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봉선화 연정'과 '봉숭아학당'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63호(2020.8.14)

이득수 승인 2020.08.13 17:22 | 최종 수정 2020.08.13 17:46 의견 0
'봉선와 연정'을 부르는 가수 현철 [유튜브 / Vernet Angel]

같은 봉선화를 제재로 가사를 쓴 노래지만 현철이 부른 대중가요 <봉선화 연정>은 홍난파의 <울밑에 선 봉선화>, 김상옥의 시조 <봉선화>에 나오는 가난하고 애련한 민족의 정서, 가엾은 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사춘기의 남녀 여럿이가 언덕이나 나무 밑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하거나 중년의 사내들이 나이트클럽에서 취하도록 마시고 여기저기 마구 들이대는 광경이 눈에 선 하다. 

홍난파와 김상옥이 그렇게 애련하게 노래한 꽃이 어쩌다 단번에 그렇게 타락을 한 시정(市井), 그러니까 장바닥이나 논두렁의 노래가 된 것일까?

뭐 특별히 어렵게 뭘 탐색할 필요도 없다 우선 가사의 첫 머리가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사랑 봉선화라 부를 래

하고 수준은 낮고 단순하지만 눈에 선한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모습을 선연히 보여주어 중년의 남녀가 그 노래를 듣는다면 누구랄 것도 없이 남자는 그렇게 봉선화가 씨앗을 터뜨릴 것 같이 경박하지만 건강한 사랑으로 제 가까운 곳의 여자에게 아무 의심 없이 들이밀고 그런 대시를 받은 여성 역시 매우 흔쾌하고 만족하며 마주 보고 춤을 추는 것 같은 분위기인 것이다. 어느 봄날의 유원지나 늦은 오후 처음 가로등이 들어올 때의 고속도로휴게소에 어리는 묘하게도 편안하고 가볍고 은근하게 누벼나가는 가장 원초적이고 통속적인 정의 물결 같은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봉선화연정>은 가난하지만 젊은 남녀, 가진 것은 젊음 밖에 없지만 늘 건강하고 건전한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다가가고 조용히 받아들이는 꽤 오래 된 사랑, 옛날 앵두나무 우물가를 떠날까 말까 망설이던 <이쁜이와 금순이>를 늘 흘낏거리기만 하던 시골총각 삼돌이와 복돌이가 마침내 보따리를 사들고 떠나려는 전날 밤에 봉숭아는 물론 맨드라미가 가득 핀 우물가에서 오래 만류하며 자신과 더불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저 건너 보리밭을 바라보는 그런 눈길과 분위기가 눈에 선한 것이다.

만약 그 노래제목이 <봉선화 연정>이 아니고 <봉숭아 연정>이라면 얼마나 더 살갑고 그윽하며 짙은 청춘의 향기가 풍길 것만 같은 생각이 문득 치민다. 민족가요와 시조에는 점잖은 한자말 <봉선화>에 이름을 뺏기더라도 대중가요에 만은 순 한글 <봉숭아>로 쓰지 못한 것이 몹시 아쉬운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재미있게 한번 웃고 넘어갈 것은 <봉선화 연정>을 부르는 현철의 달달 뜨는 목소리이다. 내가 아는 현철은 김해 대저면 울만리의 넓은 밭 가운데 상납청이란 이상한 이름을 가진 뜰(일제 때 쌀을 왜에 모아 보낸 곳이라고 들었음), 조그만 모래톱의 도도리란 섬에서 주로 정구지를 심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농부의 아들로 1970년대 우리가 부산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양정로터리에서 수영 방향의 조그만 지하실을 빌려 <현철과 벌떼들>이란 이름을 걸고 노래도 하고 술도 파는 조그만 맥주홀을 경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치 <변강쇠>를 연상시키는 땅땅한 몸매에 동그란 얼굴과 주먹 같은 코로 짙은 경상도 사투리로 어딘가 좀은 어색하고 생경한 목소리로 아무 아줌마에게 멘트를 날리며 고요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 운운의 <사랑은 나비인가 봐>와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사랑 봉선화라 부르리>의 너무나 단순무식하며 눈에 선한 광경을 그야말로 입술에 침 한번 묻히지 않고 단숨에 유장하게 뽑아버리는 광경에 그 전까지 나훈아, 남진이나 조용필 같은 엄청난 내공을 가진 대형가수와 달리 나이트클럽에서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가수 함부로 현철아, 이름 부르며 연호할 수 있는 가수로 중년부인을 중심으로 한 팬들에 둘러싸이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연령층이 지금 80대 중반의 우리 장모님과 70대 후반 우리 누님의 나이층이다.
 (에이, 저 것도 뭐 노래라고? 가사나 발성이 뭐 하나 도무지 신선한 게 없어. 그러고도 인기가 폭발하는 것을 보면 우리 국민은 개인이 아닌 군중으로서 성격이 더 고약하고 기발난 것인지도 모른다.)

봉수아꽃. 꽃이 진 줄기에는 씨앗들이 달려 있다.

젊은 날 나는 늘 처음부터 달달 뜨는 현철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저 친구는 저렇게 맨날 달달 떨다 끝이야!” 하고 웃다 <몰래한 사랑>의 김지애란 가수가 나와 또한 명이 달달 뜰자, 
(아 그 달달 뜨는 목소리도 하나의 성향이나 밥벌이의 도구가 될 수 있구나.)
하고 그만 픽 웃고 말았다.)
 
그런데 여러분, 10말일이 되면 우리국민은 모두 그날 밤은 이용의 <잊어진 계절>을 반드시 불러야만 하는 것처럼 모두들 열광하는데 이용 외에 수많은 가수가 그 노래에 도전해도 다 들을 만 한데 단지 한 사람 현철이 부르는 <잊어진 계절>은 절대로 듣지 않기 바랍니다. 그 기막힌 소감은 오로지 그 노래를 들어봐야 느끼기 마련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떨기만 하다 단 한 번도 올라가지도 못하고 떨쳐내지도 못한 노래, 그것도 이 시대 정상급 트롯가수의 엉뚱한 발성법이 한참이나 사람을 황당하고 서글프다는 만들다니 말입니다.

참으로 엉뚱한 이야기로 결말을 맺어 좀 뭣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런 앞에 나온 세 곡의 봉선화 노래보다 봉숭아란 제목이 가장 잘 어울린 경우가 KBS의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봉숭아학당>입니다. 그 요란하고 시끄럽고 철없고 엉뚱한 이야기로 웃고 떠들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의 젊은이들, 수많은 젊은이들이 잘 사는 나라의 행운열차를 타고 의사와 판검사와 스타의 길로 나아갈 때 겨우 토요일 저녁 <개그콘서트>하나에 온갖 시름 다 날리며 잘 사는 우리경제의 맨 아래에서 발발 기던 지금의 평범한 60, 70대, 그들이 바로 조국 근대화의 기수이며 그들이야 말로 민족의 꽃 봉숭아와 다름없으며 그들의 숨소리와 노래와 애환을 잘 표현하면 그게 가장 아름다운 민족의 시와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민족의 꽃 봉숭아이지만 사전만 펴면 어차피 이래도 봉선화  저래도 봉선화이겠지만 최소한 현철의 <봉선화 연정>은 우리의 순 한글 <봉숭아 연정>이었더라면 참 좋았다는 이야기로 3일간의 <봉숭아타령>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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