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술꾼일기 펼쳐보기

포토 에세이 통산 1049호(2020.7.31)

이득수 승인 2020.07.30 18:45 | 최종 수정 2020.07.30 18:58 의견 0
젊은 시절 직원회식에서 건배사를 하는 필자 
젊은 시절 직원회식에서 건배사를 하는 필자(왼쪽) 

개금 백병원 앞에는 쭈꾸미요리와 남원식 추어탕을 파는 맛집이 하나 있습니다. 병원에 그는 일이란 의사선생님을 만나 진료를 받는 날과 정해진 날짜에 따라 흉부X-레이, 자기공명영상M. R .I, 단층촬영 C. T에 뼈 사진(Bone-scan)등 검진을 받아 병원문을 나설 때는 늘 지치고 힘든데다 배까지 고파
“당신, 뭐 먹을래?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단 한 번도 만족하게 검사결과가 나오지 않아 늘 죽을 지경인 아내의 표정을 살피니 
“뭐, 추어탕이나 먹지. 나도 요새 부드러운 음식이 좋더라.”
사실 두껍고 질긴 고기나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남편을 배려하느라 평소 잘 먹지 않는 음식을 시켰습니다. 

젓가락으로 밥알을 새며 둘이 천천히 식사를 하는데 여침 옆자리에 70 가까운 사내 하나가 80이 다 된 노인과 마주 앉아 쭈꾸미를 시켜놓고 반주를 하는데 각자 취항에 따라 소주 한 병과 막걸리 한 병씩을 올려놓고 서로가 부어주며 권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직장에 다니던 시절 상관들을 모시고 속풀이를 위한 복국집이나 생대구탕, 생명태탕, 물메기탕집에 가던 생각, 나중에 제가 윗사람이 되어 대접을 받던 점심시간이 떠올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당신 지금 뭐 보는데? 술 때문에 다 죽게 생긴 사람이 지겹지도 않소?”
아내의 힐난에
“그렇지, 그렇지, 그렇지만-” 수긍하면서도 저도 몰래 휴대폰을 들고 일어나
“저어, 어르신들 제가 두 분 술 마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어서요.”
하는 순간 
“사진이라....” 하며 저의 진의를 간파하려는데 
“예. 지금 저는 간암을 심하게 앓고 있지만 현직 때 점심 때마다 반주를 하던 기억이 떠올라서요.” 하자
“그렇구나? 저도 여기 옛날 직장선배님을 오랫만에 모시고 점심을 하는 겁니다.”

젊은 노인에 이어
“가능하면 술이라도 같이 하고 싶지만 사진이냐 뭐 맘대로 찍으시고 건강관리 잘 하세요.”
흔쾌하게 웃으며 이리 저리 자세를 잡아 주었습니다.

옛날 시골사람들이 이웃을 뒷산에 묻고와 상가마당에서 술추렴을 하며
“그 사람 참 신실했지. 그러니까 이만큼 땅도 넓히고 살림도 이루고 사는 거지.”
“위인이 별로 특출하지는 않았지만 복많은 마누라 만나서 그럭저럭 한 평생 잘 먹고 잘 살았지.”
정도로 회상하지만 간혹
“아이구, 말도 마라. 그놈의 술! 아홉식구 때꺼리가 없어도 제 목구멍 넘어갈 술걱정만 했으니 세상에 초뺑(醋甁)이도 그른 초뺑이가 없지...”
하는 식으로 망자가 일평생 주색잡기로 방탕하게 살고 간 사람이면 혀를 끌끌 차며 침을 뱉었습니다.

너무나 부러운 옆자리의 주객들
너무나 부러운 옆자리의 주객들

 <술꾼>은 건강한 사내로서는 매우 당당한 포부와 기상을 드러내는 말로 째째한 사내들에 비해 자신은 술을 마심으로서 대장부라는 우월성을 갖게 되는 묘한 말입니다. 술을 마시면 알콜에 하지만 오래 술을 마신 사람들은 자신이 술꾼이라는 그 꾼의 습성이나 반복성에 빠져 해가 져도 마시고 해가 빠져도 마시고, 오늘도 마시고 내일도 마시는 주야장천 술독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 긴 시간을 제 아내가 실망에 빠지고 낙심에 빠지고 마침내 절망에 빠져 혼자 우는 것도 모르고서 말입니다.  

하지만 술꾼은 <나무꾼>, <농사꾼>, <장사꾼>, <나물꾼>, 등 어느 꾼보다도 그 여운이 가장 감미로운 단어입니다. 술이 아니라 상습폭음자 술꾼까지가 다 감미로운 그 질기기도 모진 악마의 손길...

불행히 저도 한 때 부산바닥에서 알아주는 술꾼이었고 명절 때는 처가가 밀집된 양정바닥을 휩쓸었고 고향의 제사와 동창회 때 또 직장의 회식에도 큰술꾼이라 자매도시의 방문단과 서구청의 동수(同數) 술대결, 의회와 경찰서와의 대경에도 대표선수로 뛰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골병이 들어 몸을 망치는데 그걸 무슨 자랑거리나 되는 것처럼.

제가 간암으로 쓰러져 첫 수술을 하고 한달만에 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이 조카들이 커다란 병에 담아준 담금주를 숨긴 것이었습니다. 그까짓 것 엉기 징이 나지 않나 당장 깨 내버리고 했지만 만약 내가 5년을 살아낼 수 있어 통계상의 간암회복자가 되는 날 마시기로 생명을 관장하는 신과 제 자신에게 맹서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심한 애주가임에도 저는 금단증상 같은 것이 없이 이제 약속의 5년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그날(21.1.31) 적어도 5년보다 훨씬 오래 숙성된 하수오주에 마른안주를 곁들여 친한 벗님들이랑 딱 소주병 한 잔만 마셔볼 것입니다. 함께 하실 애주가님은 미리 연락주시기를...
 <시인·소설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