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한반도의 정치적 시대 구분과 영화(榮華)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74호 2020.8.25)

이득수 승인 2020.08.24 14:07 | 최종 수정 2020.08.24 14:56 의견 0

반만 년 전 석달 열흘 쑥과 마늘을 먹은 곰이 웅녀로 환생하고 상제 환인의 아들 환웅을 맞아 단군왕검(檀君王儉)을 낳으면서 신시를 열어 도읍을 삼고 활 잘 쏘는 동쪽 오랑캐(동이(東夷)무리로 정치집단을 이루어 이 땅에 터를 잡은 단군의 백성들은

저 중원의 한 족 황제(黃帝)의 백성에 조금도 밀리지 않고 꿋꿋하게 한반도를 지켜온 고조선(기자조선, 위만조선)과 주변의 소국인 부여, 옥저, 동예, 숙신이 어우러져 북부여라는 또 하나의 강국이 일어나고 그 북부여를 뿌리로 역대로 가장 넓은 강토와 강인한 군사력을 가진 고구려가 한반도은 물론 만주와 중원을 호령하고 그 형제 국 백제가 한강가의 기름진 들과 금강의 아름다운 산하를 점(占)하여 비옥한 땅이 베푼 넉넉한 소출을 아름다운 예술혼으로 꽃 피우는 사이 

한반도의 변방으로 늘 왜의 침탈에 시달리던 소국 사로국(애초 부족연합체인 신라의 국명)이 박·석·김의 3성이 번갈아 왕을 맡는 건강한 혼혈과 잡종강세의 골품적(성골, 진골) 우월감과 자부심에 가득 차

호국불교의 확립과 충효와 명예의 절대가치를 정립한 화랑도의 이념 세속오계(世俗五戒), 또 전원참여, 전원찬성으로 이루어지는 민주적 의사결정 화백(和伯)제도의 확립으로 국력을 비축,
마침내 인근 한반도는 물론 고대 극동의 철기문화를 이끈 철의 나라 가야를 병합하고 김춘추일당의 굴욕주적인 사대주의 외교로 한반도의 정체성 따위는 헌 신짝처럼 던져버리고 오로지 강자인 당에 붙어 그 군사적 지원으로 한반도의 라이벌인 고구려와 백제를 병합하는 국소지향적, 이기적 선택으로 이제 한반도를 동맹국이 아닌 자신들의 점령지로 생각하는 당과 기나긴 나당전쟁을 벌여 기어이 당나라의 원정대장이자 고구려, 백제패망의 원흉인 소정방의 세력을 김유신의 무리가 영주, 예천 소백산 아래에서 목을 벤 뒤 한반도는 비로소 통일신라라는 하나의 독립국으로 우뚝 섰으나 그렇게 외세에 의해 이룩된 삼국통일은  

선사시대 동아시아의 인종 분포(왼쪽). 남색이 퉁구스족(왼쪽). 삼국시대  초기 고구려-신라-백제와 가야 지역 분포. 고구려가 3국을 통일해 퉁구스족의 땅이 우리 한(韓) 민족의 땅이 되었으면...

첫째, 배달민족이 살아가는 강토이자 역사의 무대를 평양 이남의 한반도 중남부로 한정시키고 그 열 배가 넘은 고조선과 북부여, 고구려가 지켜온 저 넒은 만주와 중원을 포기한 채 달팽이처럼 한반도의 뚜껑 속으로 잠복해버린 소국 신라가 되어 반도의 남단으로 웅크리게 되는 퇴영(退嬰)적 영토축소를 가져왔고  

