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시간과 공간의 얼개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 사는 대표 종(種)인 인간은 정신과 육체, 그러니까 혼백(魂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혼이 없으면 느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백이 없으면 그 생각과 느낌과 숨결과 감정과 지식까지 담아둘 수가 없습니다.
몸이 많이 아픈 저는 이제 약간의 감기몸살기운이나 근육통, 가벼운 설사나 복통이 나도 몸 전체의 균형이 무너져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고 머리에 열이 나고 가슴의 수술자리가 따끔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지니 이게 바로 혼이 떠나려는 건지, 아니면 백이 무너지려는 건지 겁이 더럭 납니다. 육신이 생각과 행동은 물론 감성과 글쓰기를 보장해주지 못해 오래 책상에 엎으려 있기도 하고 정신이 어지럽고 서글프며 자신감이 없어 앉고 일어서기가 다 귀찮아 자신에게 일어날지 모르는 혼백의 괴리, 즉 죽음을 예감하며 몸서리를 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왜 이렇게 평균수명 이전에 벌써 죽음 앞에 내 몰린지 되짚어보다 그 원인으로 지명되는 젊은 날의 폭음과 과로, 끝없는 좌절과 스트레스가 생각났습니다. 그럼 그러한 일들로 육신이 소진된 것이 혼(정신)의 잘못인지 백(육신)의 잘못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너무 뾰족한 감성, 나는 늘 가지지 못한 자로서 평생 무엇인가 쟁취해야 된다는 강박관념, 살아남기 위한 직장생활의 수많은 과로와 스트레스, 또 그걸 푸느라 엄청나게 마신 술이 그 원인인데 그 원인 하나하나는 과연 혼의 문제인지, 백의 문제인지를 따지다 우선 혼이 백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의 정을 생각해보기로 하였습니다.
내 영혼의 입장에서 육신을 바라본다면 제 피부가 검고 얼굴 윤곽이 전형적인 몽골리안으로 마치 표주박이나 진흙에 가벼운 칼금만 넣은 음각(陰刻)인형처럼 결코 미남이라 볼 수 없는 태생적인 부족이랄까 불만에서 출발됩니다.
그러나 그 무딘 육신은 아무거나 먹기만 하면 잘 소화시킨다든지 어디에든 머리만 땅에 대면 금방 잠이 든다든지 하는 가장 원초적인 장점을 지닌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학업과 농사를 병행하고 대학과 직장을 동시에 다니다 휴학을 해 그동안 꿈꿔온 소설가의 꿈을 버리고 술과 슬픔에 젖어 통제 되지 않는 삶, 때로 밥을 굶고 때로 밤을 새워 통음(痛飮)을 하는 그 혼의 방황을 백은 아무소리 없이 조용히 받아주고 숙취에서 일어난 아침에도 다시 휘파람소리가 싱싱한 젊은이로 만들어주었으니 성인이 된 후에는 백의 일방적인 희생을 바탕으로 혼이 어지러운 행보를 계속하며 육신을 학대한 셈이 됩니다.
그러다 40대 초반에 교통사고로 우측대퇴부 복합골절상을 입고 1년간이나 입원한 사건은 하마터면 제 생명이 사라질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한편으로는 그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제 영혼이 그 외형인 육신이 움직이지 못 하는 내부의 감옥에 갇히면서 지금껏 살아온 40여 년을 반추(反芻)하고 어떻게 앞으로의 삶을 영위할 건지를 따져보는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갑갑한 병상에서 푸념에 가까운 짧은 글들을 끄적거리다 엉뚱하게도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었고 퇴원 후 한쪽 다리가 많이 짧은 데다 무릎이 잘 구부러지지 않는 저는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도 문서기획을 주로 담당하는 기획계장으로 보직이 바뀌었는데 당시 긴급한 5급사무관 승진시험 제도의 변경으로 어부지리로 응시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아직도 한쪽 목발을 짚는 저는 이제 겨우 70일 남은 시험기간을 앞두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헌법과 행정법은 공무원교육원에서 이미 배운 과목이었지만 민법총칙과 지역개발론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험 40일을 앞두고 제 상관 기획실장의 배려로 서울법학원이라는 공무원시험 전문학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간 주로 많이 출제된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모의고사를 쳐보면 같이 간 3명의 동료들은 적당한 고과점수가 평균 90점대가 나오고(적당한 보직을 받아 시험공부만 5, 6년씩 했으므로) 저는 헌법, 행정법 60점, 헌법 40점, 민법총칙 20점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동료들은 몸도 아픈 병신이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본다면서 깔깔 웃었고 다른 학원생들도 다리를 절름거리는 목발장이로 검은 얼굴에 얼굴윤곽이랄 것도 없이 땟물이 졸졸 흐르는 몰골로 한 여름의 학원에 들랑거리는 나를 보고 도대체 어느 지방단체가 그렇게도 사람이 없어 저런 베트콩 같은 인간을 시험 치러 보냈냐고 힐끗힐끗 쳐다보며 조롱했습니다.
그렇건 말건 지난 한 해 병상에 누운 저에게 누님 넷이 차례로 고아먹인 개소주와 매밀 묵 또 달팽이엑기스로 1년이나 술을 끊고 간장을 쉬게 하고 위장을 코팅한 저는 아무리 술을 먹어도 뻗지 않은 금강불괴의 몸이 되어 40병 들이 진로소주 한 상자와 오징어 한 축을 사서 밤새 질금거리며 새벽까지 마시다 혼절하면 옆방에 경북예천에서 온 59세의 수험생이 꼭 제 사촌동생 같다면서 저를 깨워 아침을 먹이곤 했습니다. 그 때 생활이 얼마나 비참했으면 고시원에 와본 아내가 1평반도 안 되어 모로 누워 자야하고 땀 냄새 소주냄새가 진동하는 공간을 보며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더니 다시는 사무관이니 승진이나 출세를 이야기 않을 테니 그만 부산으로 가자고 목발을 잡고 울었습니다. 그래도 한 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는 법, 저는 다른 사람이 국한혼용에 영어가 섞인 교과서를 한 시간에 4, 5쪽 읽는데 비해 무려 30페이지를 읽어낼 수 있으니 입에 오징어를 달고 밤새 책을 읽어도 별 기억은 없는데 그게 시험문제로 나오면 귀신처럼 맞히는 거였습니다.
마침내 나도 세 과목은 90점대로, 민법총칙이 70점대로 모의고사에 성적이 나오자 동료 셋이서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저를 견제하는데 셋이 돌아가면서 저와 저녁에 술을 마시자고 하고 일요일엔 같이 고스톱을 치자며 공부를 못하게 하고 몸 성한 사람들이 이리 저리 도망쳐 술값도 제가 다 물어야 했는데 시험결과 그 넷 중에서 저 혼자 걸리고 셋은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이건 순전히 그 긴 폭음과 과로를 견뎌준 간장을 비롯한 육신의 뒷받침, 또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언어적 능력으로, 그러니까 혼백이 혼연일체가 되어 이룬 쾌거였습니다.(다음 회에 계속)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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