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비오니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62호(2020.8.13)

이득수 승인 2020.08.12 20:04 | 최종 수정 2020.08.12 20:31 의견 0
자줏빛이 은은히 감도는 봉숭아꽃
자줏빛이 은은히 감도는 봉숭아꽃(왼쪽)과 붉은 봉숭아꽃

아마 내 나이 쉰둘쯤 되었을 때, 부산시 서구문화관광과장으로 각종 축제 활성화와 문화재 발굴, 서구노래 제정 등 바야흐로 르네상스를 맞은 부산서구의 문화첨병인 내게 젊어 같이 조기축구회를 했던 7살 많은 조기축구회 형님의 전화가 왔다. 평소 별로 말이 없이 과묵한 편으로 미장원을 하는 나이 젊은 아내와 노모를 모시고 연산토터리에서 넉넉하게 잘 살았지만 당시 거제도의 조선소에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집안 전체가 현찰로 가득한 집으로 소문나 사업이 어려운 소규모 건설업자들에게 <어음와리깡>을 하면서 마침내 돈벌이에 눈을 떠 <연산강강>이라는 커다란 야간업소를 운영하는 사람, 그야말로 복마전을 헤엄치는 사람이지만 평소 별 말도 없고 술이나 음식도 별로 입에 대지 않고 혼자 조용히 지내는 사람인었는데 단 하나의 특징이랄까 장점이 젊어서부터 내가 쓴 시를 엄청 좋아해 당시까지 내가 낸 시집 4권의 내용을 달달 외우다시피하며 마치 친동생을 대하듯 나를 볼 때마다 연산로터리의 각종 맛있는 집에서 술과 음식을 대접해 예사로 <형님, 동생>으로 부르며 지낸 사람이었다.

그날 내가 여직원이 돌려주는 전화를 받자 말자

“봐라, 동생, 오늘 비가 오니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옛날 학교에서 배운 시(詩)인가 시조(時調)인가가 갑자기 생각이 나는데 도무지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가 없네. 내 갑자기 그 봉선화 생각이 우리 누님들 생각으로 겹쳐 참을 수가 없으니 그 시가 어디에 나오고 어떻게 끝나는지 찾아서 저녁에 연락 좀 주게.“

안부고 뭐고 없이 소대장이 분대장에게 작전명령하달 하듯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지만 내 자신이 그 거친 조기축구회 사람들 틈에서 평소에 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내 시집이 나오면 제법 많은 책값을 주고 시인은 가난한 게 부끄럽지 않지만 그렇다고 굶어서는 안 된다고 자주 음식을 하고 용돈을 주는 그 <형님>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한편 나는 어릴 적 소설가를 지망하면서 또 하나의 문학장를 시조(時調)를 좋아해 고등학교 때 경남 일대의 백일장의 시조부에 출전했으며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아마 유일한) 시조집인 가람 이병기와 제자 이태극이 펴낸 <한국현대시조선총>이란 책이 있어 표지가 너덜너덜할 정도로 수십 독을 반복하며 특히 경북청도의 이호우, 이영도남매의 낙동강 강물에 비친 은비늘처럼 고아한 시조, 삼천포사람 박재삼의 기러기 날개에 서리서리 절은 서러운 정서와 따뜻하고 반듯하면서 끝없는 해맑은 여운으로 아무리 두레박으로 퍼 올려도 끝이 나지 않은 샘물 같은 초정 김상옥의 시조를 제일 좋아했는데 바로 그 <봉선화>가 초정선생의 시조인 것이었다.

그래서 어렵잖게 실마리를 찾아 시조 3련짜지 시조 전체를 꿰맞춘다고 끙끙거리자 눈치 빠르고 영리한 권윤서란 서무 아가씨가 단번에 인터넷에 검색해서 한 장으로 된 <봉선화>를 출력해주었다.

나이가 좀 들어가면서 더는 나에게 절창의 시가 나올 것 같지 않음을 예감하면서 시골에 들어온 이후 나는 우리나라를 대표할 시인이 과연 누구일까 곰곰 생각해보는 일이 많은데 아무래도 고려시대의 정지상, 정서 두 사람이 서정성이 제일 짙고 그 삶이 애련한 시인의 삶을 살고 간 것 같고 연암 박지원, 김시습 같은 사람은 그 정신력과 내재된 신공이 세속을 초월한 것 같지만 일단 현대시로 넘어와 북의 소월, 남의 영랑에 바통을 넘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 보통 남도라고 하는 영호남지역의 대표시인으로 경주의 박목월과 고창의 서정주를 들 수 도 있겠지만 둘 다 그 행적에 시인답지 못한 점도 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경상도 시인은 평생 술과 바둑으로 살다간 시조시인 박재삼과 또 예항 통영에서 태어나 윤이상, 김춘수 같은 당대 제일의 예술가와 같이 동문수학하면서 자라나 일생을 아주 평범한 인쇄공 또는 식자공으로 살면서 주옥같은 시조를 남긴 김상옥을 가장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너무나 쉽게 동네 형이 준 과업을 달성하니 나처럼 누님이 넷이나 되는 형님이 그날 너무 기뻐하며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사준 일이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사족을 달자면 내가 44세 남부민1동장이 되었을 때 <골목대장7형제계>가 자기들이 뽑지 않고 정부에서 뽑은 행정사무관동장이 너무 싫어 내가 외근을 가면 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온갖 농담을 하다 내가 돌아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애를 먹여 마침내 내가 선전포고를 하고 모조리 잘라버린 일이 있었다. 그 일로 마음이 상한 7형제의 대표이자 구의원이 경찰간부 하나를 매수해 나를 철저히 괴롭히며 비리를 조사하는 식으로 괴롭혔는데 초정 김상옥의 몇 촌 동생이라는 김원홍이라는 80세가 다 된 양초공장사장이 <동 새마을문고회장>으로 있으면서 그 사실을 알고 경찰청에 근무하는 자기 조카를 통해 못된 경찰관을 혼내고 다음 선거 때 구의원도 동장에게 협조적인 사람으로 바꾼 기억이 난다. 맑고 깨끗한 인상이 마치 평생 식자공으로 살아도 늘 은은한 향기가 풍기는 깔끔한 외모와 시조를 써온 초정 김상옥과 너무 닮아 이미 고인이 된 두 사람을 생각하니 오늘 새삼 눈시울이 뜨겁다. 

초정 김상옥[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맑은 눈빛 고귀한 영혼, 그리고 아름다운 시를 쓴 초정 선생님과 아우 김원홍님, 밝고 빛나는 나라에서 모름지기 그윽이 잘 지내시기를... 시조를 올립니다.

 

봉선화 / 김상옥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나.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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