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마초의 고향
포토 에세이 제1081호(2020.9.1)
이득수
승인
2020.08.31 17:22 | 최종 수정 2020.08.3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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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을 먹고 빈 그릇을 개수대에 담고 돌아설 때입니다. 김치냉장고 위에 놓인 간식들 틈에서 본래 열다섯 개의 바나나가 달렸지만 하나씩 다 떼어먹고 이제 딱 두개 남은 바나나가 그 어미격인 자루(柄)와 함께 나동그라진 모습을 발견하고 뭔가 감이 왔습니다. 모두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아 둘은 죽고 다섯은 모두 결혼해 제 갈 길을 가고 텅 빈 집에 18세의 막내 제 아우와 둘이 살다 마침 휴가를 간 저까지 두 아들의 밥상을 차려주고 흐뭇하게 웃던 우리 어머니, 이마에 주름이 조글조글한 모습 말입니다. 그 해가 환갑이었지만 가난한 시골할머니의 환갑을 어느 자식 하나 거론하거나 챙겨주지 않아 특별한 회갑상도 못 받아본 우리 어머니...
그래서 금방 포토 에세이용 사진을 찍으려 휴대폰을 가지려가다 문득 그 옆에 물 컵이 있는 것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당뇨와 진통제를 비롯한 아침 약을 먹고 식탁으로 갔는데 아, 그 사이에 평소 바나나를 잘 먹지도 않는 아내가 그날따라 무슨 마음이 내키어 단 두 개뿐인 바나나를 하나 먹어버려 간신히 하나 남은 바나나, 그러니까 휴가온 저마저 귀대하고 5, 6년 세상물정에 어두운 노모와 수줍음이 많아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않는 고독한 제 아우(진수)가 보낸 그 기막힌 세월로 굳어진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바로 손위였지만 제 살기가 바빠 단 한 번도 챙겨주지 못해 지금도 만나면 가슴이 저립니다. 그런 제 아우와 어머니 둘이 남은 모습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날 오후였습니다. 모처럼 지하뜰의 제 수호신 서어나무를 만나러 간다고 산책을 나섰다가 갈림길에서 마초가 제가 태어나서 우리 집에 올 때까지 자란 제 생가(生家) 쪽으로 가는 지라 아침의 바나나가 생각난 제가 말없이 반려견 마초의 안내를 따라 요새는 거의 비어 있는 마초네 친정집을 찾았습니다.
마초가 태어나던 5년 전 그 집은 나이 80이 넘은 교회집사님이 자식들을 다 객지로 보내고 영감도 죽고 없어 혼자 살았는데 간암말기가 되어 도저히 통증을 참을 수 없어 강소주를 마시기 시작한 게 중독이 되어 주일날에도 소주냄새를 푹푹 풍기며 예배를 보았지만 원로집사라 그냥 넘어갔는데 예배가 끝나면 신도들의 점심 잔반(殘飯)을 챙겨와 자신의 분신인 늙고 검은 암캐와 줄줄이 태어나는 강아지를 먹였답니다.
처음 등말리로 집을 지어 들어가 적적하기도 하지만 밤이 좀 으스스해 누님에게 부탁을 하자 이튿날 노란 수캉아지 한 마리를 데려다 준 게 바로 우리마초입니다.
그런지 얼마 안 되어 마침내 마초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빈집이 되자 울산에서 부동산을 하던 장남이 가끔 와서 집안을 돌보다 일 년에 두 번씩, 한 번에 꼭 열두 마리씩(젖꼭지수가 열둘임) 도합 24마리의 새끼를 낳는 마초어미를 어디 보냈는지 이후로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2019년 어느 늦봄에 고래뜰로 산책을 하다 마초의 생가를 지나니 마침 그때 어미가 나타나 마초와 서로 킁킁 냄새를 맡아 모자의 정을 나누더니 제가 사진을 찍어주고 길을 나서니 이미 출가외인이 된 마초는 아무 미련 없이 저를 따라왔습니다. 아마도 할머니의 큰 아들이 시골집에 돌아와 사는 모양으로 당시에도 마초의 어미는 어김없이 또 열두 마리의 새끼를 낳아 키우던 처지라 비록 집을 나간 자식 중에 처음으로 찾아오긴 했지만 이미 오래 전에 남남이 된 마초, 갓 태어난 열두 마리 강아지의 큰형인 마초에 더 이상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집 입구에 서있는 겹 벚꽃 꽃잎이 바람에 흩어진 골목에서 어미를 만나 서로 냄새를 맡아보는 모자의 모습이 보기 좋아 그 사진을 늘 신경 써 간직해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침에 바나나를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 어쩌면 마초가 어미를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참 희한하게 몇 년 동안 보이지 않던 마초어미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늙어 새끼를 낳지 않는지 매번 축 늘어졌던 젖꼭지가 올라붙어 단정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자식인지 마초보다 키는 좀 크지만 강아지 태가 역력한 수놈 하나와 이제 겨우 젖을 뗀 정도의 크기이지만 저도 수놈이라고 조그만 고추를 당당히 매단 조막만한 강아지를 챙기느라 그런지 마초도 마초의 어미도 그 오랜만의 상봉에 어떤 변화도 없이 서로 한번 쳐다 보고는 가까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마초모자가 같이 있는 사진을 찍어보지 못 하고 동생도 한참 동생격인 두 강아지와 어울린 마초의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리고 고래뜰을 가로질러 건너오는데 왠지 서러운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마초의 어미로서야 적어도 200마리 넘게 낳은 강아지 중에 유일하게 엄마를 찾아온 마초지만 그새 낳은 새 강아지를 돌보느라 따로 챙길 형편이 안 되는 모양이었겠지요. 그러나 어린 나이에 뒷짐 삽살개 <장군이>에게 물려 대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몇 백 만원 치료비와 손해보험이 나온 대한민국 제일 비싼 똥개 마초, 결코 순탄하지 않은 생애를 살지만 다행히 몽상적 백두옹 저를 만나 그 나이 되도록 다섯 번이나 초복중복말복을 무사히 넘긴 아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장하기도 하련만 피차 말 못하는 짐승이라 아들도 하소연을 않고 어미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이 탈 많고 사연 많은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105세가 되는데 둘째 아들인 제가 이렇게 심한 병에 걸린 걸 아신다면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어 말입니다.
(어머니, 부디 편안히 계시옵소서...)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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