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직박구리, 작은 악마의 죽음

포토 에세이 통산 1067호(2020.8.18)

이득수 승인 2020.08.17 21:47 | 최종 수정 2020.08.17 21:54 의견 0
죽은 직박구리, 목덜미의 무늬가 생각보다 은은함.
죽은 직박구리, 목덜미의 무늬가 생각보다 은은함.

사진에 보이는 새가 우리 명촌별서 최대의 말썽꾸러기이자 밉상 <직박구리>입니다. 옛날 우리가 국민하교에 다닐 때 장맛비 내리는 들판의 전봇대에 비비비비 매우 음울한 목소리의 <비비새>가 운다, 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저는 고향을 떠나 귀향하기 전 45년 동안 그 음울한 비비새가 바로 저 직박구리일 것이라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습니다.

크기가 비둘기보다 조금 작지만 통통하게 살이 찌지 못 하고 늘 빼빼마른 느낌이 나는 긴 동체, 평소 검은 색 바탕의 날개와 등에서 날씨가 맑은 날이라야 간혹 아주 옅은 청회색 또는 갈색의 느낌이 풍기는 저 <직박구리>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새가 운다, 새가 노래한다, 새가 지저귀다, 따위의 작고 귀여운 새, 가볍게 저 하늘 아득히 날아가는 새라는 산뜻하거나 다정한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는 이상한 새로 그 울음마저도 삐이-, 삐이- 한두 음절 외마디소리처럼 빼다 마니 검은 옷차림이나 목소리나 무엇 하나 이쁜 구석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저 조그맣고 볼품없는 새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과점종(寡占種), 그러니까 가장 개체수가 많은 생태계의 대표종이란 점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본래 우리 국민들이 가족처럼 좋아하는 까지, 울기만 해도 반가운 손님이나 소식이 온다는 길조 까치(사실는 경계심이 심해 번식 철에 자기가 알을 낳은 둥지 근처에 사람이 접근하지 말라고 그렇게 집요하게 운다고 합니다.), 흑백 단색의 디자인이 너무나 산뜻하고 예뻐 우체국의 마크가 된 그 민족의 새를 비롯하여 사촌격인 까마귀가 있고 또 같은 종에서 분리되어 각각 마을과 산을, 도시와 숲을 대표하는 새가 된 비둘기와 멧비둘기, 또 꿩이나 참새, 오목눈이, 뱁새 같은 토종 새가 10종이 넘고 덩치로 보면 까막까치나 꿩이 가장 장대하여 이 땅의 공중을 지배하는 과점종이라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도시의 뒷골목이나 달동네, 산과 인접한 변두리동네에서 인근의 체육공원이나 절에 오르다 보면 어디랄 것도 없이 저 어두운 복장에 목소리까지 우울한 새가 출몰하며 민가주변의 곡식은 물론 비닐봉투에 담긴 음식물종류까지 찢어 발개 아무렇게나 먹고 어지럽혀 거의 무법자에 가까운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산 서구청에서 전국 최로로 송도해안볼레길에 대한 관광안내서 <송도해안볼레길 스토리텔링집>를 낼 때 이미 정년퇴직을 하고 민간위탁 집필자가 된 제가 여러 경로로 서구의 동식물의 식생을 조사하다 저 못 생기고 우울한 직박구리가 과점종, 그러니까 서구를 대표하는 민선구청장이나 시의원 또는 국회의원쯤이 되는 새라는 사실을 알고 아연실색을 했는데 나중 고향 명촌리에 돌아오니 이곳 역시 마을주변과 숲, 특히 참깨나 토마토, 옥수수 같은 부드럽고 고소한 곡식이 심어진 곳은 그야말로 직박구리의 천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조그만 새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아무것이나 잘 먹는 잡식성에 본성이 당돌하고 겁이 없어 함부로 민간에 출몰하며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예사로 가장 크고 붉은 토마토를 주둥이로 찔러 물고(物故)를 낸다든지, 마초는 물론 도둑고양이까지 바라보는 중인환시(衆人環視)리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마초의 밥, 개 사료를 처음부터 제 것인 양 아주 당당하게 먹는 것입니다.

거기다 시도 때도 없이 마치 저승사자나 물에 빠진 사람이 부르는 소리 같은 삐이- 삐이- 하는 불쾌를 넘어 끔찍한 목소리로 우는데다 아침에 일어나 아직 해가 뜨지 전에 집필을 시작한 제 서재 앞 오동나무가지에 앉아 <저 머리가 하얀 영감님은 새벽부터 무얼 하는지 바라보다 문득 눈길을 돌린 저와 마주치면 삐이익!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달아나 나의 분신이자 수호신인 마초에게 여러 번 혼쭐을 내라고 명령해도 단 한 번도 응징하지 못 한 날렵하고도 얄미운 놈입니다.

직박구리가 매번 구멍을 뚫기 마련인 가장 크고 붉은 토마토
직박구리가 매번 구멍을 뚫기 마련인 가장 크고 붉은 토마토

그런데 그렇게 알뜰하게 미운정이 박힌 놈이 오늘 아침 문득 죽어 베란다에 팽개쳐진 것입니다. 문득 윤동주의 <죽어가는 모든 생명들을 사랑해야지.>라는 싯귀가 생각나 한참이나 들여다보니 그간 저 혼자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킁킁거리던 마초가 블루베이와 불랙베리, 옥수수와 토마토에 구멍을 낸다고 여러 번 자신만 혼이 난 그 애물단지가 아무 반항도 없이 무방비로 드러누운 걸 보고 한참 냄새를 맡더니 이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무심하게 눈길을 돌려버린 것입니다.

(아하, 그 얄미운 직박구리의 실체가 바로 이런 모양이었나? 검은 프록코트 아래로 빛깔도 예쁜 꽃무늬 넥타이나 와이셔츠를 입은 것 같은 모습, 전에는 한번도 상상을 못했던 은은한 물방울무늬의 셔츠에 저 녀석이 저렇게도 아름다운 새였나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의 모든 꽃과 여자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많은 개체가 하나하나 특별한 외모와 향기와 이미지를 가졌다고 하던 말이 떠오르며 직박구리도 일단은 새인 만큼 참으로 아름다운 속옷, 속 날개를 가진 새라는 생각에 새삼 그 돌연한 죽음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한동안 새벽마다 서재 밖 오동나에서 집필하는 나를 지켜보는 새까만 동체 직박구리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뭔가 부족하면 어디선가 채워지고 넘쳐나면 절로 정리되는 자연생태계의 원리, 언젠가 그리 머잖은 장래인 올해 추석이나 가을 쯤 다시 명촌별서에 삐익, 삐익 직박구리가 우는 소리가 들리고 창밖의 오동나무에 앉아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는 직박구리 한 쌍 쯤을 만날 날이 올지 모릅니다. 윤동주의 시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일,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사랑하고 보듬는 일이 바로 이 공기 좋은 푸른 숲에 살아가는 제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인 것 같았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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