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엄마 같은 내 누님, 김해누님의 죽음
포토 에세이 통산 제1043호(2020.7.25)
이득수
승인
2020.07.24 17:51 | 최종 수정 2020.07.24 19:49
의견
0
올해의 봄철과 장마기에 이르는 기간에 저는 유독 많은 죽음을 접해야 했습니다. 우선 6월 달에 너무나 저를 끔찍이 믿고 사랑해 평생을 어머니처럼 저를 걱정하고 또 자랑스러워하던 김해의 둘째 누님(전에 여러 번 소개)이 돌아가셨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이 쾌활한 교회권사로서 만나 이야기를 할 형편만 되면 비록 비구니스님이라도 조금도 망설임 없어 <어서 예수 믿어 천국에 가자>고 하던 누님이라 제가 출판기념회를 두 번 하고 정년퇴임식을 하느라 다중을 모아놓고 주인공이 될 때 저보다 더 흥분해버렸습니다. 자기의 동생인 저는 물론 누님자신까지 너무나 위대한 사람이 된 것처럼 “저 사람이 내 동생이다. 어릴 때 교회에 열심히 다녀서 저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라는 기막힌 멘트를 온 참석자들에게 날려 저와 아내는 얼굴을 들 수가 없는데 그 세 번의 행사마다 더 기가 막힌 마무리를 하는 것이 가족과 하객이 가득모인 한가운데서
“여러분, 제가 이득수의 둘째 누님, 김해누님입니다.”
해서 눈길을 끌어 모으고
“여러분, 모두 예수 믿어서 천국 갑시다.”
하는 순간 모두 고개를 돌리는데 문득
“봐라! 올깨야!”
대갈일성(大喝一聲)에 모두가 화들짝 놀라는데
“니는 이 잘난 내 동생을 데리고 갔으니 평생을 감사하게 살아야 될 것이다. 내 동생한테 잘 해라이.”
심술이 줄줄 흐르는 시누이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었는데 3번의 큰 행사 중 단 한 번도 빠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 누님이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손아래 4남매는 이제 모두 꼼짝 못 하고 죽었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도 아무도 못 말리는 전도천사 이갑조권사가 치매까지 걸려 방방 뛰면 이 국난을 어찌 피해간단 말입니까?
그런데 기가 막힌 반전은 누님에게 찾아온 치매는 기억력이 희미해지면서 말이 없어지는 <천사 표 치매>인 것입니다. 그저 조용히 지내며 가족이 찾아가면 한참을 더듬어 그 이름을 찾아내는 정도로 조금씩 쇠약해져 피부암이 오고 기력과 기억력이 떨어졌는데 먼저 자기의 세 딸의 이름을 모조리 잊어버리는 것이었고 자영업을 하느라 시간이 많아 이틀에 하루쯤 찾아오는 차남도 잊어버리고 마지막엔 큰 아들 상철이와 손자 영빈이 그리고 <부산동생 득수>가 남았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제가 마지막으로 누님을 봤을 때는 제 이름을 못 떠올려 한참이나 끙끙거리다 마침내 “내 동생 득수 아이가?” 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 후로 몸이 점점 쇠약해지며 마지막 남은 이름인 장남과 장손도 자주 까먹었다고 했는데 아마 임종 직전엔 제 이름도 까먹었을 것입니다.
누님의 부음을 듣던 날은 뜰 가득히 보랏빛 수국이 피어나고 먼 숲에서 뻐꾸기가 울던 날, 하늘이 맑고 바람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이미 말문을 닫아 와 봐도 소용없다고 몸 아픈 외삼촌이 오는 걸 생질들이 하도 말려 부음을 들을 이튿날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몸이 아픈 삼촌이 와서 마음까지 아프면 안 된다고 웬만하면 자식들이 알아서 치르고 나중에 찾아와서 결과를 보고하겠다는 걸 듣고 그러 마 하고 하루를 고민하다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영정을 보며 한평생을 살아오며 그렇게 많은 사연을 겪고 울고 웃었건만 이상하게 울음한번 나지 않고 간신히 눈가에 비치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슬픔도 지극히 슬프면 울음이 나지 않는 법, 제 경험으로는 열일곱 그 예민한 나이가 되도록 병 구환을 하며 마지막 한 일 년은 제가 안고 밤을 샌 우리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이미 시집장가를 간 누님과 형님이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들어오자 말자 “아버지!”라고 아우성을 치며 서리서리 사연을 풀며 흐느끼는데 직접 모시고 혼자 임종을 한 종신자식 저는 너무나 기가 막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울음이나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 아버지를 진장만디 빨간 황토구덩이에 묻고 돌아와 형제들이 다 돌아간 후 갑자기 슬퍼진 제가 집 뒤 대밭에 찾아가 한 나절을 울었는데 평소 저를 지켜보던 사촌형수가 해가 질 무렵 찾나내어 말없이 꼬옥 안아 주었습니다.
제 원래의 의도는 아주 조그맣고 평범하게 살다 간 너무나 착한 사람, 뭐 아무런 것도 특별히 남기지 못하고 떠난 사람의 삶과 의미를 근래에 죽은 몇 명을 통하여 알아보려 했는데 누님이야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포토 에세이는 병든 늙은이의 가장 진솔한 이야기일 뿐 문학적 성과에 연연할 바가 아니라 이 엉성한 구성을 그대로 밀고 나갑니다. 그렇게 열심히 믿었으니 천사가 나팔을 불어주는 빛과 영광이 가득한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계실 누님이 가끔 떠오를 때 읽어보는 박재삼의 시조 <노안>의 마지막 3연을 올립니다.
하늘은 비었다 하면 비었을 뿐인 것을
발치에 가랑가랑 나뭇잎 묻어오는
설음도 넉넉하게만 맞이하여 아득하여
사람이 지독하대도 저승 앞에 죽어오는
남쪽 갈대밭을 맞서며 깃이 지는
다 같은 이저 목숨이 살아 다만 고마워
그리고 저녁서 부터 닭은 밝은 한밤을
등결 허전하니 그려도 아닌 눈물에
누이사 하마오겄다 싶어 기울어지는 마음.
<시인·소설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