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장맛비가 남긴 선물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76호(2020.8.27)

이득수 승인 2020.08.26 20:36 | 최종 수정 2020.08.26 21:00 의견 0

 

백일홍

무려 두 달간이나 지속된 올해의 장마는 기상관측 이후 두 번째로 긴 장마였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요즘은 날씨마저 변덕이 심한 거짓말쟁이에 폭력적인 지도자(트럼프와 시진핑, 아베와 푸틴, 김정은)들을 닮은 듯 언제 어떻게 쏟아질지 모르는 게릴라성 폭우가 되어 기습적으로 전국에 물 폭탄을 안긴 것입니다. 거기다 인류 최대의 위기로 기록될 코로나19의 만연으로 세계경제가 얼어붙고 시장골목과 식당가에 사람구경을 하기 힘든 이 허전하고 막막한 여름 최악의 겅기에 직장과 시장이 다들 문을 닫아 취직은커녕 아르바이트 자리마저도 없이 전 국민이 두 달 이상 수몰이 되었으니 그 심사가 얼마나 괴로울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반야심경에 유시유종이란 말이 있듯이 장마가 있으면 그 끄트머리 천고마비의 가을도 오기 마련, 폭우와 비바람이 그치고 3, 4일 볕이 드는 사이 우리집화단의 잔뜩 위축된 화초들이 하나둘 힘을 차리며 마치 숨어 피는 야생화처럼 살그머니 꽃송이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꽃들마저 긴 장마에 의기소침해졌는지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숫자가 줄어들고 꽃잎도 오그라졌다는 점입니다. 하도 장마가 길어 제철이 다 지나가도록 꽃을 피울까 말까 망설이다 그나마 여름이 후딱 사라질까봐 <맛보기>보이듯 아주 작고 드문 꽃송이를 피운 것 같습니다.

사진 첫번 째는 백일홍이라는 꽃인데 보통 20송이씩 피는 꽃이 딱 하나만 피어 가운데 노란 꽃술과 함께 참으로 은은하고 의젓한 미모를 연출했으나 그 긴 장마와 비바람에 꽃잎이 일부 손상되어 두 곳이나 뜯겨나간 모양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천일홍

두 번째는 진자줏빛 꽃은 <천일홍>이라는 꽃으로 비교적 오랜 시간 피는 꽃인데 오롱조롱 수십 개씩 피던 알사탕 모양의 꽃송이가 불과 서너 개로 줄어들고 크기도 안타까울 정도로 작습니다.

다음눈 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운 주홍색과 노란색으로 아롱진 메리골드라는 꽃입니다. 이 꽃은 가을화단의 대표종으로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통 심을 넣은 백작부인의 치마처럼 한 포기의 폭이 근 1m나 되고 꽃송이는 수백을 넘어 은하수를 연상시킬 정도인데 올해는 딱 한 송이 마치 마네의 그림 <피리 부는 소년>의 모자처럼 그 앙증맞고 깜찍하여 오히려 요염함이 절묘하게 압축된 것 같습니다.
 

메리골드
패랭이꽃

그 밖에 하얀 서양패랭이꽃도 수입화초의 특성인 무성함과 풍성함이 생략되어 한층 아름답고 호젓한 느낌을 풍깁니다.

오늘 장마 끝의 작은 미인들을 소개하는 날인만큼 마지막으로 천일홍에 앉은 호랑나비의 동영상을 올리오니 모처럼 화려한 꽃의 바다 풍덩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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