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술의 발생, 술꾼의 출현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50호(2020.8.1)

이득수 승인 2020.07.30 19:13 | 최종 수정 2020.07.31 18:41 의견 0
디오니소스(바쿠스), 데메테르(케레스), 그리고 에로스(큐피드 혹은 아모르)(1595–1605) [Oil on canvas by Hans von Aachen]
술의 신 디오니소스(바쿠스)와 포도주를 든 데메테르(케레스), 그리고 에로스(큐피드 혹은 아모르)(1595–1605) [Oil on canvas by Hans von Aachen]

사람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을 겁니다. 숲속의 머루나 포도를 제 때 못 따고 장마가 지난 후에 가까이 가자 훅 냄새가 진동하며 작은 초파리들이 날아오르는 것을 본 선대인들이 그 시큼한 진액을 우선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먹어본 결과 시금털털하면서도 묘한 여운으로 남은 뒷맛에 빠져 먹게 된 것이 아닌지 싶습니다. 

그런데 그걸 좀 많이 마시면 정신이 몽롱하고 몸에 열이 나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고 근심걱정이 사라지며 지나가는 여자 모두가 너무나 예뻐 보여 바로 손을 잡고 숲으로 사라졌을 것입니다. 당시는 군혼(群婚), 또는 집단혼으로 일정한 배우자가 없이 씨족전체의 모든 남녀가 접촉하여 낳은 아이를 설령 장애아라도 버리는 법이 없이 씨족 전체의 모든 여인이 길렀고 설령 고래나 매머드 같은 큰 짐승을 사냥하면 수백 명의 부족이 넓은 풀밭에 그득히 앉아 똑 같은 양의 고기 한 덩이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신비한 액체를 늘 구할 수가 없어 머리를 짜낸 것이 포도를 으깨 독에 담아 발효시킨다든지 다른 과일이나 곡식을 여자들이 일일이 씹어서 큰 독에 발효시키는 식으로 발전하다 마침내 술을 잘 띠울 수 있는 이스트와 누룩을 발명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진 귀한 술은 무리 중에 가장 힘센 사내인 두목 군장(君長)에게 보내지고 군장은 사자나 호랑이이 같은 맹수(猛獸)나 비, 바람, 천둥, 해일 같은 자연재해를 막고 부족의 단합을 다지기 위한 제사에 이 성스러운  술, 즉 제주를 올렸을 겁니다. 그렇게 제사를 지내는 부족장이 최초로 술을 자주 마시는 <술꾼>이 되었는데 이는 우리의 시조 단군을 예로 들면 명확해집니다.

우리의 시조 단군의 직업은 본대부터 왕이나 장군이 아니라 시를 잘 짓고 군중을 잘 선동할 수 있는 요즘의 연예기획가 같은 사람으로 현대적 직업군으로 분류하면 장군, 행정관료, 박수무당(격(覡)에 시인과 선동꾼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우선 늘 맹수와 악천후, 이웃부족의 습격을 막을 수 있는 든든한 방패막이 장군이어야 하고 다음에 부족들 간에 싸움이나 분쟁이 나면 그걸 재판해야할 권위인 왕으로 상징성을 갖게 됩니다.(당시는 행정과 입법, 사법은 물론 길흉화복의 예언과 수습까지 왕이 전권을 쥐던 때니까요. 그렇게 부족의 불안을 씻과 단합시키기 위해서는 위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아래로 모든 부족이 한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데 당시로서 가장 귀한 음식은 돼지고기와 술이었고 나중에 떡이 추가가 됩니다. 그래서 제사가 지나면 그 고기나 술의 양이 충분하든 부족하든 아주 작은 양이라도 모든 부족이 맛을 보게 슬기롭게 나누어야 하는데 그게 요즘 말로 행정 또는 관리자의 입장입니다.

마지막엔 그렇게 근심걱정을 떨고 오랜만에 신의 음식인 별미 돼지고기를 먹고 술에 취한 사람들이 천부경 같은 짧은 시로 만든 중독성이 있는 가사로 한 덩어리가 되어 집단군무를 하여 축제의 절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Agência Brasil Fotografias / CC BY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2.0)
브라질 리우 카니발에서 삼바춤을 추는 여인 [Agência Brasil Fotografias / CC BY /2.0]

그렇게 축제를 즐기고 온 사람들은 이튿날 어제의 축제에서 술을 한 잔 마시고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금방 기분이 좋아져 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졌을 것입니다. 어디서 온지도 모를 흥에 온몸을 떨며 추던 춤과 끝없이 반복해 소리 지르던 주문, 그리고 그 집단무의 마지막에 벌어진 아무나 눈에 보이는 남녀가 서로 손을 잡고 숲이나 풀밭으로 사라져 여기저기 끝없이 벌어지는 야합의 들판이 또렷이 되살아나며 다시 한 번 그 휘황한 기억의 술을 마시고 싶어 했을 겁니다.

그렇게 보면 최초의 술꾼은 제사장이나 무당이었을 겁니다. 또 원시시대의 모든 축제가 술과 구호, 집단무(集團舞)에 이어지는 거대한 성희(性戲)의 희열을 몰고 와 그 모든 환상과 희열의 도화선이 된 술맛을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로마신화에는 바쿠스라는 술의 신이 나오고 그 <바쿠스축제>에 참여하는 모든 남녀는 먹고 마시고 춤추며 마침내 거대한 성희를 벌리는 것으로, 나중에 부족사회가 끝나고 일부일처의 농경사회가 벌어진 후에도 바쿠스축제 현장의 성의 향연(이제는 간통의 의미로 변했지만) 당연히 죄를 묻지 않는 것으로 하였답니다.

기독교에서는 술을 마귀의 음식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짐작하기로 노아의 방주에 포도를 가득 실었다고 했는데 그 포도찌꺼기에서 술이 생기고 그걸 마신 사람이 지도자 노아의 말을 듣지 않고 무척이나 애를 먹이고, 그래서 술이 악마의 음식이 되고 하는 식으로 상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현대사회에는 술이 너무 흔해 아무리 가난한 생활보호대상자라도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잘 살게 되면서 부족전체가 같은 음식을 나누고 같은 술을 마시고 구호를 외치고 광란의 집단무를 추고 마침내 질펀한 향락에 빠지는 가장 순수한 생명의 잔치가 없어진 것입니다.

서양에는 아직도 전통이 있는 몇 개의 축제에 가면놀이 같은 것을 하면서 집단무와 혼외의 성을 즐기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동양의 축제는 거의가 다 지역상품을 판매하고 너무나 졸렬하게 변해버린 단군, 지방자치단체장이 표를 모으는 멋도 맛도 없는 서툰 굿판이 되었습니다. 원시의 북소리에 술 취한 군중이 집단무를 추는 축제의 북소리와 화려한 뒤풀이가 그리운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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