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삼겹살, 술과 돼지고기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51호(2020.8.2)

이득수 승인 2020.08.01 16:10 | 최종 수정 2020.08.01 16:38 의견 0
포트벨리드 피그 [픽사베이]

우리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70년대 말에서 80년대의 초는 이제 무얼 먹을 수 있느냐의 밥걱정이 사라지고 얼마나 맛있는 것을 먹을까, 음식이 기호식품으로 시대가 변해버립니다. 경제개발이 시작될 때 처음 나온 라면에 환호하던 사람들은 오로지 소출이 많다고 온 들판을 덮어버린 <통일벼>에서 다시 밥맛이 좋은 재래종 볍씨를 찾아내었습니다. 그 산업화의 첫 번째 혜택이 밥을 굶지 않는 것이라면 그 연장선에서 막걸리와 소주 같은 싼 술과 삼겹살과 돼지갈비 같은 육류를 어렵잖게 대할 수 있는 두 번째의 혜택이 돌아옵니다.

그 두 번째 혜택의 백미를 값싼 화학주와 돼지삼겹을을 빼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가 시골에서 자랄 때까지 돼지고기는 부잣집의 잔치나 초상이 나면
“그래 돼지 시옷 얻어 묵었나?”
“응 기름기도 없는 몸에 돼지 시역 얻어먹고 괜히 설사가 나서 밤새도록 오토바이를 탔다.”

마을 사내들끼리 이런 대화가 돌았습니다. 좀 잘 산다는 집이라야 명절과 어른 생일 등 일 년에 서너 번 육고기를 접하던 당시사람들이 <돼지수육>이라는 고급식품을 구경할 수가 없으니 어떤 사람은 시옷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시역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제 나이가 한 서른쯤 되던 80년대 초에는 술을 마신다면 의례 삼겹살집에서 소주를 마시는 것이었고 겨울철 집에서 찌게를 끓인다면 비계덩이가 조금 붙은 돼지고기를 쑹쑹 썰어 김장으로 담은 배추김치와 함께 끓인 <김치찌게>였고 그 두 음식은 지금도 꾸준히 명맥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삼겹살과 소주가 얼마나 유행을 했는지 동사무직원인 제가 구멍가게나 소개소를 하는 통장 집을 오후에 방문하면 가는 곳마다 방한용 난로위에 프라이팬을 놓고 삼겹살을 구어 별 양념도 없이 김장김치를 곁들여 종이컵으로 소주를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또 시장골목을 둘러봐도 저녁꺼리 손님이 뜸해진 오후 다섯 시경이면 골목골목 조그만 가스렌지를 놓고 삼겹살은 구워 채소장사, 생선장사, 떡장사, 난닝구장사까지 둘러앉아 소주를 마시다 동직원인 저도 기어히 한 잔을 먹여 보내는 바람에 6시 퇴근시간 전에 사무실에 들어갈 때마다 얼굴이 벌개지곤 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렇게 삼겹살, 돼지국밥 같은 돼지고기를 즐기는 것일까요? 날카롭고 사나운 뿔도 없는데다 털도 짧아 둥글납작한 몸 전체가 고기 덩어리인 돼지는 지구상 모든 부족이 최초로 키운 가족이며 처음으로 제사상에 올린 고기입니다. 말하자면 단군임금이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 돼지고기와 술을 진설했고 부족들이 술 한 잔 씩을 나눠 마실 때 역시 돼지수육 한 점을 안주로 먹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얼핏 불결한 짐승으로 생각하는 이 돼지는 인간에게 다가온 첫 번째 가축이자 사냥을 안 해도 얻을 수 있는 단백질로 여러 나라의 신화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나라의 삼국사기 고구려 편을 보아도 신관이 키우던 제수용 돼지가 도망을 가서 신하들 여럿이 한참이나 헤매다 잡은 곳에 고운 처녀가 나와 왕비로 삶았다든지 도망간 돼지를 잡은 자리에 서기(瑞氣)가 뻗쳐 궁(宮)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흔히 나옵니다. 그만큼 의미가 깊은 가축이었던 것이지요.

서양에서 햄이나 베이컨을 만들고 돼지다리를 훈제하는 사이에 우리 나라에서는 <돼지족발>과 <돼지순대>같은 음식역사상 불멸의 미식을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피난지 부산에서는 <돼지국밥>이라는 민족의 애환이 가득담긴 구황(救荒)식품을 개발하기도 했고.

삼겹살과 대패삼겹살 이미지.

지금 돼지의 살코기는 주로 돼지갈비와 삼겹살로 소비되는데 그 으뜸인 <삼겹살>이 자꾸만 진화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하는데 <녹차 삼겹살>등 건강식품과 결합한 경우, <대패삼겹살>로 얇게 빚어 어린이가 먹기 좋게 만든 것이 진화에 해당된다면 <항정>, 이니 <목살>이니 이름만 달리했지 맛은 삼겹살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돼지오겹살> 역시 삼겹살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는 짝퉁여리인 것 같습니다.

근래에는 삼겹살 값이 금값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한 마리 잡아서 얼마 나오지 않는 살을 전 국민이 즐기니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쉽게 마실 수 있어 행복한 술꾼의 나라이고 국물이 넉넉한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저녁을 때우며 반주까지 할 수 있는 부산은 그 행복의 중심에 선 항구입니다.

세상살이 스트레스가 많은 분,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분들, 10넘게 취업의 문을 뚫지 못한 젊은이 여러분, 그래도 이 땅에는 신의 축복 같은 음식 돼지삼겹살과 소주가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삼겹살에 소주 한잔으로 근심을 풀어놓고 내일의 희망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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