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노병은 죽지 않는다. 사라질 뿐이다

포토 에세이 제1083호(2020.9.3)

이득수 승인 2020.09.02 13:50 | 최종 수정 2020.09.02 16:44 의견 0
이제 술병도 술잔도 사라진 그와 나의 식탁

아직도 많이 비틀거리는 그를 보고 이 몸으로 왜 왔느냐 물으니 친구가 병든 소식을 듣고 도와주러왔다고 했다. 하긴 그 사이에 몸이 많이 회복되어 신불산 정도는 가볍게 등산도 한다면서 자기가 생산한 농작물 마, 야콘, 구지봉을 보내준 일도 있긴 있었다.

그래서 두 농업학교 동창이 무려 47년 만에 다시 농사꾼으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5분 이상도 삽질이 힘은 나를 위해 열무를 심을 땅을 파거나 고추 골을 파 비닐을 씌우고 나중 고추가 활착하자 지지대를 세우는 일 또 지지대에 고춧대를 끈으로 매는 일을 너무도 잘해 아내는 명섭씨만 나타나면 만세를 부르고  최상의 음식을 대접하려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다시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그렇게 몸을 함부로 쓰다 한 번 더 사고가 나면 영원히 못 고친다고 내가 말해도 지금 와서 좋은 시절 다 가고 유일한 재미 술로 세월을 보내는데 이제는 술을 끊기보다 이렇게 마시다 죽는 것이 낫다고 했다.

내가 발병하고 우리 집엔 아예 술병이 사라졌는데 아내가 가끔 오는 그를 위해 아예 소주상자를 사다 다용도실에 두고 그가 오면 반드시 돼지고기든 민물고기든 제대로 된 안주를 장만해서 술을 권했고 집에 도착하자 말자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비운 그는 점심을 먹고 참을 먹는 사이 기어이 소주 두 병을 바닥내고 일어섰는데 언양장날이 낀 날에는 다시 장에서도 미꾸리지 튀김으로 한잔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평일에도 너 집에 있느냐는 전화가 와서 친구는 어디 있냐고 물으니 간월산을 타고 내려오는 길이라 했다. 소재 확인을 겸해 술상준비를 시키는 셈인데 아내는 조금도 짜증을 내지 않고 마침 어떻게 해야 되나 망설이던 밭일을 둘이서 같이 해결하고 웃으면서 술을 권했다. 그 사이에 벌써 나의 두 누님과 장모님하고도 친해진 그는 간암에 엉겅퀴가 좋다는 말을 듣고 줄기를 조금 베어오더니 하루는 두 두님과 함께 엉겅퀴를 베자며 자기만 아는 산속으로 가니 얕은 공동묘지에 엉겅퀴가 지천으로 피어 기분이 좋아진 아내가

“아, 이만하면 살았다. 하느님 아버지 제 남편에게 이렇게 엉겅퀴 밭을 주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기도하기도 했다. 그래서 웅촌면에 있는 민물고기나 오리고기 집에 가서 식사도 하고 술도 먹는데 술을 너무 많이 먹는다 싶어 나는 늘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사람마다 식성이 다른지 그가 가자는 웅촌의 민물매운탕집이 내게는 별로 맞지 않고 언양장터의 미꾸라지 튀김도 전문가인 내가 먹어보고 

“이게 무슨 맛이냐 도대체 이런 걸 음식이라고 할 수나 있나?”

한숨을 쉬면서

“명섭아 니는 꼴도랑에서 미꾸라지도 잘 잡고 매운탕을 좋아 한다는 것이 다 엉터리로구나. 부잣집 막둥이로 그저 시늉이나 내는 거지.”

하자 평소 순한 성격답게 순순히 인정했다. 도무지 악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하루는 내가 통발로 그 귀한 버들치, 중태기를 가득 잡아 처음엔 매운탕을 끓여 수제비를 드문드문 넣고 점심을 먹이고 오후에는 아내가 도리뱅뱅이를 만들어 주자 평생 이런 맛은 처음이라며 소주를 세병이나 먹더니 문득 아내를 보고

“사모님, 천하일미를 요리해 주어 고맙습니다.”

하고 절을 한다는 것이 그대로 폭 고꾸라졌다.

언양농업고등학교 졸업식날 교정에서(오른쪽이 심명섭, 그 옆이 필자).

그래서 다음부터 사모님이랑 같이 오라고 해도 외손녀를 본다고 안 된다고 혼자서 오는데 우리 집에 농사일이 있든 없든 제 알아서 오면 아내가 상을 차리고 내가 술을 권하니 요즘 세상에 걱정 없이 하루 술을 마시는 곳이 친구 집밖에 없다고 했다. 사실 우리 집엔 아무도 술을 안 마셔 친구 아니면 술잔도 필요가 없는데 부디 건강히 자주 와서 알맞게 마시라고 보낸 게 지난여름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배추밭 비닐 덮을 때가 되었다고 온 그가 아내와 한 참 일을 하는 중에 요즘 노동이 불가능한 내가 달걀을 굽고 비피더스우유와 함께 술상을 차려 나갔을 때였다. 천하술꾼 명섭씨가 술를 안 먹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저도 당뇨가 심해 전에 몸무게가 자꾸 빠진다더니 이제 제법 큰 키에 60킬로그램이 안 나가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럼 내일부터 진짜 끊고 오늘까지만 먹으라고 해도 고개를 저었다. 친구를 보내고 나서 그날 우리는 냉장고와 다용도실의 술을 정리했다. 그동안 나는 술은 못 마셔도 친구들 술 권하고 술주정을 적당히 받아주는 재미를 누렸는데 이제 그마저 사라진 것이었다.

그가 휘적휘적 사광리를 내려간 날 우리 내외는 너무나 허전해서 아무 말도 않았다. 내 친구 명섭씨가 술을 다 끊다니, 칠순의 술꾼 하나가 몸이 나빠 술을 끊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수로울까만 나는 내가 즐기던 황홀한 취미 술, 그 술을 못 먹자 친구의 잔을 채워주며 그 황홀한 기분을 음미앴는데 이제 그마저 불가능해진 것이었고 우리 집 냉장고에 <대선>이니 <좋은데이>니 파란 소주병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노병은 죽는 것이 아니고 사라지는 것이다. 언제 다시 그 친구가  체중을 회복해 우리 집에 고춧대를 세우러 오고 아내가 신이 나서 민물고기 매운탕과 도리뱅뱅을 만드는 날을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 천구야 부디 건강해라.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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