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송도바다 송해 선생2

포토 에세이 통산 1060호(2020.8.11)

이득수 승인 2020.08.10 14:38 | 최종 수정 2020.08.10 14:56 의견 0

평소 허리디스크가 심해 허리도 얼굴도 좀체 못펴지만 그래도 행정공무원의 꽃 <사무관>이 되기 위해 오만상을 다 찌푸리고 나서는 담당계장과 머리가 허옇게 센 과장인 나는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퇴직 직전의 빼빼 마른 광고물계장까지 동원해 송해 선생이 한창 리허설 중인 전북정읍시민체육관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송해 선생님을 내일 촬영분의 리허설을 한다고 도무지 만날 수가 없었다. 그레도 끝까지 기다리면 잠깐 화장실에 가는 시간에라도 만날 거리고 기다렸는데 오후 내내 계속된 리허설은 끝이 보이지 않고 80대의 노익장은 화장실 한 번을 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관계자를 만나 이런 저런 사연으로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해도 허허 웃었다. 전국노래자랑의 개최여부는 오로지 사회자 송해 선생에 의해 결정되는지라 날마다 전국 지자체에서 와서 줄을 서도 단 한 번 특별히 만나준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이 무의미한 것을 깨달은 내가  행정수첩을 찢어
“송해 선생님, 저는 8년 전 부산송도해수욕장에서 선생님을 대접하다 초장에 뻗은 기획계장 이득수입니다. 이제 사무관이 되어 <문화관광과장>을 맡고 있는데 이번에 바뀐 구청장이 일욕심도 남다르지만 성격도 불같은데 이번에 전국노래자랑을 유치하지 못하면 과장자리를 내 놓고 동장으로 나가라고 합니다. 한 번만 더 신경을 쓰시어 불쌍한 월급쟁이를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비뚤비뚤 휘갈겨 쓴 쪽지를 맡기고 돌아와 호랑이 구청장에게 보고도 못하고 쩔쩔 매는데 서울의 KBS본부에서 전화가 오기를

"아니 과장님은 어떻게 송해 선생님을 설득했는지, 송해 선생님이 연말 내로 반드시 한 번 해주겠다고 하며 날짜가 잡혀 연락하면 준비는 그전대로 하고 송도바닷가 거북섬에도 오후 네 시에 소주 좀 넉넉히 자실 친구 셋쯤 나오라고 합디다." 하는 게 아닌가.

며칠 뒤 촬영날짜가 정해지자 리허설 전날에 송해 선생이 송도로 직접 찾아올 송해 선생님 맞이 팀으로 우리는 부산시 공무원 중에 으뜸으로 꼽히는 술꾼 부구청장(나이가 나보다 몇 살 적은 40대 후반)에 그 역시 술 잘 한다고 소문이 난 문화담장 직원 정병진 씨를 동원했다.

술이 몇 순배 돈 뒤 담당 정병진 씨가 수첩을 꺼내 송해 선생님 앞에 펴고
“선생님, 지금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우리어머님이 송해 선생님 팬입니다. 송해 오빠 한 번 만나는 게 평생소원인데 여기 싸인을 좀 해주시면 저로서는 더 이상의 효도가 없겠습니다.”
하니 아주 흔쾌하게 껄껄 웃으며 싸인을 하고 어서 어머니가 쾌차하기 빈다고 했다.  이어서 내가
“선생님, 대한민국에 바다가 몇군 덴 줄 압니까?”
“그야, 동해, 서해, 남해 셋이지, 황해는 정식 명칭이 아니고.”
“아닙니다. 동해, 서해 남해에 송해까지 넷입니다. 이제 선생님은 전 국민의 송해바다가 되었습니다.”
하니 또 껄껄 웃으며 소주를 재워주었다. 그날 다섯 명이 근 서른 병을 마셨지만 뻗는 사람이 없이 자리를 마쳤다.
 

송해 선생의 <전국노래자랑> 오프닝.

노래자랑은 대 성공을 했는데 하나의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당시 내 네 번째 시집 <비오는 날의 연가>가 부산에서 인기가 있어 kbs 아침마당에 우리 부부가 출연하고 <여섯 시 내 고향>에도 항구도시 부산에 시를 쓰는 동장님이자 과장인 나를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찍어 평소 나를 잘 아는 촬영기사가 구청장 스냅사진은 형식적으로 한 두 번 찍고 담당과장인 나를 스무 번도 더 촬영해 나중에 간부들이 회의실에서 모여 시사회를 하는데 구청장의 얼굴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과연 상관에게는 아부, 동료에게는 질투, 자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밀고를 서슴지 않는 몇 명의 또래 사무관들이 구청장과 술을 마실 때마다 집요하게 나를 공격해 나는 그 사건으로 결국 구청장을 무시하고 제가 잘난 척하는 건방진 공무원으로 몰리고 인사이동 때마다 한직으로 몰려 죽을 고생을 하고 승진도 세 번이나 밀렸다. 초 경쟁 민선시대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도 이루어지지 않는 복마전인 것이다. 그렇게 독하게 굴던 동료들이 몇몇은 끝내 더 이상 승진도 못하고 일찍 병이 들어 죽기도 하면서 말이다.

아무튼 나는 피난지 서구의 송도바다를 사랑하는 역시 실향민인 자그마한 개그맨 송해, 그 작은 몸매로 전 국민의 시름을 풀어주는 송해 선생님의 고임을 받고 술자리를 두 번이나 갖는 영광을 누렸다. 인덕이 없기로 유명한 나로서는 정말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일, 20세도 더 위인 그 분이 지금도 노래자랑을 진행하고 <가요무대>에 나와 노래를 하는 것을 보면 몸이 부실한 나는 가슴이 미어진다.

“감사합니다. 송해 선생님. 부디 오래오래 사세요.”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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