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술꾼의 출발지 충무동 육교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54호(2020.8.5)

이득수 승인 2020.08.04 17:29 | 최종 수정 2020.08.04 18:26 의견 0
안녕하세요 Seoul Walker
부산 남포동 야시장 풍경 [유튜브 / Seoul Walker]

전회에 부산이 전국적으로 술이 가장 당기는 도시이고 충무동이 그 중심이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 충무동의 술의 출발선은 어디쯤이 될까?

나는 이 순간 부산에 좀 오래 산 사람들은 충무동 육교를 떠올려보기를 원한다. 일제가 개발한 부산시내는 국제사정, 자갈치, 남포동의 상가지대와 중앙동에서 초량에 이르는 해운업의 중심이 한 축이 되었고 도청과 법원 검찰청에 수많은 학교가 있는 서구(부자동네 대신동이라 통칭됨)가 또 하나의 중심이었는데 그 두 축의 연결지점이 바로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던 토성동 재건센터건물이었는데 이를 중심으로 드넓은 경남지역의 버스망이 연결되고 남부민동 청과시장, 새벽시장, 충무동 해안시장에 자갈치의 생선위판장과 곰장어등 향토음식 판매장에 건어물시장을 거쳐 영도다리와 옛시청을 돌아 광복로와 국제시장, 깡통시장, 용두산공원을 거쳐 보수동 헌책방과 검정다리 방석집까지 항구도시의 모든 특성을 갖춘 상가지대가 동그랗게 에워싸고 특이하게 국제시장과 보수동의 방석집, 완월동의 사창가, 초장동의 요정, 남포동의 오락실과 맥주홀에 이르도록 술과 환락의 공간도 빠짐없이 갖추었다. 

옛날 재건센터 뒤쪽의 5000원짜리 밥집과 돼지국밥집이 즐비한 골목을 빠져 충무동로터리에 이르는 육교가 부산서구청과 한전부산지점의 셀러리맨들이 하룻밤의 회포를 풀어 시내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충무동육교는 그 길이가 엄청 길어 한가운데 쯤 걸어가면 육교전체가 휘청거리가도 했는데 다리를 건너면 르누아르의 <책읽는 소녀>가 그려진 2층 책가게를 뒤로하여 극장, 술집, 식당이 끝없이 이어져 시청앞까지 남포동 유흥가를 이루었고 그 뒤 광복로에는 값싼 먹자골목과 포목상 뒤쪽의 방석집, 용두산 공원아래 고등어로 만든 <고갈비집>애 몇 십 년 전통의 오뎅집도 있었다. 

또 남포동으로 지나가면 재래시장에 붙은 횟집, 대게집은 물론 자갈치회센터와 신동아회센터의 거대한 횟집센터가 2곳이나 있었고 부산의 명물인 곰장어구이집과 좀 뒤에 나온 바다장어 아나고구이집에 고래고기집이 즐비했고 해녀들이 직접잡아온 멍게와 해삼을 파는 어촌계술집과 대한민국 회문화의 메카인 거대한 자갈치회센터에 서너 마리 생선을 구워 소주도 마시고 저녁도 먹는 집도 여럿 있었으며 영도다리 바로 아래 낙동강수위측정소방파제 앞에는 몇 종류의 생선을 구워 소주를 파는 <뚱보아줌마집>도 두 곳이나 있었다.

가는 바람에도 휘청 거리는 충무동 육교에서 남서쪽으론 눈을 돌리며 울긋불긋 채송화꽃밭처럼 백열등이 붉게 핀 초장동 남부민동 달동네가 펼쳐지고 그 아래로 완월동의 환락가가 쇼윈도우에 색색의 한복을 입은 여자들을 전시했고 공동어시장앞 방파제의 은색 등대가 영도의 붉은 등대를 마주보는 지점까지 방파제를 따라 노점형태의 횟집이 번성한 적도 있고 사회기강확립을 위해 자정이 넘으면 술을 못 파던 시절 송도한진매립지의 <잠정허용구역>이라는 막가파 식의 술집촌이 밤새 불야성을 이루기도 하고 송도고개를 넘으면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송도해수욕장에 바가지를 심하게 씌운다고 알려진 횟집들과 <송도갈매기로>불리는 소규모사창가에 한때 전국제일의 신혼여행지가 최고의 모텔가로 변해 역시 은근히 술맛을 당기게 하는 것이었다.

그 충무동 육교에 서면 아무리 심지가 굳고 지독한 사람이라도 왠지 마음이 허랑하고 한잔 술이 당기기 마련이었다. 각자 술친구와 호주머니 사정에 따라 적당히 한잔씩을 마시고 극장가를 가로 지르는 피파거리를 걸으면 여기저기 술집과 포장마차에서 흘러나오는 파아란 불빛과 술 취한 목소리에 절로 걸음이 휘청거리며 골똘히 상념에 젖는데 커다란 영사기와 기다란 필름의 조형물이 상징하는 영화의 거리에는 세계적 스타들의 핸드프린팅이 줄을 지어 취객을 반겼지만 아무리 극장골목을 다녀도 단 한편의 영화를 보지 않은 가난한 술꾼들은 화려한 핸드프린팅 대신 제 때 묻은 손금을 바라보며 다시 충무동 육교를 건너와서 아직도 뭔가 아쉬우면 서구청 바로 앞 육교아래 삼각형으로 생긴 한 3,40평의 올망졸망한 포장마차에서 또 다시 소주병을 따는 것이었다. 

그 술꾼의 출발점 충무동 육교를 나는 20년 넘게 밤마다 넘어 다닌 셈인데 그 때 지은 시 한편을 올린다.

충무동 陸橋가 / 이득수

밤안개 젖어오면 흐린 밤이면
충무동 육교가를 서성거린다.

祝祭도 끝나고 필름도 멎은
피프廣場 포장마차 不夜城 되면
흐린 하늘 스크린에 리어카 뮤직
이 거리의 사람모두 主人公 되어 
남루한 삶 한 컷 한 컷 映畵를 찍고
고단한 웅얼거림 臺詞를 외는

(저 광장 바닥가득 각진 銅版엔
화려한 톱스타의 핸드 프린팅
이 골목 어정대는 취객과 걸인
웅크린 어깻죽지 가난한 손금...)

<사공의 뱃노래>나 <동백아가씨> 
흘러간 트로트에 가슴이 뛰는
내게 아직 여린 心性 남은 것일까
슬픈 노래 만나러 불빛 만나러
저이들도 이 거리로 나오는 걸까.

비 오는 밤엔 쓸쓸한 밤엔 
충무동 육교가를 서성거린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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