둘째, 같은 언어와 풍습, 같은 조상과 혈통을 가진 3국의 백성들이 똑 같은 정서로 서로 마음이 통하고 통혼을 함에 스스럼이 없이 단지 정치적, 외형적 통일(統一)이 아닌 그 내부적 정서적 일체감으로 하나 되는 삼국일통(三國一通)을 이루지 못한 이 삼국통일이야 말로 우리 민족사의 가장 큰 실패이자 되돌릴 수 없는 참사였음을 아직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사자 국민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반만년역사의 옹졸한 통치자들과 주변의 어용(御用) 사학자(史學者)들이 단지 눈앞의 평화와 안일과 탄탄대로인 자기 밥그릇과 기득권을 지키려 이 불편한 진실을 파헤쳐 백성에게 알리고 그 옛날 조상님들이 말을 달리고 씨를 뿌리던 저 광활한 중원을 찾기는커녕 그저 자신을 둘러싼  정치집단의 안전과 안락을 위해 전전긍긍을 하다 마침내 지구유일의 분단국가로 남게 되고 만 것입니다.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우리 한민족이 흘러온 역사 한반도와 그 북부 만주와 중원을 호령하던 정치세력을 열거해보면

1. 고복격양(鼓腹擊壤), 농사를 지어 배를 불리고 샘을 파 물을 마시니 아무런 부족함이 없어 배를 두드리며 태평성대와 왕의 다스림을 찬양하던 소박한 왕국, 단군의 천부경 81자에 홍익인간의 소박한 이념과 이웃사랑이 넘치는 평온한 날, 어진 배성으로 이어온 3천년 고조선의 태평성대와

2. 대륙정벌의 꿈을 가진 상무의 고구려와 풍족한 식량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는 반도 서남의 백제, 반도 동남의 협소한 신라가 삼국정립의 형세로(사실은 강국 고구려가 주원의 여러 오랑캐를 막아주는 커다란 보호망아래서) 무려 700년을 밀고 당긴 삼국시절과

3. 외교에 먼저 눈을 뜬 동남단의 소국 신라 김춘추일당이 편 사대주의 대당외교와 파병지원으로 마침내 이룬 삼국통일(사실은 영토절반이상을 잃고 반도의 남단에 웅크린)로 서양의 로마와 함께 유2한 천년왕국을 이어오며 세련된 불교문화, 귀족문화로 마침내 화랑도정신을 가맣게 잊은 늙고 병든 나라가 되어 한갓 반역자의 무리에 불과한 송악의 왕건의 무리(고려)에게 귀부한 이 기막힌 역사적 퇴보와 굴욕

4. 비록 기존의 천년왕국 신라의 실정에 편승해 봉기했지만 왕건이란 젊은 지도자의 부드럽고 넉넉한 인품에 여러 호족과 정략적인 통혼으로 중앙과 지방의 세력이 묘하게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한반도에서 가장 평화로운 역사, 남녀평등과 자유연애, 호국불교의 향기 속에 예술적 인간적으로 가장 발안온한 평화, 고려가사의 <청산에 살으리랏다>의 꿈을 이룬 해동성국 고려가 뒤를 잇고 

이득수

5.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세계최강 몽고의 내습과 식민통치 98년, 문약한 의종의 문신우대로 칼날을 애초주인인 왕에게 돌려 무시무시한 무인정치 100년을 이끌어오며 속속들이 골병이 든 고려를

강 건너 여진의 세력과 손을 잡은 함경도의 토착세력 이성계의 무리에게 마침내 왕좌와 국토를 양위한 공양왕의 뒤를 이어 공평한 토지제도와 건전한 유교이념을 국시로 했으나 단 한 번의 태평성대(적어도 100년 이상)도 없이 왜와 청에 휘둘리다 마지막엔 쇄국의 감옥에 갇혀 퇴폐한 사무라이 낭인들에게 국모 명성왕후를 잃고 마침내 국권마저 잃은 조선

6. 그 어두운 36년의 암흑기를 겪고 외세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했지만 분열과 반목으로 단 한 번의 민족단결을 이루지 못 하고 분단국가가 되었으나 여전히 친북이니 친미니 근시안적인 정권다툼으로 눈이 먼 역대대통령과 썩은 관리들로 지구유일의 분단국가로 자책감마저 잊고 당면의 부와 권력에 도취한 대한민국의 75년 역사의

6개의 큰 흐름으로 시대를 구분할 수 있으며 비록 도토리 키 재기이지만 어느 왕조가 가장 행복한 나라였나를 생각해보면 그래도 가장 자유롭고 평화로운 고려시대를 들 수가 있겠습니다.
<시인·소설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