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가장 위선적인 유교국 조선과 성의 착취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75호(2020. 8. 26)
 

이득수 승인 2020.08.25 16:35 | 최종 수정 2020.08.25 17:25 의견 0
한반도마저도 일부가 날아간 역대 최소면적 통일신라의 영토

그럼 그렇게 6개의 시간대로 구분했던 한반도의 정권 중에서 가장 위선적이며 불공평과 폐단이 많은 시대는 어느 나리일까요?

그 정답은 가장 건전한 유교적 명분으로 창업한 배불숭유의 조선이라면 모두들 참담한 심정일 것입니다. 조선이야 말로 삼국시대이후 가장 넓은 국토인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무궁화 피는 삼천리강산의 강건한 나라, 왜와 청의 침입이 있어 말할 수 없는 곤궁한 처지에 몰려도 군신과 백성이 혼연일치로 단결하여 이를 극복하고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문자인 저 찬란한 훈민정음, 한글이 창제되어 어린(어리석은) 만백성이 서로 그 뜻하는 바, 자유의사를 소통한 그 위대한 왕국이 그렇게 참담한 나라인 최악의 나라로 몰렸으니까요?

그러나 그 불편한 현실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로 조선왕조 500년은 명목상으로는 아무런 하지가 없이 가장 완벽한 도덕관인 충효사상과 사단(四端, 측은, 겸양, 시비, 수오지심) 그러니까 늘 이웃과 남을 측은히 여기고 겸양의 자세로 양보하며 그 시시비비를 따져 경우가 아닌 일을 삼가하고 염치와 체면을 중히 여게 절대로 수치스런 일을 않는 참으로 완벽한 도덕관으로 출범한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조선을 그 거창한 유교적 명분을 참으로 잘 실천하여 만백성이 만족하는 풍족한 나라를 이룩한 것일까요? 정답은 단 한마디로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의 유교이념은 당시 너무 문란한 불교, 요승신돈이 왕비 노국공주를 잃고 공황상태에 빠진 공민왕에게 반혼(返魂)술로 왕비를 만나게 해준다는 사술(邪術)로 접근, 졸지에 권력이 중심이 되어 종이호랑이 공민왕을 대신해 정치일면에 나선 교활한 여우가 됨으로서 신진사대부의 미움을 사 암흑기 몽고의 지배를 피한 강화도천도와 무인정권의 어둡던 시절에 싹튼 일부무인의 사병의 횡포화 사찰의 과도한 토지점유 등의 부조리를 시정하기 위해 애초에는 신돈이, 다음에는 효웅 이성계가 시도한 참으로 난감하고 정답이 없는 토지제도를 포은 정몽주에 버금가는 대 휴학자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을 모사로 삼아 개국의 기틀을 갖춘 것까지는 좋았으나 무자비한 권력에의 야망과 살인취미에 동기간을 살육하기를 서슴지 않는 사실상 조선의 개국자 이 방원이 한갓 한가한 유교의 잔소리와 푸념으로 유혈혁명에 방해가 되는 아비의 공신이자 자신의 스승인 정도전을 무자비하게 살해해 건국이념이 살해되고 무력의 생사와 피의 숙청으로 이루어진 거죽만 유교이지 내용의 전부가 살륙(殺戮)의 광기로 가득 찬 조선왕조를 개국한 데서 출발합니다.

조선의 두 설계자 정도전(이념)과 이방원(폭력)
조선의 두 설계자 정도전(왼쪽, 위키피디아)과 이방원(유튜브/EBS)

그래서 허울 좋은 충효와 사단을 내세워 표면상으로 더 없는 인품과 윤리로 포장한 조선왕조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그토록 원했던 백성의 국가, 백성들이 잘 사는 나라를 이루기는커녕 고루한 선비집단이 의심 많고 광기에 넘치는 이씨 성(姓) 가진 군주들을 충동질해 일으킨 4번의 사화(무오, 갑자, 을사, 기묘)를 통해 조광조 등 진정한 선비와 충신에 학자를 모조리 척살해도 모자라 부관참시도 서슴지 않은 사색당파의 기나긴 갈등 속에 왕조의 대부분을 침몰시켰으니 처음부터 통치이념이나 봉사가 아닌 상대방 반대세력을 척살하는 폭력적 정의에서 무슨 선정이 베풀어질 수가 없는 것이었지요. 

아예 처음부처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백성에겐 숨 쉴 틈도 주지 않는 성균관과 대사헌, 대사관의 강압적이고 비효율적인 국가통제와 골육상쟁의 핏방울에서 태어난 이씨왕조의 태생적인 결함, 살인의 광기(태종, 세조), 호색과 방탕(연산군, 광해군), 의심(疑心)암귀에 사로잡혀 친자를 뒤주에 감금하고 굶겨죽이기를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영조의 폭정으로 500년 내내 학정을 일삼은 이 패륜의 유교국 조선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가장 괴팍하고 음학(淫虐)한 왕조 조선에서 가장 폐단이 심한 분야, 그 피해를 당한 계층은 어디일까요?

그건 바로 여성과 노예계층에 대한 양반 또는 사대부들이 벌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성의 착취 또는 압제입니다. 바로 전 왕조 불교국 고려가 남녀평등으로 친정부모의 재산까지 공평하게 나누고 자유연애와 이혼 재결합에 귀책사유를 묻지 않고 자유롭게 이혼하고 또 재결합을 하는 진정한 남녀평등, 즉 왕에서 상민이나 노비에 이르기까지 <머루랑 다래랑 먹고 사는> 고려가사 <청산에 살으리랏다>의 진정한 행복을 누린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루한 유교의 이념으로 건설한 조선은 그 정점인 왕과 사대부들로 이루어진 극히 소수의 집단에 권력이 집중되고 전국에 5백병이 넘는 숫자의 목민관(왕명의 하달과 백성의 생업은 물론 죄인의 형벌까지 움켜 쥔 <작은 임금> 그 수많은 수령방백(守令方伯)과 그들을 둘러싼 행정의 실무자이기 보다는 아부와 수탈의 도구인 6방관속(아전)의 폐단이 극에 달해 그가 3공6경의 고관이든 조그만 시골마을의 현령이나 현감이던 또 조그만 방어진지의 말단 장수이든 그들은 그 관할의 모든 부는 물론 관기를 비롯한 노비와 비첩에 이르는 하층계급의 여인들을 마치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 온갖 퇴폐를 서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벼슬살이에 나간 선비는 물론 한갓 변방의 쇠락한 양반으로 타락한 향반(鄕班)에 토반(土班), 잔반(殘班)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부리는 노비와 노비의 딸이 조금이라도 여인의 자태를 갖추는 열대여섯 시절 마치 그걸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름도 성도 잘 없이 삼월이, 오월이, 언년이로 불리는 제 집식구를 함부로 집적여 아이를 가지면 애민 종놈과 짝을 지어 주고 그렇게 태어난 제 자식을 종모법(從母法)이란 구실로 노예로 부려 그 많은 농토를 경작케 하여 남의 인격과 정조를 마음대로 짓밟는 행패를 자행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가장 완벽한 이념 유교로 개국한 조선이야말로 가장 음학한 나라, 가장 많이 여성, 특히 그 성(性)을 압제하고 착취한 졸렬한 나라인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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