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동양의 나폴리, 송도 앞바다의 우수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69호(2020.8.20)

이득수 승인 2020.08.19 13:17 | 최종 수정 2020.08.19 14:18 의견 0
DroneFilm 드론필름
드론으로 찍은 송도해수욕장 전경 [유튜브 / DroneFilm 드론필름]

근래 꿈과 환상의 테마로 새로운 위락시설, 편의시설을 대거 설치, 한국전쟁 중 북에서 온 피난민들의 막막한 가슴을 달래며 자유당시절 충남의 유성온천과 함께 신혼여행지의 양대축을 이룬 부산의 송도해수욕장은 <갈매기의 고향>이라는 노래에 <봄가을 동래온천, 여름 한 절 송도라>에 알려질 만큼 한때 한국의 대표적 유원지였다.
 
그러나 부산서구에서 직접 <문화담당과장>을 지내며 문화재를 발굴하고 바다축제를 개발하는데 젊음을 보낸 내가 생각하기에 송도는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 항 보다 몇 배나 아름다운 절경, 사람이 개발한 인공이 아니라 신이 창조한 천품(天稟)의 아름다움을 갖춘 조그만 어향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귀한동포와 피난민의 쓰리고 아린 가슴을 품어 새로운 향수의 바다가 되고 서울로 외국으로 나간 수많은 예술가와 사업가가 꿈에 그리는 내 고국 사철 동백꽃이 피는 따스한 바닷가이기도 하고...

그 송도의 출발은 1876년 치욕적인 강화도협정으로 남해안의 세 항구, 부산포, 염포(울산), 제포(마산)가 일인에 의해 강제개항 될 때 그들이 가장 욕심을 낸 항구로 그들은 부산을 중심으로 경부선 철길을 닦아 조선의 쌀과 자원을 수탈하고 그 연장선으로 압록강철교를 넘어 대륙을 석권하려고 했다. 그래서 군국주의 일본의 대륙침공의 교두보가 된 부산은 영도다리양안을 중심으로 자갈치와 영도 대교동의 상업과 선박단지, 시청과 중앙동 배후로 한 업무단지, 도청과 부산형무소가 있고 수많은 학교와 주택가로 그 뒤를 바치는 대신동주택가라는 3곳의 큰 중심축을 구축했다. 

그리고 밀물처럼 밀려오는 낭인(눈에 핏발이 선 사무라이)일부는 만주침략의 앞잡이로 보내고 조선수탈의 본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만들어 최초의 측량사업을 벌려 주인이 분명하지 않은 모든 국공유지는 물론 사찰림, 하천부지와 사유지를 모조리 수탈하여 거대한 농장을 설치운영 하고 방어진고래어장을 비롯한 한국의 수자원을 수탈하는 전진기지로 부산을 가꾸면서 그 거친 사무라이의 말초적 욕구를 달래기 위해 완월동과 초장동에 사창가를 짓고 1913년 부산에서 경치가 가장 좋은 송도에 한국최초의 해수욕장을 연 것이 바로 송도해수욕장이었다.

그렇게 1세기 넘게 항구부산의 숨구멍이 된 송도는 일인들의 요정과 유곽을 겸해 일제당시 일인과 그 추종자들의 에덴이 되었고 해방 후에는 밀물처럼 밀려온 귀국동포와 전쟁피난민들이 가까운 아미동, 남부민동의 산기슭 남의 무덤의 비석을 들어내고 판잣집을 살던 시절, 그래도 가끔 그 새파란 송도바다의 손바닥처럼 오목한 경관에서 아득한 향수를 달랬지만 사람이 끓게 되면서 송도는 어느 새 횟 값이 가장 비싸 바가지를 씌우는 해수욕장으로 오명을 뒤집어 쓴데다 몇 번의 태풍을 맞아 백사장이 좁아지고 다이빙대와 케이블카가 날아가 관광객들이 외면한 버려진 해수욕장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기껏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송해선생, 멋장이 앙드레김이 피난시절을 떠올리는 향수의 바다가 되고 가수 정훈희가 성장한 그리운 바다, 여류시인 강은교가 전성기를 보낸 시심의 바다가 되기도 했다.

또 송도에는 옛날에 매우 희귀한 관광자원인 출렁다리와 케이블카, 다이빙대가 있었고 가장 유명한 것은 배위에 천막을 씌우고 사공과 손님 사이에 커튼을 쳐 술과 음식을 싣고 배를 탄 연인들이 자연스레 스킨 쉽을 하게 만든 포장유선이었지만 그건 형편이 좀 돌아가는 커플의 이야기고 가난한 젊은이들은 카누처럼 생긴 바나나보트로 만족해야 되었지만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울려 한국최고의 유원지와 신혼여행지로  한 시절을 풍미했다. 그리고 지금의 미니골프 비슷한 게임도 유명했다고 한다.

DroneFilm 드론필름
송도해수욕장 쪽에서 본 남항 묘박지[유튜브 / DroneFilm 드론필름]

그러나 송도해수욕장을 논하려면 나는 가장 먼저 비오는 송도앞바다의 그 맬랑콜리한 우수를 빼고 이야기를 전개할 수가 없다. 세계적으로 가장 복잡한 어항 자갈치에서 아래로는 생선냄새 폴폴 풍기는 공동어시장과 위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남부민동 판자촌을 지나 조그만 고개하나를 넘어서면 문득 펼쳐지는 저 새파란 송도 바다, 송도는 임해행정센터를 중심 중심으로 동서로 1사장과 2사장으로 펼쳐진 좁은 해수욕장과 송림공원과 암남공원으로 오목하게 둘러싼 V자의 자연경관이 섬뜩하도록 뛰어나고 밤에 횟집과 여관의 간판에서 번지는 푸르고 붉은 빛이 물위에 떠 출렁거리는 모습을 보면 동쪽으로 저 먼 제2송도와 태종대, 서쪽으로 원양어선의 대합실이 묘박장을 지나 저먼 남해바다로 나아가는 장군산 기슭이 둘러싼 또 하나의 커다란 V자를 발견할 수가 있다. 낮에 보면 동양의 나폴리 통영을 넘어서고 밤에 보면 진짜 나폴리나 시드니, 리오데자네이루 세계 3대 미항을 넘어선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많은 송도의 매력과 특징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먼 바다를 내다보는 외로움과 우울, 그러니까 멜랑콜리함이다. 우선 거북섬이나 백사장 쪽에서 저 앞의 큰 바다로 나아가는 모퉁이에 복점처럼 살짝 붙어있는 조그만 동섬을 바라보면 세상에 외로움과 그리움이 무언지 어쩌면 세상의 슬픔은 저렇게 오똑한 외로움일 것 같고 그립고 서러운 눈물방울도 마치 저 동그란 동섬을 닮은 것이라는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어느 책에선가 부산 구호병원을 세우고 일생을 피난민과 영세민을 위해 살다간 장기려 박사(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동양의 페스탈로찌)와 함께 송도에서 피난시절을 보낸 한국제일의 서양화가 김환기가 몇 십 년이 지나 파리에 유학을 할 때 비 내리는 송도바다의 우수를 잊지 못해 자주 엽서를 보내왔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세계의 초일류화가이자 파리지앵이 다 되었을 화가가 날마다 몽마르뜨언덕에 오르고 에펠탑과 개선문을 지나 상제리제거리나 센 강을 걸어도 고국의 조그만 항구 송도를 끝끝내 못 잊었던 것 같다. (내일은 가장 멜랑콜리한 강은교 시인을 소개합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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