십 명의 청년회과 방범대원들이 행진하자 그만 분위기는 남부민1동 일색으로 기울어졌다.
그리고는 시시껄렁한 운동회를 하면서 구청장이 18개 동 천막을 돌며 인사를 하고 술잔을 나누며 표들 다지는 동안 점점 어두운 그림자가 남부민1동을 엄습했다. 구청정이 앞에서 힐끗 한번 동장을 쳐다보고는 권하는 술잔도 뿌리치고 바로 이웃 동으로 가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전을 바꾸기로 하고 전 동민참석자를 불러
“우리는 공동어시장의 생선 배를 따고 먹고 살고 날마다 술에 절어 사는 <고깃배 따는 사람>이지만 단지 동장과 구청장의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또 연말에 퇴직하는 성실공무원 남부민3동장에게 위로의 뜻으로 대상을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렇게 경우가 없는 일을 벌이면 고깃배 따는 사람들의 새까만 얼굴과 뾰족한 칼날의 맛을 보아야 될 것이라는 끔직한 소문을 퍼뜨리며 전 동민들이 모두 떡이 되도록 술을 권하고 나도 흠뻑 마셨다. 실제로 술이 취해 고깃배를 따는 칼을 들고 헤헤 웃으며 행사장을 돌아다니는 주민이 속출하니 방송으로
“오늘 심사는 외부심사위원 중심으로 공정하게 할 테니 남부민1동장은 어서 취한 구민들을 다독거려 귀가 시키기 바랍니다.”
라는 방송이 다 나왔다.
그리고 폐회식 시상직장에 내가 등장해 우승트로피와 깃빌을 받는 순간 구청장이 이빨을 우두둑 갈더니 고개를 돌렸다. 나는 지금도 내가 왜 그렇게까지 지독하게 대응했는지 그게 진정한 내 모습인지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라나 당시 서구는 민선의 폐해로 그런 아수라장을 면치 못했고 죄 없이 떨려날지 모르는 동장을 구하려 전동민이 결사항전을 외친 것 같고 나도 모처럼 질기고 강건한 장수가 한 번 된 것 같다. 당시 구청장보다는 2등을 한 남부민3동장, 착한 공직선배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고. 아무튼 그리스 신화를 열심히 읽은 나는 모처럼 박카스축제의 난장판을 도입해 또 한 번 위기를 돌파한 것이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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