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아름다운 정자(亭子), 곱지 못한 전설(傳說)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78호(2020.8.29)

이득수 승인 2020.08.28 14:57 | 최종 수정 2020.08.28 21:24 의견 0
 가장 아름다운 정각 능산리 동래정씨 정려각

모처럼 눈이 번쩍 띄다 못해 시원해질 아름다운 제실, 주변 마을 주민들이 <능산마실정각>이라고 부르는 상북면 향산리 국도면 산모롱이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신녕현감문화류씨 해지의 처, 동래정씨 정려비>를 보존하는 아름답고 짜임새 있는 제각(祭閣)의 차분한 모습과 제각 뒤에 자리 잡은 두 그루의 미출미출 둥치도 고운 진분홍 꽃 타래들이 선경처럼 곱고 그 뒤쪽으로 언제나 차분하고 푸른 기상의 솔숲, 그리고 아스라이 돌아가는 산모롱이, 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어느 대가가 그린 동양화의 밑그림 같기도 하고 좌우대칭과 원근법의 교과서처럼 너무나 주변경관과 잘 어울려 가끔 옛사람의 정절을 기리고 제사를 지내는 제각으로는 과분한 정도로 아름답다고 지나가는 걸음이 있으면 한번 들려보시라고 제 포토에세이집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에 실리기도 했던 정각을 한 번 더 올립니다.

저 정각을 세운 의미는 옛날 신녕(경북영천의 소읍)현감을 지낸 문화류씨 해지라는 사람이 죽자 젊고 고운 아내 부인 동래정씨가 남편의 죽음을 너무나 애통하게 생각해 3년이나 시묘(侍墓)살이를 하는데 그 부인의 살성이 너무나 희고 고와 엉뚱하게 주변인 언양현은 물론 이웃 울산, 경주, 청도, 밀양, 양산의 왈패사내들이 물물이 들이닥쳐 부인의 아름다운 용모를 찬탄하다 더러 접촉을 시도하는 무뢰배들이 속출해 더 이상 시묘살이를 못 살 지경이 되자 어느 날 뒷산(아마 고헌산인 듯)의 호랑이가 나타나 시묘살이 3년이 끝나도록 부인을 지켜주어 무사히 아내의 도리를 다 했다는 전설이 내려 오는데 이 역시 <울주군지>와 <상북면지>에도 수록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이 아름다운 정각에 아로새겨진 너무나 장하고 정숙한 열부(烈婦)의 절개와 희생이 어딘가  마뜩찮고 어색한 느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명촌리에도 있는 일반의 열녀각처럼 한 선비의 미망인이 병든 시부모를 지성으로 모시고 수많은 시가형제들에게도 최선을 다한 데다 남편이 병이 들어 지성으로 간호하다 못해 자신의 머리를 잘라 약제를 구해왔다든지, 허벅지의 살점을 베어 먹여 기적적으로 쾌차를 했다든지, 아니면 그렇게 죽은 남편을 위해 3년간의 시묘살이를 하는 것은 물론 자식을 앞세운 연로한 시부모를 지성으로 모시고 어린 시동생 시누이를 잘 훈육해 시집장가를 보내는 것은 물론 그 자손 중에서 유수한 벼슬아치나 충신, 또는 열녀나 효자가 나왔다는 상식적이고 고답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는 시묘사는 상주를 해치려는 산짐승인 호랑이를 이웃의 사내, 건장한 문중의 사내가 보호하는 스토리, 그래서 시가의 가문을 빛내고 친정까지 뼈대가 있고 양반소리를 듣는 보통의 열녀각 이야기와 정반대의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속내를 잘 모르는 우리들은 첫째 그 미망인 동래정씨의 미모가 너무 눈부시게 뛰어나 세상의 모든 사내들이 한번 보기만 하면 가슴에 쌍방망이질이 일어나고 오금이 저려 좀체 벗어날 수 없는 여성적 매력을 가졌기 때문에, 이미 남편이 죽어 산중과일처럼 누구에게 예속된 사람이 아닌 만큼 어떻게 접근하든 일단 말을 붙이고 다음 손을 잡아 그게 정상적인 교접이든, 야합(野合)이든, 강제추행이든 간에 일단 남녀상열지사를 치르고 나면 마치 보쌈이라도 하는 원리로 그 사내가 사는 먼 곳으로 가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머슴이나 홀애비의 입장에서 가장 쉽게 몽달귀신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정려각 안의 동래정씨 위패

그런데 제가 여기서 말하자는 이야기는 유교적 이념으로서는 감히 남의 아내를 넘보는 인종의 말종으로서, 또 부녀를 겁간하려는 흉악하고 못난 사내로서 당연히 지탄받아야 할 그 무덤가를 서성이다 호랑이에게 혼이 난 사내들이 사실은 아무런 죄가 없이 오로지 조선이란 유교의 나라, 대부분의 여자를 나으리와 사대부가 모조리 차지해버리고 상민은 제 때에 배필을 만나 중매장이 앞세워 사주단자와 택일 같은 혼서(婚書)를 을 주고받기는커녕 좀체 장가가기가 힘든 판에 그 보다도 더 신분이 떨어지는 머슴이나 남의 집 노비는 전회에 기술한 28세에 결혼한 제 아버지나 쉰이 넘어도 여자천신(결혼)을 못해 치렁치렁 머리를 땋고 다니다 어느 달 밝은 가을에 용당수나 푸렁바우 푸른 물결에 몸을 던지거나 얼마 전 시집간 주인집 딸 갑순이를 못잊어 머슴살이 초당방 횃대에 목을 매어 생을 마감한 사람이 비일비재한 실정이었다고 하니 그 아름다운 동래정씨의 시묘살이를 흘낏거린 사내들이 처음부터 부랑하고 사나운 사람들이 아니라 오로지 능력 없는 머슴이나 종, 보부상이나 남사당패 또는 심산의 숯쟁이처럼 남녀의 만남 자체가 너무 힘이 들어 그 성의 교감, 성희의 기회가 하늘의 별따기인 실정, 그러니까 만백성의 어버이이자 주인임을 자처하는 양반과 벼슬아치 지방관이 너무나 많은 여인들을 가로채 버려 어떤 여자는 명색의 남편이 있어도 남편 얼굴을 구경하기 힘든 생과부가 되고 힘없는 사내들은 여자를 접할 기회가 너무 적어 쉰이 넘도록 홀아비로 살다 목을 매는 그런 사회적 모순이며 왕과 벼슬아치들의 잘못이고 죄업이지 그 불쌍한 사내, 무단히 남의 아내를 배회하다 호랑이에게 혼쭐이 나고 마는 그 불쌍한 최하층 사내들이 기본행복권, 여자를 접할 권리를 누가 보장해야 되는지(다산 정약용에 따르면 날씨가 가물어 흉년이 지거나 풍속이 어지러운 것은 모두 왕과 목민관(牧民官)인 수령방백의 백성을 보살핌이 너무 소홀해 환부고독, 사회적 약자, 특히 외로움과 자격지심이 심한 이들과 혼기를 놓친 노처녀, 노총각의 한이 맺혀 일어나는 하늘의 징벌이라 하니 지금도 보수니, 진보니 공허한 패거리를 지어 사사건건 마주보고 멱살을 잡고 시비를 거는 저 여의도의 양복장이들이 이 절경의 정각에 와서 한번쯤 반성해 볼 일인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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