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그래, 초록이다, 초록빛이다②
포토 에세이 통산 1039호(2020.7.21)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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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0 15:58 | 최종 수정 2020.07.2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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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스산한 11월의 낙엽을 보라.
거칠어진 12월의 벌판을 보라.
초록빛 밀려나면 쓸쓸해진다,
초록이 사라지면 황막해진다.
열정도 일흔 넘자 회색 그리움
넋두리도 숨 돌리는 긴 겨울 가고
마침내 가는 바람 잠을 깨우듯
꽁꽁 언 지심에다 노크를 하면
가만가만 다가오는 저 여린 순들,
지심에서 잠자던 초록의 얼이,
연두빛 감나무에 굴밤나무와
다래덩굴 눈 틔우며 피어오르다
한 눈 팔 듯 연 자줏빛 갯버들 피워
마침내 초록으로 완성된 봄날,
화폭가득 넘쳐나는 초록 또 초록,
황금무늬 아로새긴 풀밭 좀 보아.
그렇게 초록으로 눈을 깨우고,
초록으로 새끼 치고 열매를 맺고
마침내 풀물 들어 번져 현기증 되는
저 화려한 씬냉이꽃, 둔덕너머로
밭 가득히 발돋움한 보릿골 사이
은은한 웃음 띄운 지칭개꽃과
그리움의 붉은 구슬 뱀딸기 열매
그 모두를 피워내는 초록 들판과
그림 같은 저 초록빛 논과 펜스와
성황목 서어나무 늘어진 줄기
저 완벽한 구도의 그림 좀 보아,
초록나라 화가의 디자인 좀 봐.
저렇게 나란히 줄을 맞추며
진시황릉 토용(土俑)처럼 발돋움하며
비로소 발 내리며 사람(活着)하는
팔랑대는 벼 포기들 손짓을 보아.
우줄대며 학춤 추는 소나무 좀 봐.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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