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태초의 곡물(穀物) 강아지풀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53호(2020.8.4)

이득수 승인 2020.08.03 19:57 | 최종 수정 2020.08.04 17:46 의견 0
(사진1 강아지풀, 피(검은 것), 돌복숭아로 차린 원시인의 밥상 (사진2. 밥과 국, 반찬과 후식 과일까지 갖춘 현대인의 밥상)
강아지풀, 피(검은 것), 돌복숭아로 차린 원시인의 밥상(왼쪽)과 밥과 국, 반찬과 후식 과일까지 갖춘 현대인의 밥상.

고서를 읽다 제패(稊稗)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그 뜻을 새겨보다 깜짝 놀란 일이 있습니다. 강아지풀과 피를 합성한 이 평범한 단어가 문장의 흐름으로 보아 놀랍게도 인류 최초의 곡물인 것이었습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이든 읽어보는 마초할배의 연구 결과 강아지풀의 조그만 씨앗들이 바로 아프리카의 숲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구대륙(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번져가던 인류의 최초의 양식이었답니다.

호모 에릭투스나 호모 사피엔스로 불리는 매우 영리하고 호기심이 많고 의사소통이 능한 원숭이의 한 종(種)인 우리 인류가 처음에 나무에서 내려왔을 때는 맹수(猛獸)가 겁이나 주로 갈대밭이나 칡넝쿨에 숨어 살며 칡이나 갈대뿌리를 파먹고 살았답니다. 그래서 당시의 인간은 서른두 개나 되는 거대한 이빨을 아래위로 배열하고 자르는 앞니에, 찌르는 송곳니와 그걸 그라인더처럼 가는 어금니를 대량 배치했는데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 앞니 둘, 송곳니 하나, 어금니 둘을 좌우 배치해 연한 음식을 먹다 나중에는 어금니가 세 개씩 더 나와 거친 갈대뿌리와 칡뿌리를 매일매일 맷돌질을 하면서 살았던 것이지요.

그 후 보다 채취하기 쉬운 조개나 과일에 눈을 돌리다 다시 좀 위험하기는 하지만 짐승을 사냥해 고기와 피를 먹으며 한층 식단이 풍성해졌지만 문제는 그 식품들은 더운 여름에 썩어버려 저장이 잘 안 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바로 강아지풀 같은 아주 작은 식물의 씨앗들입니다. 너무 작아 채취하기도 힘들고 껍질이 단단해 가공하기도 쉽지 않지만 우선 먹을 것이 없는 겨울철까지 저장이 가능한 데다 그 소량의 탄수화물이 동물들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본 에너지원이 되었기 때문이었지요.

당시에 주로 동굴(洞窟, 물이 나오는 천연동굴)이나 토굴, 움집에서 여자가 리더가 되는 모계(母系)씨족으로 살며 그렇게 곡식에 맛을 들인 인류는 강아지풀씨보다 조금 큰 피의 열매를 발견하고 다음 조, 기장, 수수, 보리, 밀을 발견, 재배하며 음식을 불에 익히는 화식(火食)을 시작하여 덩치가 커지면서 마침내 물을 대어 벼농사를 짓는 관개농업(灌漑農業)으로 일대 전환기를 맞아 인구가 폭발하고 통치체제가 갖추어져 남자 중심의 가부장제와 씨족, 부족국가 같은 고대의 지배체제가 갖추어진 것이었지요. 

무쇠솥에 지은 쌀밥 [픽사베이]

그렇게 번창하던 북반구의 인구가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릴 때,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해양개척과 산업혁명이 이루어지면서 신대륙의 옥수수와 감자, 고구마가 들어오면서 마침내 인류는 식량난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답니다. 이를 도식으로 표현하면

강아지풀→피→조→기장→수수→보리→밀→쌀←옥수수←감자←고구마가 됩니다. 이 조그만 강아지풀의 씨앗에서 출발한 탄수화물의 확보로 구대륙의 인구가 급증하자 다시 신대륙의 옥수수와 감자, 고구마가 차례로 들어와 인류는 마침내 어느 정도 식량자급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중에 쌀, 밀, 옥수수가 바로 인류 3대 식량작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사마광의 자치통감 같은 책을 읽어보면 춘추전국시대이 제후들이 자기의 위력을 뽐낼 때 보통 만승천자(萬乘天子), 만종곡식(萬鍾穀食)을 들먹이는데 만승천자는 전투용의 쌍두, 혹은 사륜마차를 이르고 만종(萬鍾)의 종은 곡식의 양을 재는 단위로 10두가 1석, 8석 또는 20석이 1곡, 100곡이 1종(鍾)이니 만종이면 무려 2,000만석(약 500만t)이 되는데 당시의 인총(人叢 세계 전체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양이지만 아마 지상의 모든 좁쌀을 다 걷어도 그만큼 되지 않았을 터라 중국인 특유의 과장법으로 보아야겠지요.

그렇게 소중한 곡물이 남아돌아 많이 먹기보다 덜 먹는 것이 자랑이 되어 현대의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몰두하다 아예 거식증(拒食症), 몸이 음식을 거부하는 현상이 다 생길정도라 하니 거참 숫자를 못세어 기둥에 금을 긋거나 새끼매듭을 꼬던 인류가 컴퓨터와 휴대폰에 집착하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와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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